대한제국 황실 최후의 마부와 최초의 운전수
20세기 초는 통신, 교통 등 전분야에서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급진적인 변화의 시대였다.
특히 대한제국 황실의 탈것도 마차에서 자동차로 바뀌었는데, 사라져 간 마부와 새롭게 등장한 운전수는 누구였을까? 아래 매일신보 1926년 5월 10일 자에서 그 인물을 확인할 수 있다.
겉은 자줏빛! 속은 샛노랑!
대하는 이의 마음까지 숭엄하게 하는 이화표 자동차가 융희황제를 뫼시게 되기는 대정 6년(1917년). 지금으로부터 약 9년 전 가을이었다.
융희황제께서 자동차를 새롭게 타시고 덕수궁에 문후를 가실 때 부왕을 그리시는 전하께서는 그 신속함에 만족하시어 그때에 배승하였던 민병석 자작에게
“참 자동차가 좋구나”
하시던 말씀을 들은 이는 자동차 운전수 중산말길(中山末吉)군이었다.
그는 본시 통감부에 배근하다가 다시 한국 황실에서 용두 마차를 쓰게 되자 명예 있는 마차의 교자(轎子)가 되어 태조 고황제(고종)와 융희황제를 내리 뫼시다가 마침내 대정 6년에 이르러 마차가 폐지되고 자동차로 뫼시게 되자, 중산군은 즉시 자동차 운전술을 연구하여 마차 교자에서 자동차 운전수로 세태와 함께 업을 바꾸게 되었던 것이다.
길은 행인도 얼씬도 못하게 순사가 치워놓겠다. 자동차 기계는 좋겠다. 환도(운전대)를 잡은 중산군은 그야말로 태연자약히 최후까지 융희황제의 홍능행을 삼가 뫼신 것이었다.
금곡능행으로 말년의 일을 삼으시던 융희황제께서는 어느 때든지 생각나시는 대로 자동차 대령 분부를 내리시었는지라 이로 인하여 중산군은 일시도 자동차 격납고에서 멀리 떠나보지를 못하였었다 하며, 그중에도 일요일 같은 날에 능행이 계실 때에는 반드시 친명으로 “일요일에 부려서 미안하다”하시는 내의의 사찬이 있어서 중산군은 항상 우애 깊으신 은덕에 감읍하였었다고 한다.
전후 17년 동안 융희황제를 뫼시던 그는 요새도 매일 이왕(李王) 은(영친왕) 전하를 뫼시고 낙선재에서 빈전인 선정전으로 왕복을 하니 그의 감개야 어떠하리.
【매일신보 1926.05.10】
▲ 황실 운전수 나카야마 스에키치(中山末吉)
대한제국 최후의 마부는 나카야마 스에키치(中山末吉)라는 일본인으로 일제가 설치한 한국통감부(韓國統監府)에서 파견되어 고종과 순종 시기에 근무했다.
1917년에 마차가 폐지되고 자동차가 도입되자 나카야마는 자동차 운전을 배워 그대로 어차(御車)의 운전수로 근무했다. 공교롭게도 동일인물이 황실의 마지막 마부이자 최초의 운전수였던 것.(황실 최후의 운전수이기도 하다)
▲ 순종의 차량. 미국 GM의 1918년형 캐딜락 리무진이다. 【사진: 문화재청】
황제의 차를 초보 운전수에게 맡긴 셈인데, 십수 년간 순종을 모신 이후에도 영친왕을 태우고 매일 낙선재에서 이방자 여사가 있던 선정전(宣政殿)까지 왕복을 한 것을 보면 무사고 운행을 자랑했던 것 같다. 물론 기사에 나온 대로 경찰이 행인과 장애물들을 다 치워놓았으니 일부러 내지 않는 이상은 사고 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