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 미군 포로들의 ‘죽음의 행군’

태평양전쟁 종전 후 평화롭게 일본에 진주하고 있던 미군들은 1950년 7월 초 갑작스럽게 북한군의 침공을 저지하라는 막연한 명령에 따라 한국으로 급히 투입되었다. 때문에 전쟁에 제대로 대비되지 않았던 수많은 병사들이 북한군과 맞닥뜨린 지 몇 분 만에 목숨을 잃었고, 미처 퇴각하지 못한 군인들은 체포되어 포로 신세가 되고 말았다.

아래의 사진은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 남짓한 1950년의 여름. 한 무리의 미군 병사들이 포로수용소로 가기 위해 북한군이 점령한 서울거리를 행진하고 있는 모습이다.

 

전쟁 희생자를 줄이고 야만의 전쟁을 조금이나마 문명화하기 위해 생겨난 제네바 협약은 '포로를 보호하고 존중하며 인도적인 대우를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선전 목적을 위해 포로들을 조리돌림 하거나 행진을 시키는 치욕적인 행동을 금하고 있지만 북한은 협약에 서명한 국가가 아니었다 1


안타깝게도 북한은 포로를 관리할 시스템이나 자원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적이었다.

 

전쟁 희생자를 줄이고 야만의 전쟁을 조금이나마 문명화하기 위해 생겨난 제네바 협약은 ‘포로를 보호하고 존중하며 인도적인 대우를 할 것’을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선전 목적을 위해 포로들을 조리돌림 하거나 행진을 시키는 치욕적인 행동을 금하고 있지만 북한은 협약에 서명한 국가가 아니었다

 

게다가 ‘죽음의 행군’을 이겨내고 도착한 북한의 포로수용소는 건강한 사람도 견디기 힘든 곳이었다. 휴전협정이 합의될 때까지 수감된 미군 포로의 43%가 수용소에서 굶주림과 질병 및 학대로 사망했으며, 현재도 표식 없이 북한 땅 어딘가에 매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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