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4월 16일

1940년대 후반, 평양 ‘최승희무용연구소’의 강습 모습

일본에서 무용가로 크게 성공한 최승희(崔承喜, 1911~1969)는 조선으로 귀국하여 1929년 11월 1일, 경성 고시정(古市町) 19번지, 현재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최승희무용연구소(崔承喜舞踊硏究所)’를 설립하였다.

해방 후에는 친일행적으로 인해 처벌받을 것을 두려워하다가 결국 남편 안막(安漠)을 따라 월북하게 된다.

일본에서 무용가로 크게 성공한 최승희(崔承喜, 1911~1969)는 조선으로 귀국하여 1929년 11월 1일, 경성 고시정(古市町) 19번지, 현재 서울 용산구 동자동에 '최승희무용연구소(崔承喜舞踊硏究所)'를 설립하였다. 1


위 사진은 월북 후 공훈배우로 특별대우를 받으며 평양에 새롭게 설립된 최승희무용연구소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모습. 앞줄 맨 왼쪽의 강습생은 최승희의 수제자로 알려진 무용가 김백봉(金白峰, 1927~2023)으로 한국전쟁 발발 후 1·4후퇴 때 월남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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