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6년, 미스코리아 최유미의 제일은행 순회근무

1963년 미스 인터내셔널 5위 최유미

 

1963년 6월 21일, 서울시민회관에서 열린 제7회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에서 진(眞)에 김명자, 선(善)에 최유미, 미(美)에 최금실이 선발되었다. 63년의 미스코리아들은 세계대회에서도 역대 최고의 성적을 거뒀다.

 

같은 해 김명자는 미스유니버스에 출전해서 5위에 입상했고, 최유미는 미스인터내셔널에 출전해 5위, 최금실은 미스월드에 출전해 Top 14에 이름을 올렸던 것.

 

3년 후인 1966년에는 마산일보 기사(아래)를 통해 최유미의 소식이 알려졌다. 그녀는 제일은행 본점 소속 영업부 직원으로 전국의 지점을 순방하며 일일 봉사 근무를 하면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이후에는 연예계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며 일반인으로 살아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1
▲ 1963 미스코리아 진 김명자

 

3년 후인 1966년에는 마산일보 기사(아래)를 통해 최유미의 소식이 알려졌다. 그녀는 제일은행 본점 소속 영업부 직원으로 전국의 지점을 순방하며 일일 봉사 근무를 하면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이후에는 연예계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며 일반인으로 살아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3
▲ 1963 미스코리아 선 최유미

 

3년 후인 1966년에는 마산일보 기사(아래)를 통해 최유미의 소식이 알려졌다. 그녀는 제일은행 본점 소속 영업부 직원으로 전국의 지점을 순방하며 일일 봉사 근무를 하면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이후에는 연예계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며 일반인으로 살아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5
▲ 사진 맨 왼쪽이 최유미

 

미스유니버스는 장윤정이 1988년 2위를 기록할 때까지 김명자의 기록이 25년간 최고 성적으로 남아있었고, 미스인터내셔널은 1992년 염정아가 3위에 오를 때까지 최유미의 기록이 한국이 거둔 최고 성적이었다.

 

이후 2000년 손태영(2위), 2009년 서은미(2위)등이 우승의 목전까지 갔으나 아쉽게 2위에 그쳤다. 한국은 세계 3대 미인대회로 분류되는 미스유니버스, 미스월드, 미스인터내셔널에서 각각 준우승을 한 경험은 있으나 우승 경험은 한차례도 없다.

 

3년 후인 1966년에는 마산일보 기사(아래)를 통해 최유미의 소식이 알려졌다. 그녀는 제일은행 본점 소속 영업부 직원으로 전국의 지점을 순방하며 일일 봉사 근무를 하면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이후에는 연예계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며 일반인으로 살아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7
▲ 염정아(1992), 손태영(2000), 서은미(2009)


1963년 미스코리아 선 최유미는 그해 8월 16일 미국 캘리포니아 롱비치에서 열린 미스인터내셔널 대회에서 5위에 입상해 상금 1천 달러를 부상으로 받았고, 9월 12일 낮 1시 15분 노스웨스트 항공편으로 귀국해 오픈카를 타고 퍼레이드를 벌이기도 했다.

 

아래는 1963년 미스인터내셔널 출전 당시의 사진들이다.

 

3년 후인 1966년에는 마산일보 기사(아래)를 통해 최유미의 소식이 알려졌다. 그녀는 제일은행 본점 소속 영업부 직원으로 전국의 지점을 순방하며 일일 봉사 근무를 하면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이후에는 연예계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며 일반인으로 살아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9
▲ 1963 미스인터내셔널 수영복. 빨간 원이 최유미

 

3년 후인 1966년에는 마산일보 기사(아래)를 통해 최유미의 소식이 알려졌다. 그녀는 제일은행 본점 소속 영업부 직원으로 전국의 지점을 순방하며 일일 봉사 근무를 하면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이후에는 연예계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며 일반인으로 살아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11
▲ 1963 미스인터내셔널 전통의상. 한복차림의 최유미

 

3년 후인 1966년에는 마산일보 기사(아래)를 통해 최유미의 소식이 알려졌다. 그녀는 제일은행 본점 소속 영업부 직원으로 전국의 지점을 순방하며 일일 봉사 근무를 하면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이후에는 연예계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며 일반인으로 살아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13
▲ 1963 미스인터내셔널 TOP 5

 

3년 후인 1966년에는 마산일보 기사(아래)를 통해 최유미의 소식이 알려졌다. 그녀는 제일은행 본점 소속 영업부 직원으로 전국의 지점을 순방하며 일일 봉사 근무를 하면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이후에는 연예계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며 일반인으로 살아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15
▲ 단체사진. 미스 독일 때문에 얼굴이 가려졌다.

 

3년 후인 1966년에는 마산일보 기사(아래)를 통해 최유미의 소식이 알려졌다. 그녀는 제일은행 본점 소속 영업부 직원으로 전국의 지점을 순방하며 일일 봉사 근무를 하면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이후에는 연예계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며 일반인으로 살아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17
▲ 미스 필리핀 뒤의 최유미

 

미스코리아 출전 당시 인터뷰에 따르면, 최유미는 전남 순천 출신으로 서산국민학교 교사로 근무 중이었다. 당시는 미인대회에 대한 좋지 못한 선입견으로 인해 출전을 꺼리는 사례가 많았던 시대였는데, 그녀 역시 부모님께는 비밀로 하고 출전했다고 한다.

 

3년 후인 1966년에는 마산일보 기사(아래)를 통해 최유미의 소식이 알려졌다. 그녀는 제일은행 본점 소속 영업부 직원으로 전국의 지점을 순방하며 일일 봉사 근무를 하면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이후에는 연예계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며 일반인으로 살아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19
▲ 학교에서 은행으로

이후 곧바로 교사를 그만두고 은행에 특채된 것인지 불과 3개월 후인 미스인터내셔널 수상 관련기사에서는 그녀의 직업이 ‘제일은행 직원’으로 표기되어 있다. 국민학교 교사 신분으로 미인대회에 출전했다는 사실이 알려져 눈총을 받기보다는 은행으로 빠른 이직을 한 것으로 보인다.

 

3년 후인 1966년에는 마산일보 기사(아래)를 통해 최유미의 소식이 알려졌다. 그녀는 제일은행 본점 소속 영업부 직원으로 전국의 지점을 순방하며 일일 봉사 근무를 하면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이후에는 연예계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며 일반인으로 살아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 63년도 미스코리아 최유미 양 하루 봉사
– 26일 제일은행 지점서

 

제일은행 본점에서 인기를 독점하고 있는 63년도 미스코리아 최유미(崔由美)양이 항도 마산지점에서 미의 사절로서 25일 하오 2시 30분 통일호 편으로 마산에 온다.

 

제일은행 마산지점에서 26일 하루동안 봉사근무하기 위해 마산에 오는 최유미 양은 이날 일일 창구응대에 임하고 보통예금 접수와 통장 인도업무를 맡아볼 것이라 하는데 고객들 간의 화제를 모으고 있다.

 

3년 후인 1966년에는 마산일보 기사(아래)를 통해 최유미의 소식이 알려졌다. 그녀는 제일은행 본점 소속 영업부 직원으로 전국의 지점을 순방하며 일일 봉사 근무를 하면서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었고, 이후에는 연예계활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중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지며 일반인으로 살아갔을 것으로 추측된다. 21
▲ 1963년 미스코리아 선 최유미

 

그런데 최유미 양은 올해 24세로 전남 순천사범학교를 졸업 후 63년도 미스코리아로 당선된 그해 미국 롱비치 세계 미인대회에서 5위에 입선하고 우리나라를 세계에 재인식케 하는 미의 국제 사절 역할도 한 바 있는 취미가 미술이라는 미혼 미인이다.

 

현직 제일은행 본점 영업부에 근무 중이며 미의 사절로 전국 중요지점을 순방케 될 것이라고… 【마산일보 1966.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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