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의 미인대회 1931년 ‘미스 조선’

1931년 10월 8일, 오사카 마이니치신문(大阪每日新聞)에는 ‘미스 조선(ミス朝鮮)’을 선발한다는 공고가 실렸다.

 

“미스 조선을 뽑아주세요. 이들 중 조선의 여인을 대표하는 미스 조선은 누구인가요. 공평하고 엄정한 전 조선 독자 여러분의 투표에 의해 미스 조선(내지인과 조선인 각 1명)을 선정합니다. 투표의 최고점자로 미스 조선을 결정합니다.”


30년대의 홍보 문장이 마치 현대 오디션 프로그램의 광고 문구를 지면에 그대로 옮겨놓은 듯 낯익다.

 

공고문대로 조선에 거주하고 있는 조선인 여성과 일본인 여성 각 1명이 국민프로듀서(?)들의 선택으로 미스 조선으로 선정되며, 투표에 참여하고 싶은 사람은 첨부된 사진 속에서 마음에 드는 여성의 이름을 엽서에 기재해 10월 15일까지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의 경성 지국으로 보내는 방식이었다.

 

1931년 10월 8일, 오사카 마이니치신문(大阪每日新聞)에는 '미스 조선(ミス朝鮮)'을 선발한다는 공고가 실렸다. 1
▲ 미스 조선 후보자 화보(ミス朝鮮候補者グラフ)【大阪每日 1931.10.08】

 

우승자에게도 부상이 주어졌지만 투표에 참가한 사람들에게도 추첨을 통해 상품이 주어지는 등 현대의 시청자 오디션과 큰 차이점이 없었다. 투표 마감 5일 후인 10월 20일 당선자가 발표되었으며, 10월 21일 자 조선신문과 22일 자 매일신보에도 두 명의 미스 조선이 소개되었다.

 

● 오사카 마이니치 주최, ‘미스 조선’ 두 여인 【매일신보 1931.10.22】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사 주최의 ‘미스 조선’ 모집은 응모 여인(麗人) 조선인 측 47명, 내지인 측 178명 합계 225명의 다수에 달하여 실로 백화경연의 여경(麗景)을 연출하였는데 내선 명사 22명, 심사원이 154,670 매라는 투표 속에서 엄정히 심사한 결과는 마침내 조선인 측과 내지인 측에서 아래와 같은 두 여인이 최고의 득표로 ‘미스 조선’에 당선되었다.

 

• 조선인 측: 경성부 이명숙(李明淑)
방년 18세, 신장 5척 2촌, 체중 13관, 경성여자상업 출신, 직업여성 / 득표 15,764표

 

• 내지인 측: 인천부 기쿠치 도키코(菊地時子)
방년 20세, 신장 5척, 체중 12관 700돈, 인천고여(인천 고등여학교) 출신 / 득표 25,380표


• 
백화경연(百花競妍)의 여경(麗景): 수많은 꽃들이 경쟁하듯이 흐드러지게 핀 봄날(麗景)의 모습 같다는 뜻

• 대한제국 도량형법: 1관(貫)=3.75kg, 100돈(匁)=375g, 1척(尺)=30.303cm, 1촌(寸)=3.03cm
• 미터법으로 환산하면 이명숙의 키와 체중은 157.6cm, 48.75kg. 기쿠치 도키코의 키와 체중은 151.5cm, 47.6kg

 

1931년 10월 8일, 오사카 마이니치신문(大阪每日新聞)에는 '미스 조선(ミス朝鮮)'을 선발한다는 공고가 실렸다. 3
▲ 이명숙, 기쿠치 도키코【매일신보 1931.10.22】

 

현대의 ARS 투표시스템보다 훨씬 불편한 엽서투표임에도 일주일간 도착한 총투표수는 무려 154,670매로 이를 집계하고 분류하는 것만 해도 실로 엄청난 작업이었을 것이다.


일본 대표 미인으로 선정된 기쿠치 도키코는 기모노를 입고 무표정하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는데 갸름한 옆모습을 강조한 사진이라 그런지 ‘균정(均整)하고 청초(清濋)한 여성’이라는 평가를 적고 있다.

 

1931년 10월 8일, 오사카 마이니치신문(大阪每日新聞)에는 '미스 조선(ミス朝鮮)'을 선발한다는 공고가 실렸다. 5
▲ 이명숙, 기쿠치 도키코의 다른 사진

 

조선인 우승자 이명숙은 앳된 얼굴로 두 손을 뺨에 괴고 활짝 웃는 모습이 이채로운데 결과적으로 비슷비슷한 후보자들의 증명사진들 속에서 눈길을 끌 수 있었던 승부수가 된듯하다.

 

이명숙의 간단한 인물평을 보면 ‘건강하고 밝고 고아순미(高雅純美)한 명화(名花)고상하고 우아하며 티 없이 아름다운 미녀로 경성여자상업학교출신의 직업전선에 나선 근대적 여성이라 표현되고 있다. 이들은 선정될 때까지는 사진으로만 경쟁했으나 10월 25일 경성공회당(京城公會堂)에 모여 성대한 시상식을 가졌다.

 

1931년 10월 8일, 오사카 마이니치신문(大阪每日新聞)에는 '미스 조선(ミス朝鮮)'을 선발한다는 공고가 실렸다. 7
▲ 경성상업회의소(京城商業會議所). 2층은 경성공회당(京城公會堂)으로 사용되었다.

 

● 오사카 마이니치 ‘미스 조선’ 표창식을 거행 【매일신보 1931.10.24】

오사카 마이니치신문사 주최 미스 조선의 선정은 결국 이명숙 양과 기쿠치 도키코 양이 최후의 월계관을 획득하게 되었는데 동사 경성 지국에서는 오는 25(廿五) 일 오후 6시 반에 경성공회당에서 미스 조선의 표창식을 성대히 거행할 터이라 한다. 


두 미스 조선의 실물을 본 그날 경성공회당의 관객들은 과연 기대한 대로의 미인이라며 감탄했을까, 아니면 사진과 프로필에 속았다며 실망했을까.

 

Reference:
• 朝鮮新聞. 大阪毎日募集の『ミス朝鮮』二孃决定 (1931.10.21)
• 每日申報. 미스朝鮮 두麗人 大阪每日主催 (1931.10.22)
• 每日申報. 大每미쓰朝鮮 表彰式을 擧行 (1931.10.24)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