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외금강역(外金剛驛) 역사 모습

일제시대에 기차로 금강산 유람을 가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첫 번째, 경성역에서 경원선 열차를 타고 철원역에서 하차 후 금강산행 전차로 환승하고 내금강역(內金剛驛)에 내리면 장안사 입구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두 번째, 양양에서 출발하는 동해북부선을 타고 고성을 거쳐 외금강역(外金剛驛)에 내리면 금강산 입구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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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강산 노선도


‘조선철도 12년 계획(1927~1938)’의 일환으로 1932년 9월 16일에 개통식을 가진 외금강역 역사의 모습은 지금은 사라졌다는 것이 아쉬울 정도로 독특하고 아름다운 건물이었다.

 

당시 기록에 따르면, 외금강역 역사의 면적은 200평 정도로 공사비는 4만 원이 책정되었다.(조선일보 1932.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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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금강역 【매일신보 1932.11.18.】


외금강역은 강원도 고성군 외금강면 온정리에 속해있어 온정리역으로도 불렸다. 금강산에 화재가 발생하면 역사는 인근 주민들의 대피소로 활용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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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의 금강산청년역


현재 이곳에는 한국 국가철도공단이 건설한 금강산청년역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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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금강역【동아일보 194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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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성역을 출발하는 금강산 단풍놀이 단원일행 【조선중앙일보 1935.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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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금강역(1939)

 

외금강역 개통(外金剛驛開通)


동해안 북부선 철도의 외금강역 개통식은 1932년 9월 16일 오전 11시부터 역전광장에서 거행되었다.

 

총독부 철도국으로부터 좌등 참사(佐藤參事) 하기와라(萩原) 운수사무소장이 출석하였고 정(鄭) 고성군수 이하 당지 관민유력자 수백 명이 열석하여 자못 성대한 식을 거행하였으며, 오후 2시부터는 하교(霞橋) 초도식(初渡式)을 거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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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31년의 외금강역 인근 지도


아래 사진은 개통식을 거행하는 외금강역의 전경과 하교 초도식 광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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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금강역 전경 【매일신보 193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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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교 초도식 【매일신보 1932.0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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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교 초도식 【조선신문 1932.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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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통식에 모인 군중들 【조선신문 1932.09.19.】


초도식(初渡式)이란, 다리를 건설하고 처음 건너는 의식을 말한다. 당시 외금강역을 마주한 강을 건너는 교량도 함께 건설되었기에 개통식과 함께 초도식이 거행되었다. 사진에서 신관이 앞장을 서고, 그 뒤를 지역 유력인사들이 뒤따르는 일본식 초도식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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