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바꾼 미국 대통령’으로 보는 1948년 미국 대선

2021년 11월 14일 방송되었던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는 투표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다루던 중 ‘날씨가 바꾼 선거‘라는 제목으로 194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해당 내용을 짧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948년, 공화당의 대선주자였던 토머스 듀이(Thomas E. Dewey)가 민주당 출신의 현직 대통령 해리 트루먼(Harry S. Truman)에게 여론조사에서 압도적으로 앞서고 있었다.

 

그런데 선거 당일 공화당의 우세지역인 미국 북부에는 폭풍우를 동반한 비가 내려 투표율이 떨어지고, 민주당의 우세지역인 남부에는 화창한 날씨가 펼쳐지면서 투표율이 올라가 여론조사에서 밀리던 트루먼이 대역전승을 거두었다는 것이다.

 

2021년 11월 14일 방송되었던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는 투표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다루던 중 '날씨가 바꾼 선거'라는 제목으로 194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1
▲ 1944년에 이어 다시 맞붙은 듀이와 트루먼 ⓒMBC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는 착오와 왜곡이 섞인 잘못된 내용이다.

 

미국의 간접선거제도

 

만약 이 이야기가 전체 투표수를 따지는 직접선거제를 채택하고 있는 한국의 상황이라면 가능성이 있을 법한 얘기로 들어줄 수 있다. 예를 들어 경상도에만 태풍이 덮쳐서 유권자들이 투표를 대거 포기한다거나, 전라도만 유독 화창해서 투표율이 엄청나게 높아진다면 전체 투표수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은 주별로 선거인단(총 538명)을 뽑아 그들이 대리인으로서 투표하는 간접선거제도로, 특정 주에서 과반을 점유할 경우 그 주의 선거인단을 전부 가지는 ‘승자독식‘제도여서 전체 득표수와는 무관하다.

 

2021년 11월 14일 방송되었던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는 투표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다루던 중 '날씨가 바꾼 선거'라는 제목으로 194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3
▲ 1948년 미국 대선 결과. 선거인단 303 대 189로 트루먼이 당선되었다.


즉 공화당 지지율이 높은 북부 지역에 태풍이 덮쳐서 평소 1,000명이 투표할 것을 날씨 때문에 100명만 투표하더라도 과반을 넘겨 승리하기만 하면 해당 지역의 선거인단을 독차지하기 때문에 공화당 지지자들의 집만 골라 태풍이 몰아치지 않는 한, 결과는 지지율대로 나올 수밖에 없다.

 

2021년 11월 14일 방송되었던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는 투표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다루던 중 '날씨가 바꾼 선거'라는 제목으로 194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5
▲ 근소한 표 차이가 아닌 선거인단 100명 이상의 차이가 났다.

 

원문 서적의 비전문성


이 억지스러운 이야기의 소스를 찾아보니 몇몇 국내 언론사에서도 기사로도 다루었는데, 모두 15여 년 전에 출판된 ‘세계사 캐스터(로라 리 지음)’라는 책을 근거로 가리키고 있다.

 

2021년 11월 14일 방송되었던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는 투표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다루던 중 '날씨가 바꾼 선거'라는 제목으로 194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7
▲ 세계사 캐스터(2006년 출판)


저자 로라 리(Laura Lee)의 약력을 보면 ‘발레 전문가‘로 어린이 동화나 에세이도 저술하고 있다. 이런 이력으로 볼 때 자신의 추리를 바탕으로 쓴 흥미위주의 책 같은데 외국서적이라는 이유로 정론처럼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발레 전문가도 다른 분야에 조예를 가질 수 있지만 ‘선거 결과’는 다양한 요인과 돌발상황이 엮여서 도출되기 때문에 정치를 전공한 전문가라도 승리나 패배의 원인은 한 가지로 확언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무엇보다 원서 ‘Blame It on the Rain: How the Weather Has Changed History‘를 찾아보니 표지에 존 F. 케네디의 사진과 이런 문장이 있다.

 

Would JFK Have Been Elected President If It Had Been Sunny on Election Day in 1959?
“1959년 선거일에 날씨가 맑았다면 JFK가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까?”

 

2021년 11월 14일 방송되었던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는 투표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다루던 중 '날씨가 바꾼 선거'라는 제목으로 194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9
▲ 원서 ‘Blame It On The Rain’ 표지


저자는 만물날씨설 주창자인지 존 F. 케네디의 선거 승리도 날씨 탓으로 추정하고 있지만, 케네디를 당선시킨 제35대 미국 대통령 선거일은 1959년이 아닌 1960년 11월 8일이었다. 가장 기본적인 사실관계조차 틀리는 책의 주장을 믿을 수가 있을까.

 

선거에 날씨가 미치는 영향


그런데 로라 리가 책에서 말하고 있는 주장은 서프라이즈 제작진과는 살짝 차이점이 있다.


MBC 서프라이즈 제작진은 ‘공화당 우세지역인 미국 북부 투표율 급락’, ‘민주당 우세지역인 남부 투표율 급등’이라는 나레이션을 방송했다. 위에서 말했듯이 미국 북부 전체가 투표율이 떨어진다 해도 각 주에서 과반을 넘기기만 하면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미국 선거제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2021년 11월 14일 방송되었던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는 투표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다루던 중 '날씨가 바꾼 선거'라는 제목으로 194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11
▲ 선거인단 제도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그래픽 ⓒMBC


반면 로라 리의 주장은 MBC처럼 미국 대륙 전체에 대해 말하는 게 아니라, ‘격전을 벌인 일부 주’를 놓고 ‘일리노이주에서 발생한 태풍은 북부의 공화당 지지자 지역을 휩쓸었고,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태풍 역시 남부의 공화당 지지자 거주지를 골라서 덮쳤다‘는 것이다.

 

이 논리라면 공화당 지지자들의 투표율은 낮아지고, 민주당 지지자들의 투표율이 높아져 해당 주의 선거 결과가 뒤바뀔 수도 있을법하다.

 

2021년 11월 14일 방송되었던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는 투표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다루던 중 '날씨가 바꾼 선거'라는 제목으로 194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13
▲ 1948년, 캘리포니아 주(좌)와 일리노이 주(우)의 카운티 별 선거결과


하지만 선거전문가들에 따르면 날씨가 선거에 미치는 영향은 아주 미약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또한 그 미미한 영향조차 오히려 비가 오면 공화당 후보들이 유리해진다는 통설이 있다.

 

실제로 연구가 진행된 사례도 있다. 미국 다트머스대학과 호주국립대학교(ANU)의 연구에 따르면, 실제로 날씨에 따른 유권자들의 성향 변화가 관찰되었다.

 

연구를 진행한 유사쿠 호리우치(堀内勇作) 교수는 “전체 유권자 중 원래대로라면 민주당에 투표할 사람의 최소 1% 정도가 비가 오면 공화당 후보로 마음을 바꾸었다“라고 설명했다. 이는 ‘기상조건이 좋지 않을 때 인간에게 위험과 도전을 회피하고자 하는 생존본능이 발휘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한다.

 

또 2007년 정치학 저널(Journal of Politics)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선거일에 비나 눈이 내리면 투표율이 낮아지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연구원들은 14번의 미국 대통령 선거를 바탕으로 22,000곳 이상의 기상관측소를 통해 악천후와 투표율 간의 연관성을 조사했는데 정상 조건보다 강우량이 1인치(2.54cm)가 증가할 경우 투표율은 1%가 감소되며, 강설량이 1인치가 증가할 경우 투표율은 5%까지 하락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역시 위와 마찬가지로 결과는 공화당에게 유리한 경향으로 나타났다.

 

2021년 11월 14일 방송되었던 MBC 예능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는 투표에 관한 에피소드들을 다루던 중 '날씨가 바꾼 선거'라는 제목으로 194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 관한 내용을 다루었다. 15
▲ 자신의 패배를 보도한 신문을 든 트루먼. 1948년 선거는 방송과 여론조사의 오류를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악천후는 공화당의 득표에 도움이 된다‘라는 결과는 로라 리의 주장과는 완전히 상반되는 연구결과로, 그녀는 환경이나 상황에 따라 변할 수도 있는 인간의 심리에는 생각이 미치지 못한 듯하다.

 

어쨌든 기상조건이 선거 이외에도 범죄, 살인, 자살과 같은 사회현상 뿐만 아니라 주식투자, 기업인들의 투자 결정 등에도 영향을 끼친다는 연구결과는 계속해서 등장하고 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