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와 과거가 공존하는 1969년의 아프가니스탄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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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1
▲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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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3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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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5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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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7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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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9
▲ 카불대학교 기숙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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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11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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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13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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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15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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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17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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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19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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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21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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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23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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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25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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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27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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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29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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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31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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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33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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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35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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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37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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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39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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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41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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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43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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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45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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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47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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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49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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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불 국제공항(Kabul International Airport). 1960년 소련이 건설하였으며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파괴되었다가 재건되었다. ▲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의 항공촬영 모습 ▲ 카불 구 시가지 전경 ▲ 1932년에 문을 연 카불대학교(Kabul University) 캠퍼스. 1950년에는 여성들에게도 개방되면서 2021년 8월 현재 2,2000명의 학생 중 43%가 여학생이다. 하지만 탈레반이 재집권하면서 이들의 미래는 알 수 없다. ▲ 카불대학교 기숙사 ▲ 서기 5세기경에 건설된 카불의 발라 히사르(Bala Hissar) 요새 ▲ 카불 구 시가지의 오래된 집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50만 명의 인구로 아프가니스탄에서 인구 규모에서는 세 번째로 큰 도시이다.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의 항공촬영 모습 ▲ 나디르 샤(Nadir Shah, 1688~1747)의 영묘.(관련 글: 비운의 공작좌) ▲ 마자르이샤리프(Mazar-i-Sharif) 공항. 1960년대 냉전기간 동안 미국이 중동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기 위해 건설한 곳으로 아프가니스탄에서 가장 큰 공항 중 하나(네 번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1980년대에는 냉전의 상대인 소련군이 무자헤딘을 타격하기 위해 사용하기도 하였다. ▲ 부르카를 쓰고 어딘가로 가는 여성 ▲ 부르카를 쓰고 아이를 안고 가는 아프가니스탄 여성. 앞으로 드러난 현대적인 스커트가 눈길을 끈다. ▲ 면화를 가득 실은 트럭. 이 시기 아프가니스탄은 과일과 면화가 수출량의 60%를 차지할 정도였으나 내전으로 농지와 관개시설이 파괴되면서 수출량이 급감했다. 무엇보다 300만 명의 농민들이 국외로 탈출했다. ▲ 다양한 열대과일 상인 ▲ 상공에서 본 바미얀 계곡 ▲ 바미얀에 거주하는 유목민들의 몽골식 유르트(yurt) ▲ 불상이 있는 바미얀 계곡 ▲ 지금은 사진으로만 볼 수 있는 바미얀 석불. 파괴 이후 잔해 속에서 페르시아의 유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관련 글: 페르시아의 불사조) ▲ 바미얀 석불은 2001년 3월 탈레반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지만, 1969년 사진 속에서도 이미 잘려나간 얼굴과 파손된 다리로 추측할 수 있듯이 오랜 세월 이곳의 무슬림 사회로부터 배척되는 건축물이었다. ▲ 바미얀 계곡에 있는 고대 요새의 흔적 ▲ 칸다하르 국제공항(Kandahar International Airport). 아프가니스탄에서 두 번째로 큰 국제공항이자 최대의 군사기지로 역시 1950년대 후반 미국이 영향력 강화를 위해 건설하였다. ▲ 힌두쿠시(Hindu Kush) 산맥 풍경. 해발 7,000m 이상의 고산이 많은 곳으로 7,708m의 티리치미르(Tirich Mir)산이 가장 높다. ▲ 힌두쿠시 산맥에 있는 고대의 요새. 이 일대는 과거 탈레반이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 힌두쿠시 산맥의 장엄한 풍경. '힌두 쿠시'란 힌두인들이 죽는 곳이라는 의미로 과거 인도의 노예들이 이송 중 이곳에서 많이 사망해서 붙여진 이름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p> 51
▲ 상공에서 본 힌두쿠시 산맥. 이 지역은 영국이 설정한 국경선 탓에 파키스탄과 아프가니스탄의 오랜 분쟁지역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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