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여성 종군기자가 촬영한 1989년 캄보디아 프놈펜

프랑스의 여성 종군기자 프랑수아즈 드뮐데르(Françoise Demulder)는 젊은 시절엔 모델이었으나, 1970년대 초 베트남에 관광차 입국했다가 현지의 상황을 더 잘 이해하고 싶은 마음에 눌러앉게 되었다.

 

드뮐데르는 당시만 해도 결코 사진작가는 아니었다. 하지만 혼란한 베트남의 사진들을 원하는 매체가 줄을 섰고 생계를 위해 사진을 찍다 보니, 어느 순간 그녀는 실전에서 훈련된 베테랑 종군기자가 되어 있었다.

 

아래의 사진은 프랑수아즈 드뮐데르가 1989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을 촬영한 것이다.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Khmers Rouges)가 저지른 킬링필드 참사가 일어난 지 10여 년이 흐른 후의 모습이다. 1
▲ 프랑수아즈 드뮐데르(Françoise Demulder, 1947~2008)

 

베트남의 적화통일이 다가오며 대부분의 외국인이 철수한 가운데서도 드뮐데르는 사이공에 남아있었는데 이때 많은 사진을 촬영했다. 그 유명한 월남 패망 당시 북베트남군의 탱크가 사이공의 대통령궁을 박살 내며 진입하는 상징적인 사진이 바로 그녀의 작품이다.

 

아래의 사진은 프랑수아즈 드뮐데르가 1989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을 촬영한 것이다.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Khmers Rouges)가 저지른 킬링필드 참사가 일어난 지 10여 년이 흐른 후의 모습이다. 3
▲ 월남의 대통령궁을 부수고 진입하는 북베트남 탱크(1975.04.30)

 

이후 1977년에는 ‘세계보도사진전 올해의 사진상(World Press Photo of the Year)’을 받기도 했는데(아래 사진), 이는 여성으로서는 최초의 수상이었다.

 

아래의 사진은 프랑수아즈 드뮐데르가 1989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을 촬영한 것이다.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Khmers Rouges)가 저지른 킬링필드 참사가 일어난 지 10여 년이 흐른 후의 모습이다. 5
▲ 1976년 1월 18일, 베이루트의 팔레스타인 거주지를 습격한 팔랑헤(Falange) 민병대에게 팔레스타인 여성이 멈출 것을 호소하고 있다. 이날 팔랑헤 민병대는 약 1,500명을 학살했으며, 이를 ‘카란티나 학살(Karantina massacre)’이라 칭한다. | 1977 세계보도사진전 올해의 사진상

 

아래의 사진은 프랑수아즈 드뮐데르가 1989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을 촬영한 것이다.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Khmers Rouges)가 저지른 킬링필드 참사가 일어난 지 10여 년이 흐른 후의 모습이다.

 

아래의 사진은 프랑수아즈 드뮐데르가 1989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을 촬영한 것이다.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Khmers Rouges)가 저지른 킬링필드 참사가 일어난 지 10여 년이 흐른 후의 모습이다. 7
▲ 프놈펜의 프랑스 대사관 모습. 크메르 루주 시절, 프랑스 대사관은 외국인과 망명을 원하는 캄보디아인들의 피난처로 기능했다.

아래의 사진은 프랑수아즈 드뮐데르가 1989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을 촬영한 것이다.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Khmers Rouges)가 저지른 킬링필드 참사가 일어난 지 10여 년이 흐른 후의 모습이다. 9
▲ 인력거(툭툭) 한대에 온 가족이 모두 타고 가고 있는 모습. 거리는 대부분 자전거와 오토바이, 인력거가 주를 이루고 있다.

아래의 사진은 프랑수아즈 드뮐데르가 1989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을 촬영한 것이다.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Khmers Rouges)가 저지른 킬링필드 참사가 일어난 지 10여 년이 흐른 후의 모습이다. 11
▲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 코끼리가 스쿨버스 역할을 하고 있다.

아래의 사진은 프랑수아즈 드뮐데르가 1989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을 촬영한 것이다.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Khmers Rouges)가 저지른 킬링필드 참사가 일어난 지 10여 년이 흐른 후의 모습이다. 13
▲ 거리의 긴꼬리원숭이 새끼가 과일을 먹고 있다. 줄에 묶여 길거리 서커스용으로 사육 중이다.

아래의 사진은 프랑수아즈 드뮐데르가 1989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을 촬영한 것이다.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Khmers Rouges)가 저지른 킬링필드 참사가 일어난 지 10여 년이 흐른 후의 모습이다. 15
▲ 불상이 진열된 석재 조각 상점. 캄보디아는 인구 전체의 95%가 불교를 믿는 불교국가이다.

아래의 사진은 프랑수아즈 드뮐데르가 1989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을 촬영한 것이다.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Khmers Rouges)가 저지른 킬링필드 참사가 일어난 지 10여 년이 흐른 후의 모습이다. 17
▲ 크메르족(Khmer people)의 결혼식 연회 모습. 크메르족은 캄보디아 인구의 90%를 차지하는 주요 구성원이다.

아래의 사진은 프랑수아즈 드뮐데르가 1989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을 촬영한 것이다.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Khmers Rouges)가 저지른 킬링필드 참사가 일어난 지 10여 년이 흐른 후의 모습이다. 19
▲ 결혼식을 마친 신혼부부가 호텔 밖을 나오고 있다.

아래의 사진은 프랑수아즈 드뮐데르가 1989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을 촬영한 것이다.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Khmers Rouges)가 저지른 킬링필드 참사가 일어난 지 10여 년이 흐른 후의 모습이다. 21
▲ 인력거에 에비앙(Evian) 생수병을 담는 노동자들. 캄보디아는 현재도 수입산 생수는 태국과 프랑스에서 가장 많이 들여오고 있다. 2017년 기준 캄보디아의 생수 수입 상위 5개국은 《태국-프랑스-벨기에-한국-피지》 순이다.

아래의 사진은 프랑수아즈 드뮐데르가 1989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을 촬영한 것이다.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Khmers Rouges)가 저지른 킬링필드 참사가 일어난 지 10여 년이 흐른 후의 모습이다. 23
▲ 프놈펜 벙깍호수(Boeung Kak)에서 여성들이 요트를 타고 있다.

아래의 사진은 프랑수아즈 드뮐데르가 1989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을 촬영한 것이다.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Khmers Rouges)가 저지른 킬링필드 참사가 일어난 지 10여 년이 흐른 후의 모습이다. 25
▲ 메콩강의 수상가옥과 뒤쪽에 보이는 실버 파고다(Silver Pagoda). 왕실의 불교사원으로 불당의 바닥에 5,329개의 은 타일이 깔려서 붙여진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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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6월, 캄보디아 중앙우체국 앞을 지나가는 인력거. 이 건물은 프랑스 식민지 시기인 1895년에 세워진 건물로 현재도 여전히 캄보디아 우편시스템의 본점으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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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6월, 프놈펜 왕립 기차역(Phnom Penh Royal Railway Station)의 모습. 1932년에 지어졌으며 노후화로 사용이 중단되었다가 2010년 10월 22일 개축하여 재개장하였다. 중단되었던 열차 운행도 2016년 5월부터 재개되어 현재도 사용 중인 역이다.

아래의 사진은 프랑수아즈 드뮐데르가 1989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을 촬영한 것이다.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Khmers Rouges)가 저지른 킬링필드 참사가 일어난 지 10여 년이 흐른 후의 모습이다. 31
▲ 수도 프놈펜과 제2의 도시 바탐방(Battambang)을 잇는 열차가 기차역에 잠시 정차한 틈을 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열차 위에 가장 저렴한 요금을 냈을 사람들이 올라가 있는 모습도 보인다.

아래의 사진은 프랑수아즈 드뮐데르가 1989년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Phnom Penh)을 촬영한 것이다. 악명 높은 크메르 루주(Khmers Rouges)가 저지른 킬링필드 참사가 일어난 지 10여 년이 흐른 후의 모습이다. 33
▲ 1989년 6월, 프놈펜과 바탐방을 잇는 열차의 내부. 좌석도 편의시설도 없는 화물칸 같은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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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6월, 프놈펜 왕립 기차역에 도착한 열차의 지붕에 승객들이 앉아있다. 지붕이 만들어져 있는 것으로 봐서는 엄연한 유료 좌석인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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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9년 10월, 프놈펜 왕립 기차역 승강장 풍경. 휴식을 취하는 승객과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상인들이 어우러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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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놈펜 왕립 기차역 근처에서 승객들을 대상으로 메콩강(Mekong)에서 잡아온 생선을 파는 상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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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용 교습소에서 무용복을 입은 여성들이 전통무용을 배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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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크러마(Krama, ក្រមារ)’를 목도리처럼 착용한 군인들. 면이나 실크로 만들어지는 크러마는 캄보디아의 상징으로 머리에 두건처럼 쓰거나 얼굴을 가리거나 아기를 감싸거나 치마처럼 몸에 걸치는 등 다용도로 쓰이는 의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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