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파리의 패션쇼에 등장한 ‘인형 모델’

패션산업으로 유명한 도시는 여러 곳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프랑스 파리는 ‘패션의 수도’라고 불릴만하다.

 

2차 세계대전중 프랑스를 점령한 나치 독일은 파리의 패션산업을 붕괴시키기 위한 일련의 계획을 시도한다. 나치는 프랑스인의 패션감각이 제3제국의 도시들을 촌스러운 유럽의 변방에서 패션의 중심지로 변모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1945년 3월 27일, 루브르 박물관 인근에 있는 파리 장식미술관(Musée des arts décoratifs de Paris)에서 열린 이 전시회는 패션에 굶주렸던 프랑스인들의 갈증을 증명하듯이 몇 주 동안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관람했고, 잠시나마 평화로웠던 전쟁 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1
▲ 나치 점령기간 중 루제 드 릴(Rouget-de-Lisle)거리 | 2019년의 모습


이에 독일은 파리의상조합학교의 교장이었던 뤼시앵 를롱(Lucien Lelong, 1889~1958)에게 ‘수세대에 걸쳐 기술이 전수된 쿠튀리에(패션 디자이너)와 숙련공, 그리고 아틀리에(의상점)는 모두 베를린과 빈으로 이전될 것‘이라는 통보를 하기에 이르렀다. 뤼시앵 를롱은 “프랑스의 패션은 파리에만 존재하며 이는 다른 곳으로 옮겨질 수 없다”라고 반박하기도 했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전쟁의 결과가 독일에게 유리하게 진행되었다면 를롱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프랑스의 패션산업은 와해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다행히 모두가 알듯이 연합군은 승리했고 13,000명의 장인이 독일로 강제로 끌려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지만 프랑스의 경제와 패션산업이 큰 타격을 입은 것도 현실이었다.

 

1945년 3월 27일, 루브르 박물관 인근에 있는 파리 장식미술관(Musée des arts décoratifs de Paris)에서 열린 이 전시회는 패션에 굶주렸던 프랑스인들의 갈증을 증명하듯이 몇 주 동안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관람했고, 잠시나마 평화로웠던 전쟁 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3
▲ 뤼시앵 를롱과 파리의상조합학교(l’Ecole de la Chambre Syndicale de la Couture Parisienne)


파리가 침략자들로부터 해방되자마자 쿠튀리에들은 죽어가던 패션산업도 되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1939년 전쟁 발발 이후 유럽인들은 새 옷을 살 경제적, 정신적 여유가 없었고 이에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각국의 많은 유명의상점이 문을 닫거나 파산 직전에 몰린 상태였다.

 

파리의 쿠튀리에들 역시 패션쇼를 준비할 자금이 충분히 없었고, 의류업계도 이들에게 필요한 양의 원단을 제공할 여건이 되지 못했다.

 

결국 쿠튀리에들은 주어진 여건 속에서 독창적인 방법을 떠올렸다. 바로 작은 크기로 축소된 인형을 패션쇼의 모델로 사용하는 방안이 제안된 것이다. 모델이 작다면 이들이 입을 옷도 작게 만들 수 있다는 아이디어였다.

 

1945년 3월 27일, 루브르 박물관 인근에 있는 파리 장식미술관(Musée des arts décoratifs de Paris)에서 열린 이 전시회는 패션에 굶주렸던 프랑스인들의 갈증을 증명하듯이 몇 주 동안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관람했고, 잠시나마 평화로웠던 전쟁 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5
▲ 인형 모델에게 옷을 입히는 디자이너와 숙련공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Cristóbal Balenciaga), 뤼시앵 를롱(Lucien Lelong), 엘사 스키아파렐리(Elsa Schiaparelli), 니나 리치(Nina Ricci), 피에르 발망(Pierre Balmain), 크리스찬 디올(Christian Dior)등 많은 패션 디자이너와 세트를 담당한 건축가 크리스찬 베라드(Christian Bérard), 보석상, 헤어 디자이너들이 최초의 인형 패션쇼에 참여했다.

 

1945년 3월 27일, 루브르 박물관 인근에 있는 파리 장식미술관(Musée des arts décoratifs de Paris)에서 열린 이 전시회는 패션에 굶주렸던 프랑스인들의 갈증을 증명하듯이 몇 주 동안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관람했고, 잠시나마 평화로웠던 전쟁 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7
▲ 인형 디자인은 일러스트레이터 Éliane Bonabel(왼쪽), 몸은 공예가 Jean Saint-Martin(가운데), 머리는 조각가 Joan Rebull(오른쪽)이 담당했다.


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의상을 70cm(27인치) 정도의 크기로 만든 총 228개의 인형에게 입혀 ‘패션 극장(Theatre de la Mode)’으로 명명된 전시회를 개최했다.

 

1945년 3월 27일, 루브르 박물관 인근에 있는 파리 장식미술관(Musée des arts décoratifs de Paris)에서 열린 이 전시회는 패션에 굶주렸던 프랑스인들의 갈증을 증명하듯이 몇 주 동안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관람했고, 잠시나마 평화로웠던 전쟁 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9
▲ 엘사 스키아파렐리가 출품한 인형 모델. François Lesage가 수놓은 드레스, 헤어스타일은 Marc Ruyer, 장갑은 Faré, 티아라와 벨트, 어깨패드는 Van Cleef & Arpels이 담당했다.

 

1945년 3월 27일, 루브르 박물관 인근에 있는 파리 장식미술관(Musée des arts décoratifs de Paris)에서 열린 이 전시회는 패션에 굶주렸던 프랑스인들의 갈증을 증명하듯이 몇 주 동안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관람했고, 잠시나마 평화로웠던 전쟁 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모든 수익금은 전쟁 후유증으로 고통받는 장병들과 유족들, 민간인 피해자들을 돕는 데 사용되었다.

 

1945년 3월 27일, 루브르 박물관 인근에 있는 파리 장식미술관(Musée des arts décoratifs de Paris)에서 열린 이 전시회는 패션에 굶주렸던 프랑스인들의 갈증을 증명하듯이 몇 주 동안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관람했고, 잠시나마 평화로웠던 전쟁 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11
▲ 뤼시앵 를롱이 출품한 인형 모델이 도트무늬가 있는 파란색쉬폰드레스와 밀짚모자를 쓰고 있다.


파리의 패션 극장이 성황리에 끝나자 다른 유럽 국가들도 주최측을 초청하여 인형들은 ‘패션의 대사‘로 전 세계를 순방했으며, 현재는 마지막 전시회가 열린 미국 워싱턴 주 골든데일에 있는 메리힐 미술관(Maryhill Museum of Art)에 소장되어 있다.

 

1945년 3월 27일, 루브르 박물관 인근에 있는 파리 장식미술관(Musée des arts décoratifs de Paris)에서 열린 이 전시회는 패션에 굶주렸던 프랑스인들의 갈증을 증명하듯이 몇 주 동안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관람했고, 잠시나마 평화로웠던 전쟁 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13
▲ 화가 앙드레 디그니몽(André Dignimont)이 그린 배경에 구성된 「Palais Royale」 세트 (메리힐 미술관 소장)

 

1945년 3월 27일, 루브르 박물관 인근에 있는 파리 장식미술관(Musée des arts décoratifs de Paris)에서 열린 이 전시회는 패션에 굶주렸던 프랑스인들의 갈증을 증명하듯이 몇 주 동안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관람했고, 잠시나마 평화로웠던 전쟁 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15
▲ 화가 앙드레 보러페르(André Beaurepaire)가 그린 배경에 구성된 「La Grotto Enchantée」 세트 (메리힐 미술관 소장)

 

1945년 3월 27일, 루브르 박물관 인근에 있는 파리 장식미술관(Musée des arts décoratifs de Paris)에서 열린 이 전시회는 패션에 굶주렸던 프랑스인들의 갈증을 증명하듯이 몇 주 동안 10만 명이 넘는 인원이 관람했고, 잠시나마 평화로웠던 전쟁 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되어주었다. 17
▲ 화가 장 데니스 말클레스(Jean-Denis Malclès)가 그린 배경에 구성된 “Le Jardin Marveilleux” 세트 (메리힐 미술관 소장)

 

‘작은’모델들은 단순한 패션쇼를 선보인 것이 아니라 세계인들에게 멋진 스타일과 아름다운 의상이라는 것이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일깨워주는 ‘거대한’일을 해냈고, 프랑스의 쿠튀리에들은 전쟁이나 고난도 희망과 예술혼을 짓밟을 수 없다는 것을 전 세계에 증명해냈다.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