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국 간판으로 본 1914년의 화류병 만연

1914년 1월 1일, 도락구상회(ドラッグ商會)의 경성 황금정 삼정목(黃金井三丁目, 현재의 을지로 부근) 지점은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는 새해인사 문구가 적힌 광고를 실었다.

 

함께 실린 상점의 사진은 아쉽게도 황금정 삼정목 지점이 아니라 간판에 적혀있듯이 ‘오사카 도락구상회 지점‘인데, 현대의 프랜차이즈가 그렇듯이 각 지점의 간판 디자인이나 분위기는 비슷했을 것으로 보인다.

 

1914년 1월 1일, 도락구상회(ドラッグ商會)의 경성 황금정 삼정목(黃金井三丁目, 현재의 을지로 부근) 지점은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는 새해인사 문구가 적힌 광고를 실었다. 1
▲ 도락구상회 오사카 지점

 

우선 ‘도락구(ドラッグ)’는 영어 ‘Drug‘의 일본어 표기방식으로 ‘약방(약국)’을 말한다. (관련 글: 1920년대 경성의 약방 내부)

 

그 위에는 가게 이름보다 더 큰 글자로 ‘위장병(胃腸病)’이라고 적혀있다. 아무래도 위생관념이 떨어지는 시기에 흔한 것이 배탈인 만큼 가장 수요가 많았던 병이었을 것이다.

 

세로로 된 간판에는 ‘자궁병(子宮病)’과 ‘하약(下の藥)’이라고 적혀있다. 하약(下の藥)은 ‘낙태약’ 혹은 ‘변비약’이라는 의미로 쓰일 수 있는데 당시에도 낙태 시술은 임산부의 몸이 쇠약해 생명이 위험하거나 급성열병, 폐결핵이 있을 시에나 가능했다. 그러므로 거리의 간판에 낙태약을 판다는 내용을 쓸 리가 없기 때문에 변비약을 의미한다.

 

그리고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이 잘 볼 수 있게 공중에 높이 띄운 둥근 간판에는 ‘화류병(花柳病)’이라고 적혀있다.

 

1914년 1월 1일, 도락구상회(ドラッグ商會)의 경성 황금정 삼정목(黃金井三丁目, 현재의 을지로 부근) 지점은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는 새해인사 문구가 적힌 광고를 실었다. 3
▲ 화류병(花柳病) 간판


화류병
(花柳病). 말 그대로 화류계(花柳界)에서 전염되는 질병으로 ‘성병(性病)’을 뜻하는 것이다.

 

20세기 초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집중화 현상이 생기면서 급격히 증가한 화류병은 소위 ‘문명병(文明病)’이라고 불렸다.

 

남녀 간의 결혼이 이르고 사람 간의 접촉이 없었던 농업시대와는 다른 세상이 되었지만, 병원에 대한 접근성이나 위생관념은 그에 따라가지 못하면서 화류병은 쉽게 제어되지 않았고 조선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의 골칫거리로 자리 잡았다.

 

1914년 1월 1일, 도락구상회(ドラッグ商會)의 경성 황금정 삼정목(黃金井三丁目, 현재의 을지로 부근) 지점은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는 새해인사 문구가 적힌 광고를 실었다. 5
▲ 화류병 전문약방 도락구상회(경성 황금정 삼정목)


요즘 같으면 외부 간판에 ‘성병(性病)’이라고 대문짝만 하게 적어놓으면 약국이나 환자나 민망하겠지만 저 당시의 화류병은 그만큼 흔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해도 부위상 감추려는 사람들이 많았고, 수은이나 유황을 피우는 등의 민간요법을 행하다가 사망하는 사례도 종종 발생하였기 때문에 언론에서는 ‘가족끼리도 전염될 수 있는 병이므로 부끄러워하지 말라‘며 최대한 화류계를 드나든다는 낙인을 피하게 해서 치료를 받도록 유도했다.

 

1914년 1월 1일, 도락구상회(ドラッグ商會)의 경성 황금정 삼정목(黃金井三丁目, 현재의 을지로 부근) 지점은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는 새해인사 문구가 적힌 광고를 실었다. 7
▲ 절대가인(絶代佳人)이라도 화류병에 걸리면 추부(醜夫)로 변한다는 광고. 미인과 함께 화류병으로 얼굴이 문드러진 환자(왼쪽)의 사진이 실렸다. 미인을 담당한 모델은 ‘예단일백인(46)’에 소개된 기생 ‘도홍(桃紅)’이다. 【매일신보 1914.11.23】

 

그럼에도 화류병은 점점 늘어만 갔는데, 개성 위생계에서는 한 달에 네 번씩 기생들을 상대로 검사를 실시함으로써 다른 지역보다 화류병이 적었다고 한다.

 

기록에 따르면 1937년에 개성의 기생(일본인 포함) 150명을 검사한 결과, 화류병에 걸린 기생은 ‘겨우(?)’ 34명이었고 몸을 파는 창기 50명 중에는 31명의 화류병 환자가 발견되었다. (조선일보 1938.02.02)

 

1914년 1월 1일, 도락구상회(ドラッグ商會)의 경성 황금정 삼정목(黃金井三丁目, 현재의 을지로 부근) 지점은 '근하신년(謹賀新年)'이라는 새해인사 문구가 적힌 광고를 실었다. 9
▲ 22.7%의 수치를 ‘겨우’라고 표현할 정도로 화류병은 만연했다.


비율상 전혀 낮은 수치가 아닌데도 이를 ‘타지방 보다 적은 숫자‘라고 하는 것을 보면 당시 화류병이 어느 정도로 만연한 것인지 짐작이 가능하다. 이는 위에 말했듯이 조선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었으며, 일본은 본토에 화류병 예방령을 공포하면서 ‘화류병이 있는 자가 속이고 매음을 할 경우 3개월 이하의 징역‘에 처하도록 할 정도로 시급한 해결과제였다.

 

또 조선총독부에서 발표한 1938년 조선 전역의 화류병 환자 통계를 보면 매독과 임질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가운데 엄청난 수치를 보여주고 있다.

 

• 매독:
– 조선인: 43,486명
– 일본인: 14,292명
– 외국인: 951명

 

• 임질:
– 조선인: 69,723명
– 일본인: 27,333명
– 외국인: 1,000명


이 밖에 기타 화류병까지 합하면 환자의 총합계는 177,168명에 달했고 이외에 화류계 종사자(창기, 예기, 작부)들에서도 9,340명의 환자들이 추가로 집계되었다.

 

심지어 이 수치는 병원을 찾아온 환자들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것이어서 실제 화류병 환자는 이보다 두세 배를 뛰어넘는 최소 5~60만 명 이상으로 추정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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