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2년, 이란 여자축구팀 선수들의 사진

이란의 프로축구팀 ‘페르세폴리스 FC‘는 국내 축구팬들에게는 익숙한 팀이다.

 

바로 2020년 12월 19일, 한국의 울산 현대가 8년 만에 아시아 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차지할 때 결승전 상대였기 때문.

 

1963년 이란의 수도 테헤란을 연고지로 창단한 페르세폴리스는 원정팀에게는 ‘지옥의 구장’으로 불리는 아자디 스타디움을 홈으로 쓰고 있으며, 2018년과 2020년에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 오른 강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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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페르세폴리스 FC의 엠블럼과 10만명 수용규모의 아자디 스타디움


하지만 경기 외적인 사안으로 논란에 오른 바가 있는데, 바로 여성들에 대한 과도한 규제 때문.

 

여성들의 축구장 출입을 막는 이란


2018년 11월 10일, AFC 챔피언스리그 일본 가시마 앤틀러스와 페르세폴리스의 결승 2차전이 열린 아자디 스타디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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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자디 스타디움의 여성관중들이 ‘#WE CAN’이라는 피켓을 든 모습


그런데 이날 ‘경기장에 무단으로 출입한 여성들이 경찰에 체포되었다’는 뉴스가 외신을 통해 보도되었다. 익히 알려져 있듯이 이란은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로 여성들의 경기장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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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AFC 챔피언스리그 결승 2차전의 여성관중 (2018.11.10)


경기장 출입금지는 이란 여성단체들이 내세우는 불만요소 중의 하나이기도 하지만, 이란대표팀은 아시아의 강호로 실제로 국민들에게 인기가 높다 보니 축구장에 들어가고자 하는 이란 여성들의 분투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질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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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파르 파나히 감독의 ‘오프사이드(Offside, 2006)’


이란의 정치인들은 늘 ‘여성들의 축구장 입장‘을 공약으로 말하고 있지만, 종교국가답게 성직자들의 반대에 부딪치며 좌초되곤 했다.

 

그러나 단호하던 성직자들도 세계 축구계까지 무시할 수는 없었고, 결국 2006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여성 70명의 입장을 허락하며 혁명 후 처음으로 ‘금녀(禁女)의 벽’을 깨는 데 성공했다.

 

이후 2019년에 열린 월드컵 지역예선, 2022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도 간헐적으로 여성 관중석이 할당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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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년 월드컵예선 캄보디아전에 입장한 여성관중들


하지만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비정기적인 입장허가에 여성 좌석은 따로 울타리로 격리되고, 이란대표팀 경기를 중계하는 해설진들은 여성 관중의 존재를 투명인간처럼 언급하지 않으며 여전히 사회적으로 여성의 입장은 허락되지 않고 있는 느낌이다.

 

1970년대에 등장한 이란 여자프로축구팀


그런데 온라인에서는 ‘1970년대의 이란 페르세폴리스 여자축구팀‘이라는 제목이 붙은 사진을 볼 수 있다. 여자가 경기장조차 자유롭게 들어가지 못하는 나라에서 반바지를 착용한 여자축구팀이 가능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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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 페르세폴리스 여자축구팀


1970년대‘라고 하면 한국의 경우에도 여자축구선수나 인프라가 전무한 불모지였던 시대. 현재 이란 여자 운동선수들의 처지를 감안하면 한국보다 20년이나 앞서 등장한 여자프로팀은 매우 놀라운 모습이다.

 

일부 사이트에서는 이 사진을 비슷한 상황을 겪고 있는 ‘아프가니스탄 여자축구팀‘으로 소개하는 경우도 있는데, 앞줄 왼쪽의 여성이 당시 팀의 주장이었던 헨가메 아프샤르(Hengameh Afshar)이기 때문에 이란 여자축구팀인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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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명후 미국으로 떠난 헨가메 아프샤르. 현재는 토론토에서 화가로 활동 중이다.


이 시기 남자프로축구팀 산하에서 결성되기 시작한 이란여자축구리그는 재능 있는 유망주들이 몰려들며 혁명 전까지 꾸준히 성장했다. 이때 페르세폴리스 FC에서도 여자축구팀을 구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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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1년, 에스테글랄 FC 여자팀과 이탈리아 여자선발팀의 친선경기


이러한 노력이 무색하게도 이슬람혁명 이후 이란여자축구리그는 하루아침에 해산되었으며, 프로팀은 고사하고 여자는 축구 자체를 할 수 없는 암흑기로 접어들었다.

 

그 후 약 14년 만인 1992년에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면서 그나마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할 수 있는 실내 여자축구(풋살)가 허용되었고, 2007년에는 28년 만에 이란여자축구연맹도 부활했다.

 

하지만 투자가 미비한 관계로 인프라 부족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슬람국가답게 여자선수들이 반드시 착용해야 하는 히잡과 답답한 의상은 기량 발전에 방해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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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2년과 복장이 바뀐 듯한 2017년 이란 여자축구대표팀


여기에 더해 이란 정부는 관중이 생명인 프로축구에서 ‘경기는 무조건 오전에 개최되어야 한다‘는 황당한 규정을 만들어 두고 있다. 아마도 국제사회와 여성인권단체를 의식해 축구경기 정도는 허용하고 있지만, 최대한 대중의 접근을 막고 고립시키는 면피용 정책을 펼치는 것으로 보인다.

 

이란 ‘축구 혁명’의 불씨


축구가 이란을 다시 세속화된 세계로 이끌 수 있을까.

 

이란 축구국가대표팀이 1997년 11월 29일 FIFA 월드컵 예선에서 호주를 꺾었을 때, ‘거리응원을 하지 말라‘는 정부의 엄포에도 불구하고 수백만명의 이란국민들이 거리를 가득 메웠고 일부 여성들은 답답했던 히잡을 용감하게 벗어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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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8년 FIFA 월드컵, 이란-포르투갈 경기의 이란 남녀관중. 해외에서만 볼 수 있는 모습이다.


이후 이란이 1998년 6월 21일 월드컵 본선에서 미국을 2:1로 꺾었을 때도 같은 현상이 나타났다. 어쩌면 축구가 이란 사회를 격변시킬 수 있을지도 모르는 가능성을 보인 것이다.

 

이란의 인권단체와 개혁파들은 축구경기장을 여성에게 개방하는 것이 단순히 규제 하나를 없애는 것이 아닌 이슬람 근본주의로 점철된 사회를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국제적으로는 외교적 긴장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으로 내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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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이란대표팀 감독 카를로스 케이로스와 여자선수들 (2016.08.29)


비록 느리지만 희망의 불씨를 조금씩 되살려가는 이란 여자축구와 함께 이란여성들도 경기장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날, 나아가 이란이 종교국가의 굴레를 벗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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