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 북유럽의 섬나라 아이슬란드(Iceland) 풍경

19세기 말, 영국의 교사이자 사진작가 프레데릭 하웰(Frederick W. W. Howell, 1857~1901)은 아이슬란드를 10년간 수차례 여행하며 사진으로 남겼다.

 

이후 아이슬란드 문화의 권위자이자 코넬대학의 교수 겸 사서였던 윌러드 피스케(Willard Fiske, 1831~1904)는 하웰이 촬영한 400여 점의 사진을 구입하였고, 아래의 사진들이 당시 촬영된 1900년경의 아이슬란드 풍경 중 일부로 1923년에 인화된 것이다.

 

19세기 말, 영국의 교사이자 사진작가 프레데릭 하웰(Frederick W. W. Howell, 1857~1901)은 아이슬란드를 10년간 수차례 여행하며 사진으로 남겼다. 1
▲ 아이슬란드 동부 세이디스피외르뒤르(Seydisfjordur) 마을의 상점 앞에서 말을 탄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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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이디스피외르뒤르(Seydisfjordur)의 해변가에서 가족들이 생선을 손질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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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루니(Hruni) 마을의 교회에서 제공하는 숙소. 주로 탐험가와 여행객들이 이곳에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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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남동쪽에 있는 바트나이외쿠틀 빙하(Vatnajokull)의 일부분인 에이야박카요쿨 빙설(Eyjabakkajökull)과 강이 만나는 모습. 빙하에서 밀려 나온 빙설이 강 위를 덮으면서 그 사이로 고드름이 형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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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흐웅게르디(Hraungerði) 지역 의장과 그의 가족들. 올라푸르 세문트손(Ólafur Sæmundsson) 목사가 그의 모친과 아내를 비롯한 자녀들과 함께 사진 촬영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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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스코라달루르 주(Skorradalur) 농가의 대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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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전통의 잔디집 앞에 선 가족들. 아이가 안고 있는 것은 애완동물로 보이는 강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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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북부에 위치한 아퀴레이리(Akureyri)의 가옥들. 흙으로 포장된 도로와 울타리에는 말이 묶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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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퀴레이리(Akureyri) 해변가에서 본 아이슬란드에서 가장 긴 에이야피요르뒤르(Eyjafjörður)의 전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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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야피요르뒤르(Eyjafjörður)쪽에서 본 아퀴레이리(Akureyri) 해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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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퀴레이리(Akureyri) 해변과 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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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커크주베야르클라우스투르(Kirkjubæjarklaustur)의 현무암 도로. 인공적으로 만든 도로 같지만 주상절리의 꼭대기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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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흘조다클레타르(Hljóðaklettar)국립공원 데티포스 폭포(Dettifoss) 근처의 주상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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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동부 노르뒤르물라시슬라(Norður-Múlasýsla)의 전통가옥 앞에 서 있는 주민. 정면의 현무암 기둥은 말을 묶어두는 용도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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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보드브레카(Vaðbrekka)마을에 있는 양의 뼈로 만들어진 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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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다뢰프디(Kaldarrhöfdi)마을의 싱발라바튼(Þingvallavatn)호수에서 두 명의 여성들이 빨래를 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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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야프얄라요쿨 화산(Eyjafjallajökull Volcano) 근처의 농가 주민들이 건초를 모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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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실프라스타디르(Silfrastaðir) 농가의 주방으로 햇살이 들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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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나이펠스외쿨 화산(Snæfellsjökull) 인근의 부디르(Búðir) 마을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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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디르(Búðir) 인근 스나이펠스네스(Snæfellsnes) 해안가의 고래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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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서부에 있는 플레이티 섬(Flatey) 주민들. 잔디집 지붕에는 잡초와 귀리가 자라고 있고 빨랫줄에는 양말이 걸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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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하우카달루르(Haukadalur)계곡에 있는 블레시(Blesi) 온천. 방문객들이 요리를 해 먹기 위한 식기들이 놓여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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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키피외르뒤르(Eskifjörður)의 해안가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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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스키피외르뒤르(Eskifjörður)의 여성들이 일렬로 서서 생선을 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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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남서부 하프나르피외르뒤르(Hafnarfjordur)의 해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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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라피외르뒤르(Dýrafjörður)에서 본 해안가의 마을과 선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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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티포스 폭포(Dettifoss)를 동쪽에서 촬영한 모습. 폭 100m, 높이 44m, 평균 유량 193mµ/s로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폭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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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북부의 고다포스 폭포(Goðafoss). 폭 30m, 높이 12m로 2020년에 보호지역으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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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헹기포스 폭포(Hengifoss). 높이 128m로 아이슬란드에서 세 번째로 높은 폭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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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남부 글루가포스 폭포(Gluggaf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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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캬비크 근처 엘리다아(Elliðaá)강의 다리를 건너는 짐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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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캬비크(Reykjavik)의 해변에서 생선을 말리는 모습. 멀리 보이는 건물은 상어간유(shark liver oil)를 추출하는 공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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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캬비크 해변에 정박한 범선 ‘제이슨 호(Jason)’. 해변에서 일하는 아이슬란드 여성들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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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캬비크 주지사 관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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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캬비크 주지사의 관저에서 본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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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캬비크 대성당(Reykjavík Cathedral)과 의회 의사당(Parliament Hou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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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캬비크 아달스트래티(Aðalstræti)를 지나가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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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캬비크에 세워진 아이슬란드계 덴마크인 조각가 베르텔 토르발센(Bertel Thorvaldsen, 1770~1844)의 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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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이캬비크에서 약 15km 떨어진 알프타네스(Álptanes)에 있는 베사스타디르 교회(Bessastaðir Church). 뒤편에 있는 건물은 오늘날 아이슬란드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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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사스타디르 교회(Bessastaðir Church)와 아이슬란드 대통령 관저의 현재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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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사스타디르 교회(Bessastaðir Church)의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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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슬란드 쉬뒤르싱게이야르시슬라 주(Suður-Þingeyjarsýsla)의 후사비크(Húsavík)에 있는 오래된 오두막. 스웨덴의 바이킹 가르다르 스바바르손(Garðar Svavarsson)이 9세기에 지은 집으로 ‘아이슬란드 최초의 집‘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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