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마지막 왕비, 순정효황후의 친잠례(親蠶禮) 모습
과거 조선의 왕비는 왕실 최고위 여성으로서의 모범을 보이고 백성들에게 양잠(養蠶, 누에치기)을 장려하기 위해 친히 나서서 누에를 치고 고치를 거두는 궁중의식을 치렀다.
뽕잎이 피면 왕비는 세자빈과 상궁을 비롯한 내명부(內命婦)와 귀족부인들 중에 선정된 외명부(外命婦)의 여성들을 거느리고 의식이 치러지는 채상단(採桑壇)으로 행차해 친잠례(親蠶禮, 뽕잎을 따는 의식)를 거행했다.
2013년에 방영했던 JTBC 사극 ‘궁중잔혹사 꽃들의 전쟁‘에서는 인조의 계비인 장렬왕후(莊烈王后, 1624~1688)의 친잠례를 정확한 고증으로 재현하기도 하였다.
▲ 제사를 지낼 채상단(採桑壇)에 장렬왕후(고원희)와 소현세자빈 강씨(송선미)가이 친잠복인 황색의 국의(菊衣)를 입고 오른 모습.
▲ 친잠례를 행하기 전에 ‘누에의 신’인 선잠(先蠶)에게 절을 하는 모습.
▲ 소현세자빈이 누에에게 줄 뽕잎을 따고 있는 모습.
▲ 대나무를 엮어 만든 광주리에 뽕잎을 담고 있는 모습.
▲ 왕세자빈이 내전을 떠나 뽕잎을 친잠실의 담당 여관들에게 전달하면 이것을 작두로 잘게 썰어 누에에게 먹이로 뿌려주었다.
▲ 뽕잎을 먹어치우는 누에들. 왕세자빈은 누에들이 이 뽕잎을 다 먹을때까지 기다린 후 왕비가 기다리고 있는 내전으로 복귀했다.
▲ 의식이 끝난 후 친잠례에 참여한 왕세자빈과 내·외명부의 수고를 위로하는 연회를 열고 있는 모습.
친잠례는 조선의 왕비가 유일하게 주도하는 행사이자 왕비의 권위와 정통성을 세우고 애민사상을 내보일 수 있는 행사였기 때문에 종묘와 사직의 제사 다음가는 중요한 의식으로 간주되었다.
아래는 조선 최후의 왕비이자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후인 순정효황후 윤씨(純貞孝皇后 尹氏, 1894~1966)의 실제 친잠례를 담은 몇 안 되는 사진이다.
▲ 1914년 6월 4일, 친잠실이 만들어진 창덕궁 후원 주합루(宙合樓) 남쪽의 서향각(書香閣)의 모습.
▲ 현재의 서향각 ⓒ문화재청
서향각 주변은 울창한 숲이 사방을 둘러싸고 있기에 온도와 습도를 맞추기 쉬워서 1909년부터 내부를 개조하여 친잠실로 사용하였다. 창문도 철망으로 바꾸어 공기의 흐름이 잘되게 하는 동시에 파리와 같은 벌레를 막도록 하였다.
▲ 1915년 6월 15일 오후 2시, 서향각 내부에서 수견례(收繭禮, 누에고치에서 실을 받는 의식)를 하고 있는 모습. 색상이 흑백이라 구분이 잘 안 가지만 친잠실의 바닥에는 꽃무늬 양탄자가 깔려있었으며, 중앙에는 황후가 앉을 수 있는 의자가 설치되어 있었다.
친잠실에서 생산된 실은 이왕직미술품제작소(李王職美術品製作所)에서 비단수건 등의 물품을 생산하여 왕실의 종친과 귀족들에게 하사되었다.
이날 수견례에는 순종(純宗)이 오찬을 마친 후 이완용(李完鎔) 백작, 조중응(趙重應) 자작 등 귀족들을 거느리고 친히 서향각을 방문하였으며 이강공비(李堈公妃), 윤후작부인(尹侯爵夫人)등 종척의 여러 부인과 이왕직 고위관리들 수십 명이 참석하였다. 식이 끝난 후 순종은 참석자들에게 차를 하사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 1916년 5월 30일, 친잠실에서 내인들이 누에를 관리하고 있다. 누에들에게 주는 뽕잎은 창덕궁 후원의 뽕나무 동산에서 수확한 것이었다. ‘잠부(蠶婦)’라고 불린 누에 관리인들은 양잠강습소의 우등졸업생 중 신분 좋은 자들로 선택되었다.
▲ 서향각 아래의 현판 ‘친잠권민(親蠶觀民)’은 순정효황후의 필체이다.
▲ 1924년 6월 17일, 서향각에서 열린 수견례는 약식으로 치러졌다. 왼쪽의 여성이 순정효황후.
이날의 행사는 조선왕실의 마지막 친잠례로 기록되었으며, 이와 함께 순정효황후도 친잠례를 주관한 조선의 마지막 왕비로 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