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1914년, 호주원정대의 남극탐험
호주 남극탐험(Australasian Antarctic Expedition)은 더글러스 모슨(Douglas Mawson, 1882~1958)을 탐험대장으로 하여 1911년 12월 2일부터 1914년 2월 26일까지 이루어졌다.
탐험의 목적은 호주 남쪽 방향에 위치한 미지의 남극대륙 해안선의 지형을 연구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극지탐험의 전성시대였던 20세기 초, 영웅들의 성공적인 탐험을 위해 호주과학진흥협회(AAAS)를 비롯해 민간단체와 일반인들의 기부가 잇따랐다.
총 31명으로 구성된 탐험대는 결과적으로 생물학, 해양학, 지질학, 빙하학과 기상학 분야에서 많은 성과를 이루어냈다. 호주원정대의 탐험을 통해 총길이 4,000km에 달하는 베일에 싸여있던 남극 해안의 지도를 완성했으며, 수백 개의 새로운 지형이 식별되었고 두 곳의 바다에는 이름이 붙여지기도 했다.
아래의 사진은 탐험대와 동행했던 사진작가 프랭크 헐리(Frank Hurley, 1885~1962)가 촬영한 것이다.
▲ 오로라 호(SY Aurora) 갑판 위의 원정대원들.
▲ 기상학자 세실 메디건(Cecil Madigan, 1889~1947)이 탐험대에 합류하기 위해 호주 태즈메이니아 호바트에서 오로라 호에 탑승하고 있다.
▲ 1911년, 매쿼리섬 너겟해변(Nuggets Beach)에서 발견된 그래티투드(Gratitude)호의 잔해.
그래티투드는 1898년 11월 10일, 화물을 싣고 가다가 매쿼리섬의 북동쪽에 좌초되었고 강풍에 의해 해안가로 밀려온 후 세월에 의해 부식되었다.
▲ 오로라 호의 갑판과 구조물을 완전히 덮고 있는 눈과 얼음.
▲ 남극 해안을 지나는 탐험대의 증기선 오로라 호의 모습. 이 배는 원래 포경을 목적으로 스코틀랜드에서 만든 선박이었지만 그만큼 혹독한 날씨와 탐험에 견딜 수 있는 내구성을 기대하며 남극탐험에 투입되었다.
오로라 호는 1911년에서 1917년 사이 남극을 다섯 번이나 방문했고 이후 석탄화물선이 되어 1917년 호주에서 칠레로 향하던 도중 실종되었다. 전문가들은 독일의 기뢰에 침몰당한 것으로 추정하였는데, 6개월 후 오로라 호의 구명부이 하나가 태즈먼 해에서 발견되며 침몰설을 뒷받침하였다.
▲ 원정대 베이스캠프의 부엌 모습.
▲ 대원들이 베이스캠프에서 면도를 해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원정대원들의 단체사진.
▲ 남극의 얼음을 채취하는 원정대원의 모습.
▲ 커먼웰스 만(Commonwealth Bay) 근처에 형성된 바다동굴 내부의 신비로운 모습. 커먼웰스 만은 호주 남극원정대가 최초로 발견하여 호주의 공식 국가명인 ‘호주연방(Commonwealth of Australia)’의 이름을 따 명명한 것이다.
▲ 바다동굴의 입구 모습.
▲ 오로라 호가 바다동굴의 입구를 지나고 있다.
▲ 떠다니는 거대 빙산을 오로라 호에서 촬영한 모습.
▲ 남극 해안의 펭귄 무리와 오로라 호.
▲ 발라클라바를 뒤집어쓰고 남극바다를 바라보는 원정대원.
▲ 베이스캠프 근처에서 촬영된 눈 녹은 암벽.
▲ 남극 해안을 헤엄치고 있는 고래 한쌍.
▲ 1912년, 커먼웰스 만(Commonwealth Bay)의 바다를 바라보는 탐험대의 엔지니어 프랭크 비커튼(Frank Bickerton, 1889~1954). 그는 호주 남극원정대를 비롯해 여러 탐험과 1차 대전, 2차 대전에 모두 참전한 타고난 모험가였고, 호주 남극원정의 공로를 인정받아 남극의 지형에 케이프 비커튼(Cape Bickerton)이 생겨났다.
▲ 버섯처럼 형성된 빙산의 신비로운 모습.
▲ 커먼웰스 만의 데니스 곶(Cape Denison)에서 세찬 바람을 뚫고 얼음을 채취하는 탐험대원들. 남극의 혹독한 환경과 탐험의 어려움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유명한 사진이다.
커먼웰스 만은 기네스북에 등재된 ‘지구상에서 가장 바람이 많이 부는 곳’으로 최대 시속 240km, 일 년 내내 평균 풍속 80km의 강한 바람이 지속적으로 관찰된다.
▲ 남극대륙의 거대한 빙붕.
▲ 거대한 빙붕의 위엄.
▲ 퀸 메리 랜드(Queen Mary Land)에 설치된 원정대의 창고와 썰매 주차장.
▲ 같은 장소를 주간에 바라본 모습.
▲ 데니슨 곶에서 대원들이 보급품을 전달받기 위해 대기하고 있다.
▲ 대원들이 보급품을 하역하는 모습.
▲ 보급품을 옮기는 대원들.
▲ 누워있는 웨들바다표범(Weddell seal)과 멀리 보이는 기지.
▲ 해수면에 떠 있는 얼음조각에 바다표범들이 한 마리씩 올라와 자리를 잡고 자고 있다.
▲ 남극의 빙붕과 얼어붙은 바다.
▲ 기상학자 세실 메디건(Cecil Madigan)이 눈보라가 치는 동안 계측을 위해 나갔다 오자 얼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얼음이 얼어붙어있다. 두 번째 사진의 말끔한 정장 차림과는 대비되는 모습이다.
▲ 기지 내부로 들어온 세실 메디건의 얼굴이 얼음이 녹으면서 조금씩 보이고 있다.
▲ 탐험대의 무선 기술자 아서 소여(Arthur Sawyer)가 바다코끼리 무리에서 지느러미를 잡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1913년 8월경에 병으로 임무를 포기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 지질학자 앤드루 더글러스 왓슨(Andrew Douglas Watson, 오른쪽)과 서부 기지의 기지장 존 로버트 프랜시스 와일드(John Robert Francis Wild)가 침낭에 들어간 채로 썰매에 타고 있다.
▲ 해안가에 모여있는 바다코끼리.
▲ 남극의 한여름 밤중에 태양이 비치는 빙산의 모습. 심야태양(midnight sun)은 남극의 남쪽 지역에서 볼 수 있는 희귀한 현상이다.
▲ 남극에 서식하는 얼룩무늬물범(Hydrurga leptonyx). 펭귄의 천적으로 남극에서는 범고래 다음가는 최상위 포식자이다.
▲ 남극가마우지(Antarctic shag)와 새끼. 남극에 서식하는 가마우지의 유일한 종이다.
▲ 남극가마우지의 둥지. 남극은 혹독한 환경이지만 남극가마우지의 수명은 15~20년으로 추정되며, 기후 외에는 이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것은 없기 때문에 개체수는 안정되어 있다.
▲ 마카로니펭귄(Macaroni Penguin). 사진은 흑백이지만 노란 볏이 있는 것이 특징이다.
▲ 마카로니펭귄(Macaroni Penguin)의 정면 모습. 남극의 5대 펭귄은 마카로니펭귄을 비롯해 젠투펭귄(Gentoo penguin), 턱끈펭귄(Chinstrap penguin), 황제펭귄(Emperor penguin), 아델리펭귄(Adélie penguin)이다.
▲ 바다코끼리와 턱끈펭귄의 대집단이 어우러져있다.
▲ 황제펭귄. 이름답게 펭귄 중에서 가장 몸집이 큰 펭귄이다.
▲ 생물학자 해럴드 해밀턴(Harold Hamilton)이 그물로 바닷물에서 생물을 채집하고 있다. 그는 원정대가 마지막으로 머물렀던 1913~1914년 사이에 남극을 방문했기 때문에 이 사진도 그 시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 바다코끼리의 뼈 옆에서 포즈를 취한 생물학자 해럴드 해밀턴(Harold Hamilton).
▲ 1912년, 아델리랜드에서 눈을 뒤집어쓴 아델리펭귄의 모습. 아델리펭귄의 이름은 1840년 프랑스의 탐험가 쥘 뒤몽 뒤르빌(Jules Dumont d’Urville, 1790~1842)이 발견해 그의 아내 아델리(Adelie)의 이름을 붙인 것으로 세간에 통용되고 있지만 이는 엄밀히 말하면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쥘 뒤몽 뒤르빌의 아내는 아델리 페핀(Adèle Pepin, 1798~1842)이었는데, 뒤르빌은 탐험 중 발견한 섬에 아내의 성인 페핀을 붙여 ‘페핀 섬(Pepin Island)’이라 명명했고, 또 남극 대륙의 한 지역에 아내의 이름인 아델리를 붙여 ‘아델리랜드(Adélie Land)’라 명명한 것이 전부이다. 즉 아델리랜드에서 대규모로 서식하고 있는 펭귄이기에 자연스럽게 아델리펭귄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지 뒤르빌이 직접 펭귄에 아내의 이름을 붙인 것은 아니다.
▲ 바닷가 암벽 근처의 아델리펭귄 서식지.
▲ 아델리 펭귄과 새끼.
▲ 얼음 뒤에서 눈보라를 피하는 새끼 아델리펭귄들. 몸에 붙어있는 것은 눈이 아니라 아직 빠지지 않은 솜털이다.
▲ 아델리펭귄 무리 사이에서 포즈를 취한 사진작가 프랭크 헐리.
▲ 아델리랜드의 고드름이 잔뜩 붙은 공간이 아늑한(?) 천막 같은 모습을 형성하고 있다.
▲ 1912년 11월 10일, 탐험대장 더글러스 모슨이 벨그레이브 니니스(Belgrave Ninnis, 1887~1912), 자비에르 메르츠(Xavier Mertz, 1882~1913)와 함께 조지 V 랜드(George V Land) 탐험을 앞두고 개썰매를 점검하고 있다.
▲ 썰매를 끄는 개들의 모습. 원정대는 총 48마리의 썰매견을 보유하고 있었는데, 이는 모두 벨그레이브 니니스가 그린란드에서 데리고 온 ‘그린란드견(Grønlandshund)’이었다. 이 견종은 야생에 가까워서 주인이 아니면 제어가 힘들다는 특징이 있는데 바로 이것이 니니스가 원정대에 참여하게 된 배경이었다.
▲ 개썰매로 빙하를 건너는 대원들. 조지 V 랜드로 떠난 3인은 1912년 12월 14일, 베이스캠프에서 500km 떨어진 곳에서 빙하를 건너다가 니니스가 눈으로 덮인 크레바스로 추락하는 사고를 당했다.
개들의 소유주였던 니니스는 가장 강한 개들로 가장 큰 썰매를 끌고 가고 있었다. 이 사고로 여섯 마리의 개와 텐트, 대부분의 보급품이 썰매와 함께 거대한 크레바스 밑으로 사라졌다. 모슨과 메르츠는 크레바스 46m 아래에서 숨진 개 한 마리와 다친 개 한 마리를 발견했지만 니니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훗날 탐험대가 건너다 사고를 당한 빙하의 이름은 ‘니니스 빙하(Ninnis Glacier)’로 명명되었다.
▲ 베이스캠프 밖으로 나오는 자비에르 메르츠(Xavier Mertz). 니니스가 실종된 후 나머지 썰매에는 열흘 치 식량만이 남아있었고 개들의 먹이는 없었다. 결국 두 사람은 기지로 귀환 중 어쩔 수 없이 약한 개부터 잡아먹기 시작했다.
모슨의 기록에 따르면, 1913년 1월 8일에 메르츠는 베이스캠프에서 160km 떨어진 지점에서 갑작스럽게 환각을 보고 헛소리를 하다가 돌연 사망했다. 모슨은 그의 시신을 침낭에 넣고 눈 속에 묻은 다음 썰매날로 십자가를 만들어 표식을 세운 후 홀로 귀환길에 올랐다.
▲ 남극 거대 빙하들의 모습. 조지 V 랜드 해안에 있는 ‘메르츠 빙하(Mertz Glacier)’는 자비에르 메르츠의 이름을 딴 것이다.
▲ 모슨은 썰매 무게를 줄이기 위해 칼로 필요 없는 부분을 모두 잘라냈다. 그는 한 달 만에 구사일생으로 기지에 복귀했고 1913년 11월, 원정대원들은 베이스캠프 북서쪽 아지무스 언덕(Azimuth Hill)에 메르츠와 니니스를 추모하는 십자가를 세웠다.
▲ 그린란드견의 강아지. 오늘날 전문가들은 메르츠의 갑작스러운 사망원인을 그린란드견의 간을 섭취하면서 유발된 비타민A 과다증(Hypervitaminosis A)이 유력하다고 보고 있으며, 영양실조와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 등이 상황을 악화시킨 것으로 추정한다.(비타민 A는 그린란드견의 간에서 많은 양이 발견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베이스캠프에 묶여있는 그린란드견 바실리스크(Basilisk)와 진저(Ginger).
▲ 남극의 자기장 분석을 위해 원정대에 참가한 수석 자기학자 에릭 노먼 웹(Eric Norman Webb, 1889~1984). 호주 남극원정대 전체 멤버 중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생존한 대원으로 1984년 1월 23일 별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