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SG의 원조, ‘아지노모도’ 조선영업소 건물

서울 중구에 위치한 남대문로 지하쇼핑센터의 입구 옆에는 낡은 빌딩 하나가 눈에 띈다.

 

지금은 흔치 않은 원형의 창문과 타일로 마무리된 외장은 한눈에 봐도 상당히 오래된 건물임을 알 수 있는데, 바로 이곳은 MSG(글루탐산나트륨)를 세계 최초로 상업화한 일본 ‘아지노모도(味の素, AJINOMOTO)’의 조선영업소였다.

 

아지노모도의 창업

일본의 화학자 이케다 키쿠나에(池田菊苗. 1864~1936)는 1899년 독일유학 당시 독일인들의 건장한 체격을 보고 일본인들의 영양상태를 개선하고 싶다는 바람을 갖게 되었다.

 

▲ 이케다 키쿠나에(좌), 스즈키 사부로스케(우)

 

이후 그는 다시마의 국물에서 단맛, 짠맛, 신맛, 쓴맛 등 4가지 기본 맛 외의 감칠맛을 발견하고 아미노산의 일종인 글루탐산나트륨을 추출하는 데 성공했다. 키쿠나에 박사는 뜻을 같이하는 사업가 스즈키 사부로스케(鈴木三郎助, 1868~1931)와 합자회사 ‘스즈키 제약소(鈴木製薬所)’를 설립하고 아지노모도의 제조를 시작했다.

 

▲ 아지노모도의 첫 로고, ‘미인표(美人印)’

 

1908년, 내무부의 위생시험을 통과하고 상표명 ‘아지노모도(味の素®)’와 미인로고(美人印) 등록을 마친 아지노모도는 1909년 5월 20일에 일반판매를 시작하면서 이날은 현재 ‘창립기념일‘로 간주되고 있다.

 

조선 진출

스즈키 제약소(鈴木製薬所)는 일본 시장에 이어 1910년 5월에는 대만특약점, 8월에는 조선특약점을 설치하였다.

 

▲ 최초의 아지노모도 병 모양

 

초기만 해도 일본인들 외에는 좀처럼 사는 사람이 없던 아지노모도는 ‘편하게 맛을 낼 수 있는 마법 같은 조미료‘로 알려지면서 서서히 판매량이 오르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값비싼 제품이었던 만큼 고급요리점들은 자랑스럽게 아지노모도를 사용한다는 걸 내세웠고, 위조품이 등장하는가 하면 이를 노리는 절도범들도 기승을 부릴 정도였다.

 

▲ 아지노모도에 맛붙인 절도 【조선일보 1936.03.06】

 

사업이 크게 번창하면서 1929년 2월 1일, 드디어 조선에 주재원 1명이 파견되기에 이르렀다. 당시의 회사 명칭은 (주)스즈키 상점(株式会社鈴木商店)이었다. 이때부터 한반도의 일본인뿐만 아니라 조선인들을 대상으로 한 홍보전이 시작되었다.

 

그로부터 2년 후인 1931년 8월 20일, 현재의 남대문(숭례문) 근처에 아지노모도 조선사무소가 개설되었다.

 

▲ 아지노모도 첫 조선사무소 자리는 현재 도로가 되었다.

 

아지노모도 광고

거의 100여 년 전이지만 당시의 홍보전도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영업사원들이 식당과 시장을 방문하는가 하면, 신문에는 만평을 연상시키는 광고와 인기스타를 모델로 한 포스터가 배포되었다.

 

▲ 당대 최고의 무용가 최승희(崔承喜)가 등장한 아지노모도 광고

 

1929년에는 조선총독부 주최로 경복궁에서 열린 조선박람회(朝鮮博覽會, 1929.09.12~10.31)에서 아지노모도 홍보의 장이 열렸다.

 

▲ 1929년, 조선박람회 경회루 근처의 아지노모도 등

 

경회루 다리 근처에는 화려한 아지노모도 등이 설치되었고, 신문사에 배포된 표를 오려서 홍보관으로 가지고 오면 아지노모도 견본 한 병씩을 증정했다.

 

“다시 못 볼 박람회 꼭 보고 가시오. 아지노모도 등롱(燈籠)을. 경제되고!! 간단하게!! 맛 내는 조미료, 아지노모도(味の素)”

 

▲ 1929년, 조선박람회에 설치된 아지노모도 등을 소개하는 광고

 

▲ 1929년, 조선박람회 아지노모도 교환권

 

아래는 1930년대, 신문과 잡지에 실린 아지노모도 광고의 모습이다.

 

▲ 시골에서 도시로 유학(?)을 간 여학생들에게 방학을 맞아 선물로 아지노모도를 사가라는 광고.(1930년)

 

▲ 여행가방에 꼭 아지노모도를 휴대해 낯선 곳에서도 맛있는 음식을 먹으라는 광고 내용.(1930년)

 

▲ “끓을 때 치십시오” 모든 음식에 아지노모도 2~3작은술을 넣으면 맛이 난다는 광고. ‘사시(沙匙)’는 사기로 만든 숟가락으로 티스푼을 의미한다.(1933년)

 

▲ ‘아지노모도 파는 곳’이라는 안내판이 붙은 상점의 모습. 쌀, 나무, 간장과 함께 아지노모도를 가정의 필수품으로 제시하고 있다.(1935년)

 

▲ “음식은 아지노모도로 맛있고 값싸고 손쉽게!”. 당시 일반적인 조선가정의 부엌 모습을 보여주는 광고이다.(1936년)

 

▲ “가정의 평화는 아지노모도를 쓰는 날부터입니다.”(1936년)

 

▲ “싱거울 땐 간장을! 맛없을 땐 아지노모도를!”(1937년)

 

▲ 부부가 맛없는 식사를 놓고 싸우는 모습. 현명한 아내라면 음식에 아지노모도를 쓰고, 현명한 남편이라면 아내를 탓하기 전에 아지노모도를 권하라는 내용이다.(1937년)

 

▲ 나이를 먹어도 아지노모도를 사용하면 음식 솜씨는 한결같이 훌륭하다는 내용. 이처럼 MSG를 사용한 역사는 매우 길기 때문에 고령층이 회상하는 어린 시절 ‘할머니의 손맛’은 어쩌면 아지노모도의 맛일 가능성이 높다.(1937년)

 

▲ 김장에도 아지노모도를 사용해서 맛있게 먹으라는 광고. 수북이 쌓인 배추, 무와 함께 수동식 펌프가 눈에 띈다.(1938년)

 

▲ 오뎅가게도 아지노모도를 사용하는 곳이 인기 있다는 광고.(1938년)

 

▲ ‘아지노모도를 쓰는 여러분의 식당’이라는 문구가 적힌 맛집으로 사람들이 몰려가는 광고. 현대의 식당들이 ‘저희 업소는 조미료를 쓰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를 하는 것과는 상반되는 모습이다.(1938년)

 

현존하는 신축 사무소의 건설

1933년 9월에는 최신식 4층 건물을 신축하여 이전하였다. 바로 이 건물이 서두에 나온 남대문로 지하쇼핑센터 입구의 빌딩이다.

 

▲ 1933년 9월에 신축된 조선사무소

 

이렇게 번창하던 아지노모도는 중일전쟁에 따른 경제와 산업에 대한 통제로 위축되었고 태평양전쟁까지 발발하면서 큰 타격을 받는다.

 

1938년 이후 수입원료는 끊어지기 시작했고 연료는 부족했으며, 종업원들은 병역으로 차출되어 일본 국내외의 많은 지점들이 폐쇄와 통합의 길을 걷게 된 것이다. 조선사무소도 예외없이 어렵게 진출한 지 23년 만인 1943년에 폐쇄되었다.

 

▲ 현재도 거의 변하지 않은 건물의 외관

 

전시체제에서 수차례 사명을 변경하고 군수물자생산까지 강요당하던 스즈키상점(鈴木商店)은 일제의 패망으로 결국 한반도에서 철수하였다.

 

이후 1946년, ‘주식회사 아지노모도(味の素株式会社)’로 상호를 변경하고 부활을 시도했으나 식량조차 부족한 상황에서 조미료 생산은 여의치 않았다. 보유한 재고를 처분하며 연명하던 아지노모도는 미국에서 다시 원료를 들여오고서야 생산을 재개할 수 있게 되었고 1950년대에는 수출을 시작하며 부활했다.

 

▲ 아지노모도 로고 변천사

 

한국과의 사업은 1965년 한일기본조약에 이어 이듬해 한일무역협정에 의한 국교정상화를 거쳐 1983년 서울사무소가 개설되었고 2003년, 서울에 판매법인 한국아지노모도(주)가 설립되며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