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2년, 만취한 남녀가 전차에서 키스하다 체포
한국도 공공장소에서 커플들의 애정표현이 많이 서구화된 편이지만, 그래도 대중교통에서만큼은 과한 애정행각이 펼쳐지면 눈살이 찌푸려지기 일쑤다.
그런데 무려 110여 년 전인 1912년. 전차 내에서 키스를 하다가 뉴스에까지 보도되는 망측한 사건이 발생했다.
– 전차내접문한(電車內接吻漢)
– 전차 안에서 기생을 안고 입을 맞추어
경성 서부 반송방(盤松坊) 미나리골(芹洞) 104 통일호에서 정미(精米) 영업하는 박용원이라는 23세 된 자가 남부 중다동(中茶洞) 25통 6호에 사는 기생 명주(明珠, 16)등 3명을 데리고 재작일 아침에 동대문 밖 청량관 요리점에 나가서 종일토록 질탕히 놀고 오후 9시경에 전차를 타고 들어오는 길에 복차교동 근처에 와서는 남이 보는지 안 보는지도 도무지 불계(不計)하고 주출망량(晝出魍魎)으로 기생을 껴안고 입을 맞추며 전후 부정한 행위가 망측하였다.
그때 전차 안에 있던 경관이 발견하고 풍속을 문란하게 한 죄로 즉시 그 두 명을 단단히 포박하여 동대문 경찰분서로 안치 구류한 후 그 악한 행동에 대하여 지금 엄중히 취조 중이라더라.
【매일신보 1912.09.13】
• 주출망량(晝出魍魎): ‘낮도깨비’라는 뜻으로 뻔뻔하고 무지함을 이르는 말.
기사 요약: 1912년 9월 11일, 박용원이라는 23세의 남자가 기생들을 데리고 나가 놀다가 전차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기생 한 명과 껴안고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국체가 대한제국이었던 것이 불과 2년 전이니 여전히 조선시대의 분위기에서 벗어나지 않았을 시점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실로 대담한 행각이었다.
▲ 기생과의 사랑을 다룬 영화 ‘해어화(解語花)’
물론 지금이었다면 불쾌한 시선이나 “집에 가서 해라~” 정도의 야유나 듣고 말았겠지만 시대가 시대이니만큼 마침 현장에 있던 경관에게 풍속문란죄로 검거되어 ‘꽁꽁 묶인 채로’ 구류되었다는 것이 차이점. 지금도 그렇지만 20세기 초의 한반도에서도 대중교통에서의 예절은 근대인이라면 반드시 갖추어야 할 덕목으로 간주되었다.
– 관련 글: 대중교통 매너 지적으로 살펴보는 일제시대의 전차 분위기
한편, 기사에 나온 반송방(盤松坊)은 조선시대 외국관리들을 위해 연회를 베풀던 반송정(盤松亭)이라는 정자가 있던 곳으로, 그 일대에 반송(盤松, 키 작은 소나무)이 많이 심어져있던데서 유래하였다. 조선 초기부터 ‘서부 반송방(西部 盤松坊)’이라고 불렸으며, 미나리골은 한자표기와 같이 근동(芹洞)을 말하는 것으로 근방의 미동(尾洞)과 합쳐져 지금의 서대문구 미근동(渼芹洞)으로 개편되었다.
두 사람이 키스를 시작한 범행(?) 현장인 복차교동(伏車橋洞)은 현재의 창신1동 일대로 청계천이 복개되기 전 이곳에 지천인 복자천(伏車川)이 흐르고 있었고, 그 위에 복차교(伏車橋)라는 다리가 놓여있었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범인들이 끌려간 서울 동대문 경찰분서는 당시에는 북부경찰서 산하에 있었으며, 1915년 동대문경찰서로 개편되며 5월 31일 폐소하였다.
▲ 좌측부터 황금정 분서, 동대문 분서, 서대문 분서 【매일신보 1915.06.01】
1915년 6월 1일 자 매일신보는 당시 폐지되는 3개 경찰분서들의 마지막 사진(위)을 싣고 아쉬운 작별을 고하는 보도를 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