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전에도 기상천외했던 경성의 사기꾼들
현대사회가 과거보다 범죄도 많아지고 인심도 사납게 느껴지는 경향이 있지만, 50년 전 혹은 100년 전이 더 훈훈한 시대는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아동학대나 스토킹 등 범죄 성립의 기준이 현재보다 높았고 검거율은 낮았으며, 사건의 정보가 퍼지는 속도나 언로가 적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착각일 뿐이다. 특히 현재의 보이스피싱과 마찬가지로 기발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1920년대의 기법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운수 좋은 날’인 줄 알았던 눈뜨고 코 베인 날
1923년 4월, 경기도 시흥에 거주하는 33세의 남자가 경성에 올라와 가회동 가는 길을 물었더니 친절한 서울사람이 선뜻 길을 안내해주겠다고 나섰다.
두 사람이 함께 길을 걷던 중 앞에 걸어가던 남자가 편지봉투를 땅에 떨어뜨리는 것을 줍게 된다. 잠깐 동안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망설이는 중에 또 다른 청년이 나타나 ‘얼른 돌려줘야 한다‘며 달려가 편지를 분실한 남자를 데려오고, 그 남자는 봉투 속에 거금이 들어있었다며 사례를 하고자 한다.
낯선 곳에서 친절한 사람을 만나 길을 안내받는 운 좋은 날에 편지하나 주워줬다가 사례금까지 받게 되니 이런 행운이 또 있을까. 그런데 그 사람은 ‘잔돈이 없다‘며 30원을 주면 돈을 바꿔서 주겠다고 한다. 아마도 가지고 있는 100원 혹은 50원짜리 지폐를 줄 테니 30원을 달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돈 받을 생각에 피해자가 흔쾌히 30원을 주자마자 돈을 받아 든 봉투주인은 도망쳤고, 나머지 사람들도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처음부터 한 명은 길을 안내하겠다며 약속된 범행장소로 피해자를 끌고 갔고, 갑자기 나타난 한 명은 혹여나 경찰서에 편지봉투를 가져다주는 상황으로 흘러가지 않도록 편지봉투를 들고 뛰어가 주인을 데리고 오는 척 연기를 했던 것.
즉 셋 다 애초에 3인조 사기꾼이었지만 피해자는 본인을 포함해 모두 서로 모르는 사이라고 착각하고 있었고, 이 친절한(?) 사람들이 정신없게 하는 통에 선뜻 돈을 내주고 만 것이다.
당시 돈 가치를 정확히 계산하기는 쉽지 않지만 1927년경 숙명여고를 수석으로 졸업한 여성이 조선은행에 근무하며 받고 있던 월급이 30원으로 이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었다.
– 관련 글: 사치품이었던 라디오 청취료
– 기발한 노상 기편(欺騙)
– 시골사람들이 크게 주의할 일
지난 22일 오후 4시경에 경기도 시흥군 수암면 잠주리에 사는 안평준(33)이가 볼일이 있어서 경성에 올라와서 종로 일정목에서 어떤 자에게 가회동 가는 길을 물은즉, 그자는 친절히 자기가 길을 가르쳐주겠다고 말하고 종로소학교(鍾路小學校) 앞으로 데리고 가던 중 앞서가는 자가 편지를 땅에 떨어트리고 감으로 전기 안평준이가 그 편지를 집어 가지고 같이 가던 자에게 대해 이 편지를 어떻게 하느냐고 묻던 중 옆골목으로부터 어떤 청년 한 명이 나와서 이를 보고 말하기를, ‘그러면 그 편지를 떨어트린 사람에게 주는 것이 옳다’고 하며 자기가 그 편지를 가지고 앞에 떨어뜨린 자를 쫓아가서 편지를 준즉, 잃어버린 자가 다시 그 사람이 서있는 곳으로 와서 ‘이 봉투 속에는 많은 돈이 들어있는데 이와 같이 얻어다가 주니 대단히 고맙다’ 하며 ‘예로 얼마간의 돈을 드려야 할터인데..’ 하며 전기 안평준이더러 ‘마침 가진돈이 없으니 당신이 잔돈이 있거든 30원만 주면 돈을 바꾸어서 곧 주마’하는 고로 이자는 의심 없이 30원을 주었더니 그 돈을 받은 후 전기 세명은 모두 도망하였음으로 그제야 속은 줄 알고 소관 종로 경찰서에 신고하여 목하 범인을 엄탐 중이라더라.
【매일신보 1923.04.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