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폴란드 육상선수의 ‘주먹감자’
1980년 7월 19일, 제22회 하계 올림픽이 소련 모스크바에서 개최되었다.
당초 소비에트 연방의 발전과 공산주의의 우수성을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에 과시하고자 했던 소련당국의 계획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항의한 자유진영의 50개국이 불참을 선언하면서 좌초된다.
비록 대회는 반쪽이 되었으나 언론을 통해 모든 상황이 세계로 보도되는 만큼 계획했던 쇼케이스를 제대로 진행하고자 작정한 소련은 홈 텃세를 빙자한 편파판정과 기록경기에서는 소련대표들의 기록을 반올림하는 등 스포츠 정신에 어긋나는 행위들을 자행했다.
▲ 모스크바 올림픽 로고와 마스코트 미샤
문제의 사건이 일어난 것은 1980년 7월 30일, 7만 명의 만원 관중이 들어찬 모스크바의 올림픽 주경기장인 센트럴 레닌 스타디움(현 루즈니키 스타디움).
▲ 센트럴 레닌 스타디움.
이날 벌어진 높이뛰기 결승전은 반쪽짜리 올림픽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수 6명이 올림픽 기록보다 높은 기록을 보유했을 정도로 수준 높은 경기였다.
반면 관중들은 그렇지 못했다.
소련 관중들은 자국 선수들이 아니면 휘파람을 불고 야유를 보내는 저질 응원을 펼치기 시작했다. 특히 만원 관중을 만들기 위해 죄수들을 강제로 끌어다 앉혀놓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는데, 오랜만에 교도소 밖을 나온 죄수들이 어느 정도의 저질 응원을 벌였는지는 짐작이 가능하다.
심지어 스타디움 관리인들까지 다른 국가의 선수들이 점프할 때는 경기장 문을 열어놓고 외부에서 바람이 들어오게 하는 방법으로 선수들에게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는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 육상경기를 관람하는 관중석.
하지만 결승전에 참가한 폴란드 대표 블라디슬라브 코자키에비츠(Władysław Kozakiewicz, 1953~ )에게는 아무런 방해가 되지 못했다.
그는 압도적인 응원을 받고 있던 소련대표 콘스탄틴 볼코프(Konstantin Volkov)를 가볍게 제압하는 5.70m를 넘으며 폴란드판 주먹감자로 회자되는 ‘코자키에비츠 제스처(Gest Kozakiewicz)’를 무례한 관중들에게 선물했다. 이후에는 5.75m까지 연거푸 넘으며 금메달을 조기에 확정 짓는 기염을 토했다.
▲ 코자키에비츠 제스처
당시의 높이뛰기 규정은 금메달이 확정되었어도 마지막 시기까지 도전해야 했고, 코자키에비츠는 이미 금메달이 확정된 상태에서 자신과의 싸움에 나섰다.
그는 세계기록인 5.77m를 넘기기 위해 5.78m를 세팅했고, 이를 넘는데 성공하면서 1920년 이후 처음으로 장대높이뛰기 세계기록을 올림픽에서 경신하고야 만다. 그리고 또 한 번 코자키에비츠 제스처를 소련 관중들에게 선사해 버렸다.
▲ 두번째 코자키에비츠 제스처
훗날 인터뷰에 따르면, 코자키에비츠는 순간 ‘세계기록을 깨고도 야유를 받는 건 내가 유일하겠군‘이라는 생각에 발끈해서 저지른 일이라고 밝혔다.
사실 그의 도발은 현장에 있던 관중 대부분은 원거리라 눈치채지 못했다. 문제는 TV를 통해 소련과 공산주의 위성국가를 제외한 동구권에 생중계되었고, 촬영된 사진도 전 세계를 돌며 화제가 되었다는 것. 또한 소련의 통제를 받는 동유럽과 폴란드인들의 커뮤니티에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공산주의 정권을 싫어하던 많은 폴란드인들은 이 제스처를 소련에 맞서 싸우고 승리하는 도전의 상징으로 여겼고, 코자키에비츠는 귀국길에서 악수와 포옹을 1초라도 하지 않고는 거리를 걸어 다닐 수가 없을 정도로 국민들의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폴란드 국민들과 달리 폴란드 정부와 육상협회는 철저히 소련을 신봉하는 공산주의자들이었다.
당시 폴란드 당국은 공산주의 맹주인 소련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국영신문이었던 트리부나 루두(Trybuna Ludu)는 “코자키에비츠는 우승 후 너무 기뻐서 관중석을 향해 땅에 닿을 듯이 인사를 하며 감사를 표시했다“는 사실과 완전히 상반되는 보도를 했으며 다른 언론들도 해당 제스처에 대한 보도는 제외했다.
▲ 당시 소련과 위성국
하지만 이런 읍소도 화난 소련을 달래지는 못했다. 올림픽이 끝나자 폴란드 인민공화국 주재 소련대사 보리스 아리스토프는 즉각 폴란드 정부에게 ‘코자키에비츠는 소련국민들을 모욕했다’라고 비판하면서 기록을 취소하고 메달을 박탈해줄 것을 요청했다.
▲ 시상대에서 금메달을 들어보이는 코자키에비츠
그의 메달을 박탈하기 위한 특별위원회가 모스크바에서 열렸고, 코자키에비츠는 자신의 팔 동작은 관중 전체가 아닌 야유하던 관중만을 대상으로 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다행히 후안 사마란치 ICO위원장도 “코자키에비츠는 승리하거나 세계기록을 경신할 때 항상 그러한 제스처를 했다.”라고 옹호하면서 소련의 징계 요청을 기각했다.
▲ 기념관에서 자신의 제스처를 재현하는 모습
이후에도 그의 전성기는 계속되었지만 소련이 주도한 LA올림픽 보이콧으로 84년엔 동구권 국가의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했다. 소련은 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하는 선수들을 위해 모스크바에서 Friendship-84 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코자키에비츠는 그 끔찍했던 모스크바에 다시 가고 싶어 하지 않았고 부상을 가장한 태업을 하다가 폴란드 육상연맹을 분노하게 만들었다.
이때의 징계로 한동안 국제대회에 참가하지 못했고 이후에도 부상에서 회복 중인 그에게 폴란드 육상연맹이 과도한 규정으로 국제육상대회 출전을 막으려 하자 1985년 독일에서 열린 육상대회에 참가하던 중 그대로 귀국하지 않았다.
▲ 2013년 자서전 출간
공교롭게도 그의 은퇴 즈음에 소련이 붕괴하면서 폴란드 인민공화국도 해체되었고, 오늘날 폴란드에서 코자키에비츠 제스처는 거대한 힘에 저항했던 전설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References:
– “Ten facet od gestu” (2021.7.17.) link
– ‘The Arm’ (2018.10.27) lin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