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11] 춘도(春桃, 기생)

소담하고 얌전하고 어여쁘고 자태 있는 기생 춘도(春挑)로다.

춘도는 아홉 살부터 기성서재(箕城書齋)에서 가무를 연습하고 남산현(南山峴) 일어학교에서 국어(일본어)도 연구하여 여간 통정(如干 通情)은 넉넉히 하는 터이니.

 

점점 자라 지금의 나이 이십 세에 이르니 거문고와 양금은 평양부 내에서 굴지의 일등이고 노래, 가사, 시조와 기타 잡가 등은 무불명창(無不名唱)이로다. 그중에도 계면(鷄眠) 한 곡조가 입 밖에 나올 때는 만인이 모두 귀를 기울여 정신 잃게 하는 재조(才操)가 춘도에게 특별히 있는 것이라.

 

‘재그럭 재그럭’ 하며 칼이 전신을 에워싸고 옷자락은 펄펄 나비 나래같이 날리는 모양은 보는 사람이 예전 초한시(楚漢時)의 홍문연 잔치를 다시 상상하겠더라.

 

점점 자라 지금의 나이 이십 세에 이르니 거문고와 양금은 평양부 내에서 굴지의 일등이고 노래, 가사, 시조와 기타 잡가 등은 무불명창(無不名唱)이로다. 그중에도 계면(鷄眠) 한 곡조가 입 밖에 나올 때는 만인이 모두 귀를 기울여 정신 잃게 하는 재조(才操)가 춘도에게 특별히 있는 것이라. 1
▲ 춘도(春桃)

 

배우지 않았어도 자연히 명창인 평양 수심가는 주순호치(朱脣皓齒)로 실마리같이 풀려 나오는데 한 곡조 하였으되,

 

「오동추야 밝은 달밤에, 안 나는 심정 저절로 나길래 동벽을 지고 서벽을 차니, 그 벽이 변하여 님 될 바 아니로다」

하는 것은 여러 해 기생 노릇 한 춘도의 회포(懷抱)를 발표함이로다.

 

“언제나 한번 서울 구경을 갈는지요. 서울을 가면 여러 동무들도 만나보겠지마는…”

 

“기생이 된 것은 아무 까닭도 없습니다. 평양에서는 제 몸의 박절(迫切)한 사정이 있어서 기생 나오는 것이 아니라, 자래(自來)로 습관이 그렇게 되어서 나온 것이니까 이제는 좋은 인연이나 제 몸에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이렇게 말은 하나 아직도 순수한 태도가 남아있어 양협(兩頰)에는 부끄러운 홍조가 아련.

【매일신보 1914.02.09】

– 기성서재(箕城書齋): 기성은 평양의 옛 명칭, 서재는 기생학교를 칭하는 말. (평양기생학교)
– 여간 통정(如干 通情): 어지간한 소통
– 무불명창(無不名唱): 무불통지(無不通知)의 명창. 뛰어난 노래꾼
– 계면(鷄眠): 계면조(界面調). 슬프고 애타는 느낌을 주는 악조
– 재조(才操): 재주. 무엇을 잘하는 소질과 타고난 슬기
– 재그럭 재그럭: 얇은 쇠붙이 따위가 가볍게 자꾸 부딪치는 소리
– 주순호치(朱脣皓齒): 붉은 입술과 하얀 치아
– 초한시(楚漢時)의 홍문연 잔치: 중국 초한 시대, 항우와 유방의 홍문 회동.
– 회포(懷抱): 마음속에 품은 생각
– 박절(迫切): 몹시 급한. 절박한
– 자래(自來): 선천적으로
– 양협(兩頰): 두 뺨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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