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공산진영의 단결을 위해 만들어진 베를린 장벽

‘우리는 단결하기 위해 철저히 분리해야 한다’

 

이토록 단호하면서도 아이러니한 문장이 있을까.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마치 패배선언과도 같은 이 문구는 동독이 베를린 장벽의 건설에 임한 이유다.

 

1945년 5월 8일, 독일의 패망과 함께 베를린은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의 분할통치를 받게 된다. 이후 미국과 영국의 군정 지역이 경제적으로 통합하자 베를린은 자연스럽게 동서지역으로 분단이 고착화되었다.

 

처음에는 서로가 훤히 보이는 철조망 정도로 가려져 있던 양 진영의 경계선은 서베를린을 향하는 탈동독 주민들의 숫자가 늘어나면서 동독 측의 골칫거리가 되기 시작하였다. 결국 1961년 8월 13일, 소련 측과 동독 정부는 주민들의 이탈과 그로 인한 공산주의 체제 붕괴를 막을 베를린 장벽을 구상하고 건설에 착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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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벽으로 둘러싸인 동독 내의 서베를린 지도

 

장벽이 서베를린 주변을 둘러싸면서 서베를린은 육지 속의 조그만 섬이 되었다. 하지만 장벽 건설 이후에도 수많은 동베를린 주민들이 ‘자유의 섬’을 향해 필사의 탈출을 감행하였다.

 

반면 공산진영의 이념사수 의지도 확고했다. 베를린 장벽은 거대하게 진화하면서 3.6m까지 높아졌고, 100개 이상의 감시탑이 늘어서며 살벌한 냉전의 상징물로 자리 잡았다.

 

아래의 사진은 베를린 장벽이 생기기 전과 건설을 시작하는 순간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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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48년 8월 21일, 동독 공무원들이 포츠담 광장 근처에서 영국 점령지와 동베를린 간의 경계선을 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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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8년 1월 2일, 서독 시민들이 울타리 너머로 동독 경찰을 구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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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9년 7월 28일, 풀다(Fulda) 근처의 철조망과 울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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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8월 13일, 서베를린에서 본 브란덴부르크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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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8월 13일, 장벽 건설 직전 강을 헤엄쳐 탈출한 동독 주민 두 명이 담요를 덮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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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8월 21일, 동독 군인이 국경을 분리할 철조망을 운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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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8월 13일, 철조망을 체크하는 동독 군인들과 웃으며 바라보는 서베를린 주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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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8월 13일, 동독 군인들이 장벽 기초공사를 위해 프리드리히 거리(Friedrichstraße)에서 보도블록을 제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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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8월 13일, 동독 군인들이 서베를린으로 가려던 노부부를 다시 데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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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8월 15일, 한스 콘라드 슈만(Hans Conrad Schumann)이 근무 중 철조망을 넘어 프랑스 점령지역으로 탈출했다. 그는 장벽 건설이 시작된 이후 최초의 동독 탈출자로 기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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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8월 18일, 동독 경찰의 감시하에 콘크리트로 장벽이 건설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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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8월 18일, 대규모 공사가 계속되는 장벽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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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8월 18일, 서베를린 주민들이 콘크리트로 막아선 장벽 너머를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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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8월 22일, 동독 군인들이 월담을 방지하는 유리조각을 장벽에 부착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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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8월 28일, 서베를린 주민들이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동베를린을 구경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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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8월, 베를린 장벽이 막 건설되던 초창기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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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9월 6일,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의 주민들이 동베를린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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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9월 6일, 크로이츠베르크(Kreuzberg)의 주민들이 아는 사람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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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9월 9일, 장벽 공사가 시작된 인발리덴 거리(Invalidenstraß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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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9월 9일, 장벽 공사에 여념이 없는 동독 경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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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9월 10일, 국경 근처에 걸쳐진 주택을 통해 서베를린으로 탈출하는 동베를린 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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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9월 12일, 빌헬름 거리(Wilhelmstraße)의 장벽 보강 공사를 위해 조립식 콘크리트 자재가 실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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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9월 14일, 동베를린 경찰이 장벽 경계선에 위치한 집을 통해 탈출하는 동독 주민들을 물대포로 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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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9월 19일, 미국 점령지와 마주한 세바스띠안 거리(Sebastianstraße)에 원활한 감시를 위해 가로등을 세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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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9월 22일, 취약해진 장벽을 보수 중인 동독 국경수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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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9월 25일, 계속해서 강화 중인 베를린 장벽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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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9월 27일, 프랑스 경찰과 장벽 너머의 공사 중인 동독 근로자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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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9월 28일, 짐머 거리(Zimmerstraße)의 베를린 장벽 건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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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9월, 동베를린 경찰들이 철조망을 통해 서베를린 주민들과 대화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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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10월 1일, 동베를린 경찰들이 서베를린 슈타인슈티켄(Steinstuecken)근처의 숲에 철조망을 보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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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1년 10월 16일, 한 동베를린 주민이 장벽을 넘어 필사의 탈출을 하는 모습.

 

절대 무너질 일이 없을 것만 같았던 베를린 장벽은 갑작스레 붕괴하였다.

 

80년대 소련의 고르바초프가 글라스노스트와 페레스트로이카를 추진하였지만 동독의 기득권들은 이 개혁 정책을 거부하였다. 하지만 동독 국민들의 반발 시위와 대규모 탈출이 이어지면서 ‘변해야만 하는’ 난감한 상황에 빠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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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를린 장벽을 부수는 독일 시민


결국 성난 시민들을 달래기 위해 
‘서독 방문 제재를 완화하겠다’라는 발표를 하기에 이르는데, 이탈리아의 언론사가 통역상의 실수로 ‘현 시간부로 서독 방문이 자유화되었다’는 역사적인 오보를 발표하고 만다.

 

보도를 접한 베를린 시민들은 장벽으로 향했다. 동독 국경수비대가 이들을 막아섰지만 “이 양반 소식 참 늦네. 왕래가 자유화되었다는 소식도 못 들었소?”라는 핀잔에 뒤통수를 긁으며 머쓱하게 물러났다.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에 올라선 주민들은 연장을 들고 신나게 장벽을 부수며 전 세계에 독일 재통일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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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로써 베를린 장벽(1961.08.13~1989.11.09)은 건설된 지 10316일 만에 종말을 고했다. 하지만 동독 정부가 공식적으로 장벽 철거를 시작한 것은 1990년 6월 13일이었고, 법적인 독일 통일은 1990년 10월 3일에야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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