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고립된 무인도, 부베 섬(Bouvet Island)
세계에서 가장 외딴 지역인 트리스탄다쿠냐(관련 글)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지만, 엄밀히 말하면 트리스탄다쿠냐는 ‘세계에서 가장 외딴, 「사람이 사는」 지역’이다.
그렇다면 사람 없이 외롭게 있는, 세계에서 가장 외딴 무인도는 어디일까.
고립무원의 무인도, 부베
면적 49㎢의 부베섬은 기원전 2000년에 발생한 화산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섬으로 표면의 93%가 빙하로 뒤덮여 있다.
▲ 부베섬의 위치
위치상으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남서쪽으로 2,600km 떨어져 있으며 가장 가까운 육지는 남극대륙의 퀸 모드 랜드(Queen Maud Land)로 1,700km 떨어져 있다. 또 트리스탄다쿠냐 제도의 고흐섬과는 남쪽으로 1,600km 떨어져 있다.
*퀸 모드 랜드(Queen Maud Land):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노르웨이의 탐험가 아문센은 남극으로 가는 길에 발견한 땅과 산맥에 노르웨이의 모드(Maud) 왕비의 이름을 붙였다. 그래서 남극에는 퀸 모드 랜드와 퀸 모드 산맥(Queen Maud Mts.)이 생겼다.
즉 부베섬을 중심으로 1,000마일(약 1,600km) 반경의 원을 그리면, 그 안에는 바다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완벽하게 홀로 고립된 섬인 것이다.
▲ 2004년작 에이리언 vs 프레데터는 고립된 부베섬을 배경으로 한다. 실제촬영은 다른 곳에서 하였다.
최초의 발견
북유럽을 대표하는 국가 노르웨이가 바로 세계에서 가장 외딴섬의 소유국이다.
1739년, 프랑스의 탐험가 쟝 바티스트 샤를 부베 드 로지에(Jean-Baptiste Bouvet de Lozier,1705~1786)는 항해 중 남대서양의 외딴섬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그는 탐험 중 본 육지가 섬인지, 대륙의 일부인지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했고 위치도 부정확하게 기록해서 훗날 그의 기록으로 따라간 탐험대들은 섬을 발견할 수 없었다.
세월이 흘러 이곳에 가장 처음 상륙했다고 주장한 사람은 1808년 영국 포경선의 선장 제임스 린제이(James Lindsay)였고, 그는 섬에 자신의 이름을 따 ‘린제이 섬’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1822년에는 미국의 탐험가 벤자민 모렐(Benjamin Morrell)이 이곳을 발견하였다고 주장했지만 사람들에게 표면이 빙하로 덮인 섬의 모습을 묘사하지 못하면서 실제로 이곳에 갔는지는 현재도 물음표로 남아있다.
▲ 빙하로 덮인 부베섬
이후 1825년 10월 25일, 영국 포경선이 섬에 상륙하며 리버풀 섬이라는 명칭을 부여했고 이를 근거로 소유권을 주장하였다. 하지만 1927년 노르웨이 하랄 호른트베트(Harald Horntvedt, 1879~1946) 원정대가 부베섬에 한 달간 머무름으로써 가장 오래 체류하였기 때문에 섬에 대한 소유를 주장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 1927년 12월, 상륙한 노르웨이 탐험대
결국 섬은 1929년 11월 공식적인 상륙과 긴 체류기간이 인정된 노르웨이의 소유가 되었고, 최초 발견자인 부베의 이름을 따서 섬의 명칭은 ‘부베섬(노르웨이어: Bouvetøya)’으로 정해졌다.
부베섬의 혹독한 환경
섬에서 가장 높은 곳은 올라브토펜(Olavtoppen) 화산으로 해발 780m이고, 배가 정박할 수 없는 섬의 지형상 유일하게 헬기로 입도할 수 있는 곳이다.
▲ ISS에서 촬영한 부베섬
유일하게 서식하는 동물은 펭귄과 바다새, 바다표범 등으로 특히 바다새들의 서식지로의 중요성을 인정받아 조류서식지 보호를 위한 국제기구인 버드라이프 인터내셔널(BirdLife International)에 의해 중요조류지역(Important Bird Area)으로 지정되었다.
▲ 남부바위뛰기펭귄 (Southern rockhopper penguin)과 바다표범
조류와 바다표범의 보호구역으로도 유명하지만 근해는 풍부한 양의 남극크릴새우 산지로 알려져 있다.
노르웨이는 2008년 60만 톤 이상의 남극크릴새우를 무차별 어획하며 2009년 UN으로부터 어획구역 제한조치의 굴욕을 당하기도 하였다. 크릴새우는 고래의 주요한 식량이어서 남획은 결국 고래의 멸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징계의 원인이었다.
▲ 크릴새우. 섬의 배타적 경제수역은 441,163㎢에 이른다.
현재 거주는 물론 연구목적으로도 섬에 머물러있는 사람은 없다. 전화나 전기는 전혀 사용할 수 없고, 섬의 기상이 워낙 급변하는 데다가 지진이나 태풍으로 구조물들이 몇 달을 버티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 부베섬 지도
1970년대 이후 노르웨이 탐험대가 비정기적으로 방문해 기상관측과 지질조사를 하고 있으며 1985년 3월에는 섬의 기상이 사상 최대로 맑아 최초로 섬 전체를 공중에서 촬영할 수 있었다. 이로써 발견 247년 만에 처음으로 섬의 정확한 지도가 만들어졌다.
▲ 노르웨이 원정대가 남기고 온 타임캡슐
한편 2012년 2월 노르웨이 한세(Hanse) 원정대는 부베섬의 정상인 울라브토펜봉에 오른 최초의 사람들이었다. 이들은 등반 후 50년 후인 2062년에 개봉할 타임캡슐을 정상에 묻고 내려오기도 하였다.
부베섬을 둘러싼 미스터리
1. 의문의 구명보트
이처럼 사람의 흔적이 전혀 없는 곳이기에 미스터리한 사건도 발생했는데, 대표적인 것이 보급품들이 담긴 구명보트가 섬에서 발견되었지만 인간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던 ‘유령 보트 사건’이었다.
▲ 해안가의 의문의 보트
1964년 4월 2일, 영국왕립해군의 HMS 프로텍터(HMS Protector)가 이곳에 도착해 헬리콥터로 입도했다. 탐험을 시작한 앨런 크로프드(Allan Crawford)는 불과 몇 분 만에 바다표범 군락에 버려진 의문의 보트를 발견했다. 보트는 반 정도 물에 잠겨있었지만 물에 뜰 수 있을 만큼 상태는 멀쩡했다.
앨런 크로포드는 보트에서 국적을 확인할 수 있는 표식을 전혀 발견하지 못했고 근처를 수색했지만 조난자나 시체의 흔적도 없었다. 다만 해변에 의문의 드럼통과 구리 상자 등이 펼쳐져 있었는데 45분간의 짧은 체류시간 동안만 머물 수 있었던 그는 의문만 가진채 철수했다.
탐험대는 이 보트를 포경선 또는 여객선의 구명보트로 추정했지만 당시 현장에서 1,500km 이내에는 어떤 항로도 운용되고 있지 않았다. 만에 하나 1,500km 밖의 배에서 내린 구명보트라면 어떻게 내비게이션도 없이 부베섬에 도달할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었다. 1500km의 바다에서 조그만 섬을 찾아 정박한다는 것은 백사장에서 바늘을 찾는 것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
또 기적적으로 찾았다 할지라도 파도가 거칠고 높기로 유명한 남극해의 바다에서 살아남은 것까지 기적에 기적을 더해야 가능한 일이었다. 심지어 보트에는 돛과 엔진도 없이 노만 존재했으며 생존자가 해변을 향해 간 징후가 있었지만 그 이후의 흔적은 전혀 없었다.
▲ 가까이에서 본 보트
이 미스터리의 설명 중 오늘날 가장 유력한 것은 소련 탐험대의 이야기이다.
1958년 11월 27일, 소련의 선박이 조류연구를 위해 포경선 슬라바-9호(Slava-9)를 타고 부베섬을 방문했다. 겐나디 솔랴닉(Gennady Solyanik)이 1959년에 작성한 ‘부베섬의 조류 관찰’이라는 보고서에 따르면, 탐험대는 솔랴닉을 포함해 총 10명이었다.
그런데 도착 직후 허리케인이 부베섬을 덮치면서 이들의 귀환은 불가능해졌고 예상치 못하게 3일간 머물러야 했다. 허리케인이 지나간 후 이들은 슬라바-9호에 있던 Mi-1MG 헬기를 타고 대피하며 구명보트는 버리고 갔다는 것이다. 당시 헬기 조종사 에버랸 르젭스키(Averyan Rzhevskiy)가 이 대피작전에 대해 1972년 소련의 잡지에서 언급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의문의 드럼통과 장치는 여전히 미스터리였는데 이는 1962년 아마추어 무선(HAM) 애호가인 거스 브라우닝(Gus Browning, 1908~1990)이라는 사람이 남긴 것으로 밝혀졌다.
▲ 거스 브라우닝과 그가 부베섬에서 남긴 신호
1962년 11월 26일부터 28일까지 DX-pedition(아마추어 무선사들이 이국적인 지점을 찾아가는 탐험)을 위해 부베섬을 방문한 브라우닝은 큰 가솔린 드럼통을 가져와 안테나를 접지하는데 사용했다.
할 일을 한 브라우닝은 별일 없이 쇄빙선을 타고 귀환했는데 아마 그도 소련 탐험대가 남긴 보트를 발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무선통신이 급한 그에게 이 미스터리는 별로 중요한 것은 아니었고 단지 구명보트에 있던 구리 상자를 꺼내 무선통신장치를 설치하는데 유용하게 사용했다.
결국 두 가지 해프닝이 겹치면서 이중의 미스터리가 만들어진 것이었다.
2. 의문의 폭발
또 1979년 9월 22일에는 인공위성에 의해 부베섬에서 섬광이 관측되었다. ‘벨라 사건(vela incident)‘으로 명명된 이 폭발(South Atlantic Flash)로 공기 중 방사능이 검출되었다.
▲ 벨라 위성
당시 핵실험을 감시하는 벨라 위성(Vela Hotel satellite 6911)에 따르면 인도양 부근에서 강렬한 섬광 패턴이 관측되었고, 잠시 후 특이하고 빠른 속도의 전리층 교란이 푸에르토리코의 아레시보 천문대에서 감지되었다. 같은 시간 미 해군의 수중음향 감시체계(SOSUS)에도 관측되며 무엇인가 폭발이 있었던 게 확실한 상황이었다.
결국 폭발 관측 이후 방사능이 검출된 것으로 핵폭발이라는 결론에 이르렀고, 용의자로는 남아프리카 공화국과 이스라엘의 공동 핵실험을 비롯해 소련, 인도, 프랑스가 거론되었지만 관련국들은 철저히 부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