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30] 백산월(白山月, 기생)
얌전하고 어여쁘고 알뜰하고 연연하고.
시조, 가사, 노래, 수심가, 기담 잡가를 그중 잘하고 글씨는 명필이라고 할만치 쓰고 글은 한문도 대강 알고 서화는 참 잘한다고 칭찬을 받는 평양기생 백산월은 방년이 15세라.
6세에 부친을 여의고 조모와 모친 슬하에 자라나매 별로 가정교육의 만족치 못할 것은 당연한 일이로다.
그러나 산월은 어려서부터 명민한 식견이 있어 조모와 모친의 말을 조금도 어기지 아니하고 수하에 있는 행랑 사람을 예법으로 부리니 가정이 아무리 여자의 가족으로 조직하였으나 실로 정숙한 태도를 가졌더라.
산월의 기생되기는 어느 때인고. 열두 살에 어떤 여학교에서 퇴학하고 물러나온 해 가을이로다.
그때부터 기생 서재에 다니면서 일변 소리를 배우고, 일변 춤을 공부하여 불과 삼사 년에 모든 사람의 갈채함을 받으니 장차 평양기생계를 빛내일 자는 백산월이라 하리로다.
▲ 백산월(白山月)
“자, 들어들 보시오 내 소리요 「금강을 자랑코자 탁문군이 생겨나고, 아미산을 자랑코자 설도가 생겨나고, 당국 시대를 자랑코자 양태진이가 생겨나고, 송국 풍진이 적막하니 명옥이를 내이시고, 평양 강산을 자랑코자 백산월이를 내였구나 에라만수…」 아이고, 내가 웬걸 그럴 수가 있나요. 실수올시다.”
하고 헤헤 웃는 입속에는 금니가 반짝~
【매일신보 1914.03.05.】
– 명민(明敏): 총명하고 민첩
– 행랑(行廊):대문 안에 죽 벌여서 지어 주로 하인이 거처하던 방
– 서재(書齋): 기생학교를 칭하는 말
– 일변(一邊):어느 한편
– 탁문군(卓文君): 중국 서한 때의 여류 음악가.
– 설도(薛濤): 중국 당나라의 기녀, 여류시인(768?~832)
– 양태진(楊太眞): 양귀비(楊貴妃)의 호. 이름은 양옥환(楊玉環)
– 명옥: 앞의 내용에 따라 송나라 시대의 기녀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
– 에라만수: 성주풀이에 쓰이는 감탄사. 어원은 여러 가지 설이 있으나 고려말 무신 유만수(柳曼殊) 설이 유력해 보인다. 자료 링크(한국학 중앙연구원)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본인에게 허락받지 않았을 광고
구한말에서 일제시대에 걸쳐 현대의 연예인과 같은 위치에 있었던 유명 기생들은 신문이나 잡지의 광고모델로도 등장했다.
‘예단일백인’으로 선정된 백산월도 광고에 출연했는데, 바로 ‘도락구상회 남대문정차장(현 서울역)지점’의 화류병 치료제 광고였다.(관련 글: 약국의 간판으로 본 일제시대 화류병)
▲ 도락구상회 남대문정차장(현재 서울역)지점의 화류병 치료제 광고
‘절대가인(絶代佳人)이라도 화류병에 걸리면 추부(醜夫)로 변한다’는 주제로 만들어진 이 광고 속에서 왼쪽의 여성은 화류병에 걸려 코와 얼굴이 문드러진 모습으로 공포감을 조장하고 있다. (오른쪽 여성은 예단일백인 46편에 등장하는 도홍이다)
생각해보면 화류병 환자가 자신의 망가진 얼굴을 드러내며 카메라 앞에 섰을 리는 없고, 아마도 사진에서 코를 오려내고 얼굴 곳곳을 먹으로 칠하는 방법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여성이 바로 기생 ‘백산월(白山月)’로 추정된다.
▲ 광고 사진과 예단일백인 사진
예단일백인에 사용된 사진과 광고사진을 비교해보면 얼굴은 칠을 해서 알아보기 힘들게 변형시켰으나 얼굴형이 비슷하게 남아있고 흰색의 옷차림과 옷의 주름, 그림자가 일치하고 있다.
비록 얼굴을 알아보기 힘들게 만들었더라도 누군가는 알아볼 텐데 기생영업에 지장을 초래할 화류병 광고에 돈을 얼마를 주든 사진 사용을 허락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고, 아마도 신문사에서 임의로 그녀의 사진을 사용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 참고문헌:
• 每日申報. 藝壇一百人(三0).백산월 (1914.0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