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34] 이병문(李秉文, 국악인)
이병문(李秉文)이라 하면 음악계의 패왕으로 가히 지목할 것은 누구든지 점두하는 바이라.
금년이 59세이니 조그만 키와 파사한 얼굴은 침착 자상하여 선천적 율객의 품부를 타고났다 하여도 가할지라.
16세부터 음악을 공부하여 40여 년을 전문 연구한 결과로 지금에는 정악전습소(正樂傳習所)의 교사로 있는 터이라.
▲ 이병문(1855~?)
거문고, 가야금, 양금, 장구, 단소, 남무, 남녀 청소리, 여민락(與民樂), 영산회상, 취타와 기타 가곡을 모두 겸비하며 간간히 기생 조합의 여러 꽃(기생)을 데리고「슬기둥청 슬기둥뜰둥당 슬기둥」하며,
“이렇게 손을 쥐어서는 못 쓴단 말이야. 이 손가락으로는 줄을 이렇게 누르고, 이 손으로는 이 줄을 이렇게 뜯어.”
하는 이병문…
완연한 화림 중에서 육관대사 성진이가 팔선녀 데리고 희롱하던 꿈을 꾸는 듯.
▲ 구운몽도(九雲夢圖)의 팔선녀
희망이 적은 이 세상에서 일생을 이와 같이 즐겁게 지내는 것이 또한 옳은 일일 런지도 알지 못하리로다.
구래의 조선음악은 점점 쇠미하여 없어지지 아니하도록 널리 여러 사람에게 전파하면 그것도 일생에 한 사업이 아니리오.
【매일신보 1914.03.10】
– 점두(點頭): 옳다고 여기거나 어떤 뜻을 나타내어 머리를 끄덕이는 것
– 파사한:가냘프고 마른
– 품부(稟賦): 선천적으로 타고나는 것
– 정악전습소(正樂傳習所): 1911년 정악을 유지, 보급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음악교육기관
– 화림(花林): 꽃나무로 이루어진 숲
– 육관대사: 《구운몽》의 등장인물. 주인공 성진의 스승
– 구래(舊來): 예전부터 내려옴
– 쇠미(衰微): 쇠잔하고 미약함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