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35] 연엽(蓮葉, 기생)
평양 대흥면(大興面) 설씨동(薛氏洞) 사는 기생 최연엽(崔蓮葉)은 본시 평양 출생으로 여덟 살부터 기생서재에 입학하여 시조, 노래, 가사, 잡가와 소포구락(小抛毬樂), 승무, 검무를 공부하여 기생계로 나오는 날부터 가무에 일등이라고 평판을 듣는데, 어느 연희석이든지 가무장이든지 연엽이가 없으면 일반이 재미를 잃고 슴슴히 지내는 모양이라.
이러므로 회석 출입이 빈번하여 별로 집에 앉아 있을 날이 적고, 또한 교제 수단이 능란하고 언어가 온공하여 한번 상종한 사람은 연엽에게 정신을 빼앗겨 버리고 갈 생각이 없으니, 연엽의 몸은 심히 곤고하지마는 잠시도 태만한 기색이 없고 오직 손님 대접하는 활동하는 힘이 점점 늘어가니, 자연한 가운데(자연히) 불소한 재산을 모아 부모를 평안히 모시고 여러 동생까지 잘 건사하는 터이며 연엽의 방년은 21세라.
▲ 최연엽(崔蓮葉)
지금은 기생계를 사절하고 살림을 원하되 마음에 합당한 사람이 없어 뜻을 이루지 못하여 밤이면 달빛을 볼 때마다 남모르는 감상이 많더라.
“청춘이 덧없이 갈 줄을 알았다면 청사 홍사로 결박을 할 걸. 백발이 장차 오실 줄을 알면 십리 안에 가시성을 쌓으리라. 아마도 인간행락이 일순간이리. 랑사중에서 진시황 치던 철퇴를 들어 순환 공리를 깨치고 지고…”
하는 수심가 한 마디에 듣는 사람의 구곡간장이 굽이굽이…
【매일신보 1914.03.11.】
– 설씨동(薛氏洞): 평양시 중구역 만수동 영역에 있던 폐동. 설 씨 집성촌에서 유래
– 소포구락(小抛毬樂): 조선 초기 당악의 한 곡명
– 기생서재(妓生書齋): 기생학교를 칭하는 말
– 슴슴히: ‘심심하게’의 옛말
– 온공(溫恭): 온화하고 공손함
– 곤고(困苦): 형편이 어렵고 딱한. 여기서는 피곤하다는 의미로 사용
– 자연한 가운데:이치에 맞게 저절로. 자연히
– 불소(不少): 적지 않은
– 인간행락(人間行樂): 인생의 즐거움
– 랑사중(浪沙中): 진시황이 저격을 당한 박랑사(博浪沙)라는 지명
– 구곡간장(九曲肝腸): 깊은 마음속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