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과 함께 침몰한 아름다운 시집

1912년 4월 15일에 발생한 타이타닉 침몰 사고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당시 타이타닉에는 부유층들도 많이 타고 있었지만, 이민이나 귀국이 아닌 여행이 목적이었던지라 고가의 물건을 소지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지금도 경매에 출품되는 물건들을 보면 당시의 티켓, 망원경, 구명조끼, 열쇠 등 평범한 물건들 일색이지만 세기의 사고와 관련된 물건이라는 점에서 프리미엄을 받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관련 글: 경매에 나온 타이타닉의 유물들)

 

물론 귀중품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타이타닉과 관련 없이도 높은 가격이 책정될 수 있는 몇몇 물건도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페르시아의 수학자 오마르 하이얌(Omar Khayyam)의 시집 ‘루바이야트(Rubaiyat)’였다.

 

1912년 4월 15일에 발생한 타이타닉 침몰 사고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당시 타이타닉에는 부유층들도 많이 타고 있었지만, 이민이나 귀국이 아닌 여행이 목적이었던지라 고가의 물건을 소지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1
▲ 오마르 하이얌(Omar Khayyam, 1048~1131)의 동상


타이타닉과 함께 북해에 가라앉은 루바이야트는 20세기에 유명세를 떨쳤던 제본업체 산고르스키 앤드 서트클리프(Sangorski & Sutcliffe, 이하 S&S로 표기)에서 1911년에 만든 것으로 회사의 대표 프랜시스 산고르스키(Francis Sangorski, 1875~1912)가 직접 제작을 담당했다.

 

당시 S&S는 화려한 장식의 표지를 만드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1911년판 루바이야트 역시 ‘가격에 상관없이 지금껏 본 적 없는 걸작을 만들어달라‘는 의뢰를 받아 2년의 제작기간을 소요한 작품이었다.

 

1912년 4월 15일에 발생한 타이타닉 침몰 사고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당시 타이타닉에는 부유층들도 많이 타고 있었지만, 이민이나 귀국이 아닌 여행이 목적이었던지라 고가의 물건을 소지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3
▲ 흑백사진으로 남아있는 1911년판 루바이야트(Sangorski & Sutcliffe)


금박을 입힌 중세 페르시아의 복잡한 문양으로 가득한 표지에는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꼬리를 가진 공작 세 마리가 그려져 있었고 1050개의 자수정, 루비, 에메랄드가 사용되었다.

 

또한 가장 품질이 뛰어난 가죽을 비롯해 은, 상아, 22캐럿의 금박 600장이 사용되는 등 재료만으로도 그 가치를 짐작할 수 있는 호화로운 시집이었다.

 

바뀐 일정으로 타이타닉과 함께 침몰


완성된 시집은 원래 뉴욕으로 보내져 현지 부자들에게서 구매자를 물색할 예정이었지만 미국 세관이 너무 높은 관세를 책정함에 따라 다시 영국으로 반환되어 소더미 경매에 출품되었다.

 

1912년 4월 15일에 발생한 타이타닉 침몰 사고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당시 타이타닉에는 부유층들도 많이 타고 있었지만, 이민이나 귀국이 아닌 여행이 목적이었던지라 고가의 물건을 소지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5
▲ 원본 책의 삽화는 엘리후 베더(Elihu Vedder)의 작품으로 리처드 그린(Richard Green)이 컬러로 복원하였다.


루바이야트의 예비 가격으로 책정된 금액은 1,000파운드(2022년 현재가치 한화 약 2억 원). 그러나 당시 석탄노조 파업 등으로 인해 불안한 사회분위기는 리스크가 큰 사치품에 투자하는 것을 꺼리게 했고, 결국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450파운드(2022년 현재가치 한화 약 9100만 원)에 가브리엘 웰스라는 인물에게 낙찰되었다.

 

가브리엘 웰스는 낙찰받은 책을 곧바로 미국으로 보내려고 했다. 그런데 위에 말한 석탄노조 파업으로 인해 원래 타고 갈 예정이었던 선박회사의 운항이 취소되면서 다른 배에 실리게 된다.

 

불행하게도, 바뀐 배는 바로 ‘타이타닉‘이었다.

 

1912년 4월 15일에 발생한 타이타닉 침몰 사고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당시 타이타닉에는 부유층들도 많이 타고 있었지만, 이민이나 귀국이 아닌 여행이 목적이었던지라 고가의 물건을 소지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7
▲ 타이타닉과 함께 침몰한 루바이야트

 

승선한 시집과 타이타닉은 모두가 알다시피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하고 북대서양의 심해에 가라앉는 운명을 맞았다. 지금까지 타이타닉은 여러 탐험가와 고고학자, 보물 사냥꾼의 방문을 받았으나 이 책이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없다.

 

– 관련 글: 타이타닉 침몰 현장

 

사진으로 보는 타이타닉의 부식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심해지고 있지만 금과 보석은 아무리 오랜 세월이 흘러도 부식되지 않기에 누군가 몰래 들고 간 것이 아니라면 이 화려한 시집이 언젠가는 발견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침몰과 폭파, 그리고 세 번째 복원

 

시집이 실린 타이타닉의 침몰 사고 몇 주 후, 시집을 제작한 프랜시스 산고르스키도 운명을 함께 하듯이 불의의 익사사고로 생을 마감했다. 이를 두고 늘 그렇듯이 호사가들은 ‘시집의 저주‘라는 이야기를 입에 올리기 시작했다.

 

1936년에는 S&S의 공동대표였던 조지 서트클리프(George Sutcliffe, 1878~1943)도 뇌졸중으로 쓰러졌고, 회사는 조카 스탠리 브레이(Stanley Bray, 1907~1995)가 물려받았다. 스탠리 브레이는 S&S의 명성과 시집을 함께 부활시키겠다는 일념 하에 6년을 들여 루바이야트를 재현하였고 제2차 세계대전의 화마를 피하기 위해 은행의 금고에 안전하게 보관했다.

 

하지만 독일이 감행한 영국 대공습에 의해 은행 건물은 물론 금고까지 송두리째 파괴되어버렸다. 두 번째로 제작된 시집은 그렇게 침몰에 이어 폭파로 또다시 세상에서 사라졌다.

 

이후 회사에서 물러난 스탠리 브레이는 책의 세 번째 복제본을 만들기 시작했다. 폭파로 사라진 두 번째 복제본이 비슷하게 만들어진 것이었다면 세 번째 판은 원본을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이 목표였던지라 무려 40년의 시간이 소요되었다.

 

1912년 4월 15일에 발생한 타이타닉 침몰 사고는 한 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수많은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당시 타이타닉에는 부유층들도 많이 타고 있었지만, 이민이나 귀국이 아닌 여행이 목적이었던지라 고가의 물건을 소지한 경우는 별로 없었다. 9
▲ 세 번째 복원된 루바이야트


완벽하게 복원된 루바이야트는 스탠리 브레이의 사후에 영국 도서관(British Library)에 기증되었다. 생전에 그는 “이 시집이 재앙을 불러왔다고들 하지만 나는 그 미신을 조금도 믿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복원에 집념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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