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의 고도(古都)’,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의 1972년 풍경
1970년대의 우즈베키스탄은 소련의 일부인 ‘우즈베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Uzbek Soviet Socialist Republic)’으로 존재하고 있었다.
이 시기 국교였던 이슬람교는 소련당국에 의해 큰 탄압을 받았으며, 대부분의 이슬람 모스크는 폐쇄되는 길을 걸었다. 하지만 소련 서부의 많은 산업체들이 냉전으로 대치하던 서구로부터 안전한 지역으로 여겨졌던 우즈베키스탄으로 이전하면서 공업부문과 문맹퇴치에서 큰 발전을 이루는 긍정적인 측면도 있었다.
1972년, 사진작가 프랭크 바움가르트(Frank Baumgart)는 티무르 제국 시대의 수도였던 사마르칸트(Samarkand)를 방문해 소련 치하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다.
▲ 사마르칸트에 있는 구르 아미르(Gur-e Amir) 영묘의 돔.
티무르 제국을 건국한 황제 티무르(Timur, 1336~1405)와 그의 후손들이 잠들어 있으며, 구르 아미르(Gur-e Amir)는 페르시아어로 ‘왕의 무덤‘을 뜻한다.
▲ 사마르칸트 레기스탄(Registan)의 셰르도르 마드라사(Sherdor Madrasa)의 화려한 기둥. ‘마드라사’란 이슬람의 율법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을 말한다.
▲ 셰르도르 마드라사(Sherdor Madrasa)의 정문. 구소련 시대에 마드라사는 반종교 박물관으로 운영되었다.
▲ 셰르도르 마드라사(Sherdor Madrasa)의 현재 모습.
▲ 사마르칸트에 있는 하즈랏 히즈르 모스크(Hazrat Khizr Mosque)의 복원된 목조 천장.
모스크의 이름은 이슬람교가 들어오기 이전부터 중동지역에 널리 퍼져있던 ‘여행자들의 수호성인’ 히즈르(Khidir, Khizir, Khizr, Khyzyr)에서 따온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하즈랏 히즈르 모스크(Hazrat Khizr Mosque)
8세기에 지어진 이 모스크는 사마르칸트에서 가장 오래된 이슬람 모스크 중 하나로, 1220년 징기스칸(Genghis Khan, 1162~1227)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가 1884년에 복원을 시작해 1919년에 완공되었다.
▲ 이슬람 카리모프 영묘.
모스크 근처에는 공동묘지가 들어서 있는데 2016년 9월 3일, 우즈베키스탄 초대 대통령 이슬람 카리모프(Islam Karimov, 1938~2016)의 영묘가 이곳에 조성되었다.
▲ 사마르칸트 북동쪽에 있는 티무르 제국시대의 저명한 인물과 종교지도자가 묻힌 샤이신다(Shah-i-Zinda) 묘지 주변을 방문객들이 지나가고 있다.
▲ 사마르칸트의 주택가에서 전통악기를 연주하는 4명의 남성들을 주민들이 나와 구경하고 있다. 남성들이 악기를 연주하는 이유는 자신의 집안 혹은 지인의 결혼식이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함이다.
▲ 사마르칸트의 수예 공장에서 여성들이 모여 전통모자에 금색 수를 놓고 있는 모습.
▲ 사마르칸트의 원단공장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축제에 사용할 의상을 봉제하고 있다.
▲ 사마르칸트 시장 내의 과일가게. 판매대에는 대부분 사과와 포도가 놓여있다.
▲ 사마르칸트의 과일매장을 방문한 여성이 포도를 살펴보고 있다. 중앙아시아에서 볼 수 있는 일자눈썹 화장이 눈에 띈다. (관련 글: 타지키스탄 전통미인의 조건 ‘일자 눈썹’)
▲ 시장을 방문한 여성이 노점상 노인이 파는 사과를 살펴보고 있다.
▲ 사마르칸트 시장 야외에서 수박을 판매하는 모습.
▲ 사마르칸트 시장의 입구에서 칼을 갈아주는 기술자.
▲ 사마르칸트 근교 국영농장에 설치된 목화 수확기계.
과거 우즈베키스탄은 목화 수확시기에 정부가 주도하는 체계적인 강제노동을 시행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아서 최근까지도 국제노동기구(ILO)의 지속적인 감시를 받아왔다.
▲ 목화 수확을 마친 노동자들이 난(빵)과 함께 차와 과일을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사마르칸트 인근 목화농장의 들판에 수확된 면화를 쌓아놓은 모습.
2022년 현재 우즈베키스탄은 세계 5위 면화 생산국으로, 과거 악명 높았던 강제노동의 근절을 인정받아 수출제한이 해제되면서 관련산업이 급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