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사진엽서 속 아일랜드

월터 롤리는 북미대륙을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아일랜드의 폭동을 진압했으며, 스페인의 무적함대로부터 영국을 지켜내는데도 공을 세운 인물. 이런 그가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의 총애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
▲ 1847년, 아일랜드 코크주(County Cork)의 리강(River Lee)의 강변. 리강은 셰이 산맥(Shehy Mountains)에서 발원하여 세계에서 가장 큰 자연항구 중 하나인 코크항을 지나 켈트해로 흘러가는 길이 90km의 강이다.

월터 롤리는 북미대륙을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아일랜드의 폭동을 진압했으며, 스페인의 무적함대로부터 영국을 지켜내는데도 공을 세운 인물. 이런 그가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의 총애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3

▲ 1848년, 아일랜드 워터포드 주의 리스모어 성(Lismore Castle). 성은 12세기 후반에 처음 건설되었으나 현재의 모습은 대부분 19세기 중반에 고딕양식으로 재건된 것이다.

월터 롤리는 북미대륙을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아일랜드의 폭동을 진압했으며, 스페인의 무적함대로부터 영국을 지켜내는데도 공을 세운 인물. 이런 그가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의 총애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5
▲ 상공에서 본 현재의 리스모어 성.

월터 롤리는 북미대륙을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아일랜드의 폭동을 진압했으며, 스페인의 무적함대로부터 영국을 지켜내는데도 공을 세운 인물. 이런 그가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의 총애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7
▲ 1848년, 가까이에서 본 리스모어 성(Lismore Castle). 현재는 일부 정원이 일반에 개방되고 있고, ‘리스모어 캐슬 아트’라는 현대미술관이 운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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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48년, 아일랜드 코크주에 위치한 휴양지 욜(Youghal)에 있는 월터 롤리 경(Sir Walter Raleigh, 1554~1618)의 저택 ‘머틀 그로브(Myrtle Grove)’.

월터 롤리는 북미대륙을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아일랜드의 폭동을 진압했으며, 스페인의 무적함대로부터 영국을 지켜내는데도 공을 세운 인물. 이런 그가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의 총애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1
▲ 머틀 그로브의 정면 모습(20세기). 현재도 공유지가 아닌 개인주택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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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롤리는 북미대륙을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아일랜드의 폭동을 진압했으며, 스페인의 무적함대로부터 영국을 지켜내는데도 공을 세운 인물. 이런 그가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의 총애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3
▲ 무대 위의 월터 롤리와 엘리자베스 1세 연극 배우들.

 

이곳에 월터 롤리가 거주한 것은 1588년부터 1589년까지의 잠깐이었으나, 여러 소유주들 중 그가 제일 유명한 인물이었다.

 

월터 롤리는 북미대륙을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아일랜드의 폭동을 진압했으며, 스페인의 무적함대로부터 영국을 지켜내는데도 공을 세운 인물. 이런 그가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의 총애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5
▲ 1853년, 성카니스 대성당(St Canice’s Cathedral)에서 본 킬케니(Kilkenny)의 전경. 우측에 보이는 뾰쪽한 첨탑이 있는 건물은 1842년에 완공된 성모 대성당(St Mary’s Cathedral)이다.

월터 롤리는 북미대륙을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아일랜드의 폭동을 진압했으며, 스페인의 무적함대로부터 영국을 지켜내는데도 공을 세운 인물. 이런 그가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의 총애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7
▲ 현재의 킬케니(Kilkenny) 전경.

월터 롤리는 북미대륙을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아일랜드의 폭동을 진압했으며, 스페인의 무적함대로부터 영국을 지켜내는데도 공을 세운 인물. 이런 그가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의 총애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19
▲ 1853년, 성카니스 대성당(St Canice’s Cathedral) 뒤쪽에서 본 킬케니 전경. 중앙에서 시야를 가리고 있는 탑은 성카니스 대성당과 함께 서있는 원형탑(round tower)이다.

 

13세기에 지어진 성카니스 대성당보다 훨씬 앞선 9세기경에 망루로 세워졌으며, 두 건물이 모두 킬케니의 랜드마크로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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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카니스 대성당과 원형탑이 함께 촬영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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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70년, 아일랜드 코크주(County Cork)의 블라니 성(Blarney Castle). 1210년에 처음으로 건축되기 시작했으며 현재의 구조는 1446년에 만들어졌다.

 

성곽은 오늘날 대부분 폐허가 되어 블라니 캐슬&가든스(Blarney Castle & Gardens)라는 공원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공원 내에 있는 ‘블라니 스톤(Blarney Stone)’에 키스를 하면 언변술이 높아진다는 이야기 덕분에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고 있다.

월터 롤리는 북미대륙을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아일랜드의 폭동을 진압했으며, 스페인의 무적함대로부터 영국을 지켜내는데도 공을 세운 인물. 이런 그가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의 총애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5
▲ 달변가가 되기 위해 ‘블라니 스톤’에 키스를 하는 관광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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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66년, 아일랜드 클레어 주(County Clare)에 있는 에니스 수도원(Ennis Frahere)의 폐허가 된 회랑.

 

13세기 중반 가톨릭 프란치스코회 소속의 수도원으로 설립되었으나 16세기 가톨릭이 탄압을 받으면서 아일랜드 교회의 소유가 되었고, 이후 새로운 건물이 지어지면서 완전히 버려졌다. 19세기 후반까지도 폐허로 남아있다가 1969년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반환되었으나, 공식적으로는 아일랜드의 국립기념물이며 폐허상태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월터 롤리는 북미대륙을 대영제국의 식민지로 만드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아일랜드의 폭동을 진압했으며, 스페인의 무적함대로부터 영국을 지켜내는데도 공을 세운 인물. 이런 그가 엘리자베스 1세(1533~1603)의 총애를 받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29
▲ 현재의 에니스 수도원. 좌측 무너진 부분이 회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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