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초의 유치원, ‘사립부산유치원’
온라인에서 ‘국내 최초의 유치원‘을 검색해보면 함경북도에서 1909년에 설립된 나남유치원(羅南幼稚園)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그리고 추가로 부연되는 설명이 ‘1897년에 사립부산유치원이 설립되었으나 일제시대, 일본인 자녀를 위한 것이어서 배제한다‘는 내용이 있다.
1897년은 조선에 대한 일본의 영향력이 강해지는 시기였지만 엄밀히 말하면 일제시대는 아니었다. 당시 조선에는 유치원과 같은 근대식 유아교육은 고려하지도 않던 시기였던 만큼 새로운 교육기관의 출현으로만 본다면 사립부산유치원(私立釜山幼稚園)을 국내 최초로 봐야 할 것이다.
국내 최초로 설립된 사립부산유치원
개항 전, 조선시대에는 일본과의 교역을 위해 ‘초량왜관’이라는 일본인 집단거주지가 만들어졌다.
이곳의 인구가 점점 늘어남에 따라 유아들에 대한 교육의 필요성이 생겨나면서 1897년 3월 3일, 동본원사 부산별원(東本願寺釜山別院) 내에 사립부산유치원(부산부 서정 1정목 6번지)이 설립되었다.
▲ 사립부산유치원 보육증서 수여식(1915.03.20). 절의 경내라서 승려로 보이는 사람이 보인다.
개원 당시에는 20여 명의 유아들이 등록되었으나, 1905년에는 120여 명에 이를 정도로 크게 확장되었다.
▲ 1915년 10월 17일, 사립부산유치원생들이 용두산에서 운동회를 하는 모습
해방 후 이곳은 한국 정부의 재산으로 귀속되었다가 6.25 전쟁으로 전소되었다. 이후 화쟁교원(和爭敎院) 소속의 콘크리트 구조 사찰인 대각사(大覺寺)가 건축되었으며(위치), 현재 사립부산유치원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 사립부산유치원이 있었던 대각사
부산 최초의 공립유치원, 부산공립유치원
온라인에서는 사립부산유치원과 별개의 유치원인 부산공립유치원을 국내 최초의 유치원으로 설명하는 잘못된 자료가 떠돌고 있다.
해당 자료들은 앞서 소개한 ‘사립’부산유치원과 부산공립유치원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며, 부산공립유치원은 이름 그대로 사립부산유치원 개원 18년 후인 1915년 4월에 설립된 부산 최초의 ‘공립’ 유치원이다.
설립 당시에는 부산 서구 토성동3가 부산 공립고등여학교(현 경남중학교)의 옆에 세워졌으며, 1926년에는 등록된 어린이가 110명(남:52명, 여: 58명)에 이를 정도로 커졌다.
▲ 초기 부산공립유치원 건물
이후 중구 동광동에 지금도 남아있는 40계단의 왼쪽에 있던 부산거류민단(釜山居留民團)건물을 잠시 사용하다가, 1934년 1월 16일 용두산 동쪽 기슭의 금평정 7번지(현 동광동 3가)에 새 건물을 지어 이전했다.
▲ 임시로 사용한 부산거류민단 건물(좌)과 준공 직전의 신축건물(1933.12.16)
대지 500평에 이르는 넓은 정원과 110평의 신축건물은 유치원으로서의 기능뿐만 아니라 선거를 위한 투표소와 회의장소로도 유용했는데, 따지고 보면 일제는 이 신축건물을 1945년 해방까지 불과 10년밖에 사용하지 못한 셈이다.
▲ 1934년 1월 16일, 신축된 부산공립유치원
해방이 되자 부산유치원은 경상남도에서 인수하였고, 1946년 7월 1일 부산의 교육자였던 이동희(李東姬, 1917~1977) 여사가 초대 원장으로 취임했다.
이후 1948년에 부산시로 이관되었고, 1961년 민영화되어 사립으로 전환되었다. 아마 이 지점에서 원래의 사립부산유치원과 혼동을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 방치되던 시기의 부산유치원. 건물의 창틀과 담벼락의 모습이 1934년 신축당시의 사진과 일치한다.
1992년 12월 1일 자로 폐쇄되어 방치되던 중 2001년 방영되었던 SBS 드라마 스페셜 ‘피아노’의 촬영 장소가 되기도 했지만 오랜 세월 관리되지 않은 건물은 2007년 붕괴 우려로 철거되었다.
▲ SBS 드라마 ‘피아노’에 등장했던 부산유치원. 100년이 넘은 수령의 나무와 유치원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정글짐이 보인다.
▲ 철거 전 항공사진에서 부산유치원의 지붕이 보인다(붉은 원) ⓒ kakaomap
이후 사찰이나 모텔이 들어선다는 이야기가 돌며 주차장으로 쓰이던 중, 부산시에서 30억에 토지를 매입하여 최신식 건물인 부산영화체험박물관을 건립하였다.
‘영화의 도시‘ 부산에 걸맞은 좋은 취지의 건물이 자리잡게 되었지만, 근대건축물이자 한국 초창기 유아교육의 박물관과 같은 오래된 건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점은 아쉬운 부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