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흑인 미스 이스라엘’ 탄생로 보는 이스라엘 내 인종차별
2009년 4월 20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UN인종차별철폐회의에서 개막 연설자로 나선 이란의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대통령은 이스라엘에 대해 “지구상에서 가장 사악하고 억압적인 인종차별주의 정권”이라고 발언하며 논란을 일으켰다.
이후 수십 명의 서방 외교관들이 이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집단 퇴장하며 회의는 파행으로 치달았다. 물론, 당시 각국 대표 간 회의에서 지나친 발언을 한 이란 대통령의 행동도 문제가 있었지만 이스라엘에 대한 세계인들의 시선이 곱지 못한 것도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이란 대통령
유대인들은 세계 제2차대전에서 큰 인종차별적 피해를 입었기에 동정을 받고 있지만, 스스로는 선민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있어서 타국에서 보기에는 ‘이스라엘과 기타 등등’이라는 이분법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들처럼 느껴지기도 하며,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분리문제 등을 통해 그 우려는 현실로 드러나고 있기도 하다.
또한 팔레스타인 문제를 예외로 놓고 보더라도, 유대인들 간의 인종차별도 실제로 벌어지고 있다.
이스라엘 내의 인종차별
얼핏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달리 의외로 이스라엘은 백인 유대인만으로 이루어진 순혈 국가가 아니라 다양한 인종 구성으로 이루어진 나라이다. 전체 이스라엘 인구 중, 아랍인들은 무려 20%의 수를 차지한다. 히브리어와 아랍어가 공용어인 이유이다.
▲ 이스라엘 인종분포
이들은 투표권도 가지고 있는 엄연한 이스라엘 국민이지만 병역의 의무가 주어지지 않는다. 교육예산도 아랍인 커뮤니티에는 유대인들에 비해 30%만이 책정되며 결국 아랍인들은 교육수준의 미달로 상류층으로의 진출은 요원해질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은 부정하겠지만, 전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자국민에 대한 인종차별이 법제화된 나라라고 볼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같은 유대인들 사이에 존재하는 인종차별이다.
1980년대까지 300만에 불과하던 이스라엘 인구가 2013년 현재, 2배가 훨씬 넘는 759만 명에 달하게 된 것은 이스라엘 정부의 본토 귀환 정책과 브라질 등 남미에서 입양아들을 꾸준히 받아들인 덕분이다.
하지만 흩어졌던 유대인들은 수천 년간 해당 지역에 살면서 혼혈로 말미암아 자연스레 그 지역의 생김새를 가지게 되었다. 이에 이스라엘 정부는 조상 중에 유대계와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으면 불문하고 귀환을 받아주었고 그런 이유로 아프리카계, 슬라브계, 라틴계, 중국계 유대인들이 이스라엘에서 어우러져 살아가게 되었다.
▲ 오랜 떠돌이 생활로 완전히 인종이 달라진 유대인들
표면적으로는 전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을 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다시 모이게 한다는 것을 내세웠지만, 실제로는 중동과 대치상태인 이스라엘의 인구를 하루빨리 늘리고자 하는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귀환자들은 생김새만큼이나 유대교 신앙이 없거나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아서 순혈 유대인들의 입장에서는 이질감을 가지지 않으려야 않을 수 없는 형편이었다.
※ 에티오피아에 있던 유대인들이 귀환한 것은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0년 가까이 나라 없는 서러움을 견디며 에티오피아에서 유대인의 전통을 이어오던 이들은 귀환 당시만 해도 ‘솔로몬 왕의 후손‘이라는 찬사를 들으며 새로 만들어진 조국으로 금의환향하였다.
이스라엘 정부는 아랍과의 전쟁으로 얻어낸 점령지에 에티오피아계 유대인 이주정책, 이른바 1984년의 ‘모세 정책’과 1991년의 ‘솔로몬 정책’을 실시함으로써 현재 12만 5천 명의 에티오피아 유대인 커뮤니티가 생겨났다.
여기에 더해 1996년, 이스라엘 정부가 에티오피아계 이주민들이 헌혈한 혈액 전량을 비밀리에 폐기해 온 사실이 드러나면서 논란이 일어났다.
“혈액을 통한 미지의 질병감염의 위험을 없애려는 것”이라는 군색한 해명을 했지만, 흑인의 피가 많이 섞인 에티오피아의 피는 받지 않겠다는 다분히 인종차별적인 발상이었고, 이주민들은 자신들의 혈액을 ‘더러운 피’로 낙인찍은 조국의 행태에 큰 충격을 받았다.
최초의 흑인 미스 이스라엘 탄생
그런 편견과 차별 속에서 최초의 흑인 미스 이스라엘이 탄생하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2013년 2월 27일, 하이파 국제컨벤션센터에서 시행된 미스 이스라엘 대회에서 에티오피아에서 태어난 21살의 ‘이디쉬 아이너(Yityish Aynaw)’가 우승한 것.
▲ 이디쉬 아이너(Yityish Aynaw)
그녀는 12살 때 다른 에티오피아 유대인들처럼 어머니를 따라 이스라엘의 네타니아(Netanya)로 귀환했다.
이후 이스라엘 방위군(IDF)에 입대하여 장교로 근무하였으며, 제대 후에는 신발가게의 직원으로 일하던 중 미인대회에 참가신청을 하는 친구를 따라 호기심에 접수하게 된 것이 그녀의 경력 전부였다. 이처럼 모델로서의 경험이 전혀 없으면서도 미스 이스라엘로 선발된 것은 놀라운 기적이었다.
▲ 2013 미스 이스라엘(Israel’s Beauty Queen) 등극 순간
※ 미스 이스라엘 대회의 진선미에 해당하는 순위
1위 – Israel’s Beauty Queen (IBQ)
2위 – Israel’s Maiden of Beauty (IMB)
3위 – Israel’s Queen of Grace (IQG)
▲ IMB로 선정된 Bar Hefer(좌), IQG로 선정된 Sabina Yusupova(우)
미국의 타이라 뱅크스처럼 이스라엘의 유명한 TV진행자가 되고 싶다는 이디쉬 역시, 학창시절 수영시간에는 에티오피아계 유대인전용 수영장에 배치되어 교육을 받는 등의 차별을 겪었다고 한다.
우승 후 인터뷰에서는 미국의 인권 운동가 마틴 루터킹을 존경한다며 “이스라엘에 다양한 인종사회가 있다는 것을 전 세계에 보여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에티오피아 커뮤니티에는 미디어에 드러나지 않은 아름다운 이미지가 많다는 것도 알리고 싶습니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공교롭게도 그녀의 이름 Yityish는 마치 운명을 예견한 듯이 ‘미래를 내다보다‘라는 의미이다.
하지만 그녀의 우승에 의구심을 표시하는 사람들도 많다.
우선 모델 경력이 전혀 없는 것과 흑인이라는 부분은 둘 중 하나만으로도 큰 핸디캡인데, 입상도 아니고 우승까지 했다는 점은 정치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우승‘이 아니냐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이스라엘은 1999년에도 최초이자 마지막인 ‘아랍계 미스 이스라엘’ 을 배출한 바 있다.
▲ 1999 미스 이스라엘 ‘라나 라슬란(Rana Raslan)’
당시에도 베냐민 네타냐후(Benjamin Netanyahu) 총리는 “이스라엘 민주주의의 승리” 라며 자찬했지만, 아랍세계와 이스라엘의 일부 저널리스트들은 ‘선거를 앞둔 정치적 움직임’이라는 의심을 하기도 하였다.
이에 이스라엘 정부는 이번 흑인 미스 이스라엘 탄생까지 더해지자 “이스라엘의 인종다양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며 의기양양해하고 있으며, “아랍과 중동지방에 흑인미인이 선발된 예가 있느냐”고 반문하고 있다.
올해 초에는 에티오피아계 여성 최초로 프니나 타마노(Pnina Tamano)가 이스라엘 의원으로 선출되기도 하는 등, 이스라엘은 그간의 인종차별에 대한 불명예스러운 이미지를 단번에 벗어버리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 프니나 타마노(Pnina Tamano)
하지만 이러한 성과들이 단지 보여주기식 이벤트가 아닌 진정한 다인종 커뮤니티에 대한 지원과 편견을 벗어던지는 발걸음이 될 것인지는 앞으로 두고 볼 문제이다.
▲ 2013 미스 이스라엘 결선 출전자들
※ 2013년 9월, 인도네시아의 발리와 자카르타에서 진행되는 미스 월드 2013 대회에서 경쟁할 예정이었던 이스라엘 대표 이디쉬 아이너(Yityish Aynaw)는 결국 참가가 무산되었다.
불참의 이유는 이스라엘과 인도네시아의 국교가 없어 비자 발급이 어려웠기 때문.
이스라엘은 전 세계에 161개국과 외교 관계를 맺고 94개의 대사관을 가지고 있지만, 대부분의 이슬람 국가와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으며 아랍연합 회원국 중에서는 이집트, 요르단과만 정식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아랍연합은 아니지만 역시 이슬람공화국인 이란과도 외교 관계가 없으며,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파키스탄 등 일부 남아시아⋅동남아시아의 이슬람 국가와도 외교 관계가 없다.
미스 월드 참가가 무산된 이디쉬 아이너는 이를 대신해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미스 유니버스 2013에 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