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년만에 완성된 이란 ‘부셰르 원자력 발전소’의 개발과정
‘중동 최초의 원자력발전소’인 부셰르(بوشهر, Bushehr) 원자력 발전소가 첫 삽을 뜬 지 36년 만인 지난 2011년 9월 3일에 역사적인 첫 전력공급을 시작하였다. 이란 ISNA 통신에 따르면, 1000㎿의 발전 용량을 갖춘 부셰르 원전이 3일 오후 11시 29분 60㎿의 전력 공급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부셰르 시는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남서쪽으로 1,200km 떨어진 걸프만 연안에 있으며, 부셰르 원자력 발전소는 부셰르 시로부터 12km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다.
▲ 부셰르 원자력 발전소
부셰르 원전의 구상
이란의 핵 프로젝트는 팔라비 왕조의 결단과 1950년대 미국의 지원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 후 1967년 이란 원자력 기구(AEOI)가 설립되었으며, 본격적인 행보는 1974년 8월에 시작되었다.
이란의 군주 팔라비 2세(1919~1980)는 “석유는 유용하고 귀한 자원이지만 언젠가는 바닥날 것”이라며 여타 중동의 석유 부국들이 돈만 펑펑 써대던 시절에도 백 년 앞을 내다보는 혜안을 발휘하였다. 그는 “가능한 한 빨리 원전을 건설하여 23,000 MW의 전력을 생산하여 내륙도시로 공급할 것”을 주문하며, 미국의 지원으로 2000년까지 23기의 원전을 건설할 원대한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리하여 1975년, 독일 기업 지멘스(SIEMENS)와 미국의 기술지원 하에 원전의 첫 공사가 시작되었고, 지멘스가 원자로 2기를 건설하였다.
▲ 원전 관련 팔라비2세 기사
원전 공사의 첫 번째 난관
1979년 이란에서는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과 좌파세력에 의해 폭동이 일어나 페르시아의 적통 팔라비 왕조가 몰락하고 이슬람 공화국이 들어서게 된다. 팔라비 왕조에 의해 진행 중이던 모든 개혁과 교육, 여권 신장 및 문화 장려정책 등이 일체 중단되었고 당연하게도 원전 프로젝트 또한 중단되었다.
그 후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으로 인해 원전 건설은 기약할 수 없는 프로젝트가 되고 만다.
▲ 이란 부셰르(Bushehr) 해안가
원전 프로젝트의 재가동
그렇게 이슬람 정부가 들어선 후 이란 정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지멘스는 완전히 철수하게 되었고, 1990년대 들어 다시 원전에 관심을 가진 이란 정부는 러시아와 1992년 8월 25일 협약을 체결하였다.
러시아 정부는 오랜 세월 중단된 원전 공사 설계에 대한 파악과 지역 환경 조사, 전쟁으로 인한 피해도 등을 정밀 조사한 후 러시아 ‘로스아톰’ 산하 국영 원전 건설사 ‘아톰스트로이엑스포르트(ASE)’에 의해 1995년 1월 8일 최종 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이후 하청업체 선정 및 계약을 마치고 독일 기술자로부터 인수인계와 러시아와의 연료공급계약 등 순조로운 진행을 하던 중, 이란의 핵개발을 저지하는 미국의 압박에 다시 한번 난관을 겪게 된다.
원전 공사의 두 번째 난관
1. 기술, 환경적인 요인
건설기간의 공백으로 인해 발생한 제원의 유지 문제와 재정적 곤란, 독일에서 러시아로 기술진이 변경되면서 남아 있는 독일 부품 및 설계를 러시아 프로젝트로 통합 구성 이관에 관련된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전쟁으로 인한 격납고의 손실과 독일 장비 및 부품의 설명서 분실로 인해 많은 시간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부셰르 지역의 매우 덥고 습한 기후(50℃에 달한다)와 개방된 해안에서의 염분에 의한 부식은 실로 건축기술에의 도전이라 할만한 조건이었다.
기술진들에 따르면, 심지어 스테인리스도 녹이 슬 수 있는 환경이어서 특수 도료를 개발하여 적용하였다고 전해진다.
2. 인접국의 동요, 미 행정부와 이스라엘의 압력
미 정부는 오랜 기간 동안 이란 핵개발을 문제 삼아 꾸준한 압박을 가해왔으나, 결국 미 국무부 다비 할러데이 부대변인은 “부셰르 원전이 민간 전력공급을 위해 설계된 것으로 알고 있다”며 “(핵무기) 확산의 위험으로 보지는 않는다”라고 밝혔다.
반면 이스라엘 외무부는 즉각 이란의 원전 가동을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 “국제사회는 이란이 국제사회의 결정을 따르고 우라늄 농축 및 중수로 원자로 활동을 중단하도록 압박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다량의 핵무기를 보유하고 NTP에조차 가입하지 않은 이스라엘은 자신들에게 위협적이라 간주한 시설은 UN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파괴하기로 유명한 국가. 그런데 이제 이란 핵개발 문제에 대해서는 되려 UN에 호소하는 아전인수격으로 대응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다.
※1968년 이란은 핵 비확산 조약을 체결하고 1970년 IAEA에 의해 비준받았다. 이 조약의 당사자로서 이란은 평화적 목적을 위한 원자력 기술개발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
여기에 더해 쿠웨이트 대학 지질환경학 교수인 자셈 알-아와디와 정치과학부 학과장인 압둘라 샤이지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예로 들며 지진대에 위치한 부셰르 지역의 사고위험을 우려하고 있다.
특히 “쿠웨이트, 카타르, 바레인, UAE 등은 페르시아만의 바닷물을 담수화해서 사용 중인데 사고 시 그 여파를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주장이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이란은 대부분의 지역이 지진대에 있어 어느 곳에 원전을 건설해도 위험하다는 결론이 도출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냉각을 위한 해수의 조달을 위해 해안가를 선택하는 것은 매우 기본적인 입지 조건의 하나이다.
▲ 부셰르 원전 가는길
부셰르는 거리상 내륙으로 전력을 공급하기 위한 최적의 위치이며 이란 해군기지가 유지되고 있어 혹시나 모를 이스라엘의 공습에도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곳이다. 만에 하나 부셰르 원전의 누출 사고가 발생한다면 그 원인은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인한 것이 유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셰르는 국제공항을 보유하고 있어 문제발생 시 각국 전문가들의 초빙이 용이하고, 양방향 고속도로가 각 도시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전략적인 요지이다. 만약 인접국이 요구하는대로 해안가의 다른 도시로 원전의 위치를 옮긴다면 사고 시의 대책 수립은 요원할 것이다. 물론 부셰르 원전에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은 기술적으로 매우 낮다.
▲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거론하는 자셈 알-아와디 교수
또한 원전에 대해서는 비전문가라 할 수 있는 지질학자를 내세워 ‘비등수로형’인 일본의 사고원전과 ‘가압 경수로형’ 원전인 부셰르 원전을 비교하는 것은 비논리적이다.
※부셰르 원전은 가압 경수로형 원전이다.
2011년 일본에서 일어난 후쿠시마 원전 사태를 통해 보면, 가압경수로형은 지진에 있어 안전하다고 볼 수 있다.
일본 원전 총 55기 중 23기는 1세대 원전인 싸구려 비등수로형이고 도쿄전력이 대부분 보유하고 있다. 무려 40년 이상의 연식을 가진 노후된 것들로 폐기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리한 사용으로 강진과 쓰나미에 의한 전력공급 차단으로 방사능 누출이 일어난 것이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일본의 원전 사고는 지진으로 인한 폭발이 아닌 ‘전력의 차단‘이 주요 원인이었다.
심지어 사고 원전보다 더 지진에 근접한, 센다이에 있는 2기의 가압 경수로형 원전은 아무런 피해는 물론 이상 징후조차 없었다. (한국의 모든 원전 역시 2세대 원전인 가압경수로형이거나 가압 중수로형으로 핵잠수함, 항공모함 등에서 사용되는 디자인이기도 하다)
안정성의 차이를 간단히 설명하자면, 가압 경수로형 원전의 격납용기는 비등수로형에 비해 거대하며 가압기, 냉각펌프, 증기발생기, 원자로 등이 모두 격납용기 안에 포함되어 있어 혹시 모를 사고 발생 시에도 격납용기 내부에 폐쇄시킬 수가 있다. 또한 사용 시에도 모든 방사성 물질이 격납용기 내부에서 처리되므로 일본의 비등수로형과는 비교할 수 없이 안전하다.
각종 방해공작
최근 발생한 이란 핵과학자의 암살사건 외에도 부셰르 원전 건설에 참여한 러시아의 핵 과학자 5명과 관련된 의문스러운 비행기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러시아 과학자들
2011년 6월에는 이란 나탄즈에 있는 우라늄 농축공장의 전원이 이유 없이 꺼지고 중단되는 등의 사태가 벌어지고, 8월에는 부셰르 원전의 가동이 중단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조사 결과 원인은 컴퓨터 바이러스인 ‘스턱스넷(stuxnet)‘의 감염에 의한 것으로 나왔다. 세계적 보안업체인 시만텍의 관계자는 “스턱스넷은 일개 개인 해커의 소행이 아니며 국가나 거대 조직의 지원을 받는 단체의 소행”이라고 추정했다.
▲ 스턱스넷 웜 관련보도, 세르게이 올라센(우)
이 바이러스를 최초 발견한 벨라루스의 보안업체 ‘바이러스블록아다’ 의 연구원 세르게이 올라센(Sergey Ulasen)에 따르면, “단순한 바이러스가 아닌 원격제어용 소프트웨어를 지배하여 원하는 명령을 내리는 무기”라고 전해졌다.
그는 1개월 이상 개발자를 역추적한 끝에 혐의자는 이스라엘의 정보기관인 모사드인 것으로 잠정 결론을 내렸다.
▲ 이스라엘의 언행을 비꼬는 카툰(좌), 타미르 파르도 모사드 국장(우)
원전의 완성
2008년 1월 20일, 러시아 선적에 의해 핵연료가 공급되기 시작하였으며 2009년 3월 러시아 원자력기구 의장 세르게이 키리옌코는 원전의 건설 완료를 발표하였다. 2010년 3월 푸틴 러시아 총리는 볼고돈스크에서 열린 원자력 산업에 관한 회의에 참석해 원전의 가동을 발표하였다.
이에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과 가진 공동 기자회견에서 “이란은 민간 핵에너지를 개발할 권리가 있지만 평화적 목적인지 확인할 때까지 시기상조”라고 지적했다.
그러나 라브로프 장관은 “부셰르 발전소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아들여 국제적 의무를 준수하고 있다”며 강행 의지를 분명히 했다.
▲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 외무장관
2010년 8월 21일, 알리 아크라브 살레히 이란 원자력기구(AEOI) 대표는 “서방의 제재와 압박에도 우리는 평화적인 이란 핵 활동을 상징하는 원전의 서막을 맞이하게 됐다”라고 발표했다. 착공한 지 무려 35년 만에 이란 정부와 러시아 원자력공사, IAEA (국제 원자력 기구)의 인사들이 대거 참여한 가운데 연료봉 주입식이 열렸다.
2011년 5월 8일 지속적인 핵반응을 달성하고 원전은 최종 시운전 시험을 마쳤다. 2011년 9월 3일 부셰르 원전은 이란 남부 지역에 전력을 공급하기 시작하였다. 2012년, 2013년 동일한 용량의 부셰르 2호기와 3호기가 추가로 건설에 돌입할 예정이다.
평화적인 이용과 안정성
부셰르 원전의 운영은 현재 러시아 전문가에 의해 감독 운영되고 있다.
핵연료 공급 역시 러시아가 맡고 있고, 사용 후 핵연료는 완전히 수거하여 핵무기로의 전환을 원천 차단할 방침. 세르게이 리아브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은 “IAEA의 모든 규정을 준수할 것”이라며 “부셰르 원전이 오직 평화적인 목적으로만 사용될 것이라고 100% 보장할 수 있다”라고 장담했다.
원전의 의의
이란 부셰르 원전은 오랜 건설기간으로 인한 인플레이션의 극복, 기술자의 교체와 물리적인 환경의 극복, 정치적인 문제 등의 난관을 뚫고 탄생한 중동 최초의 원전으로 존재 자체만으로도 큰 의의가 있다. 부셰르 원전은 20년 후면 이란 전력량의 20%에 이르는 전력을 생산할 예정이다.
세계 3위의 석유 매장량을 가지고 2번째의 천연가스 매장량을 가진 자원 부국임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의 나태함을 유발하여 국가경쟁력을 낮추는 화석연료에의 의존도를 줄이고 국가 미래의 근간을 마련하고 더 효율적인 에너지원을 개발하고자 노력했던 팔라비 2세의 유산이며 보물인 것이다.
2005년 헨리 키신저(Henry Alfred Kissinger)는 “샤(팔라비 2세)가 살아 있었다면 부셰르 원전의 평화적 사용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을 것”이라고 회상하기도 하였다. 오랫동안 미국 외교의 실세이기도 했던 키신저마저도 팔라비 2세의 현명한 판단을 인정한 것이다.
▲ 부셰르 원전 구조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이슬람 원리주의 정부 하에서 이란은 국가 전분야에서 아쉽게도 많은 퇴보와 정체가 발생하였다. 인류 최고의 물질적 정신적 문화적 유산인 페르시아의 정통성을 스스로 부정한 대가를 치러 왔던 것이다. 이는 이란 일국의 손실이 아닌 전인류의 크나큰 손실이 되어 왔다.
그러나 이번 부셰르 원전의 가동이 현 정부가 페르시아의 유산과 팔라비 왕조의 현명함을 받들어 일시적으로 어긋난 궤도를 수정하는 역사적인 첫걸음으로 훗날 기억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