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유럽 가정의 잠자리 ‘상자침대(Box-bed)’
위 사진은 중세부터 빅토리아 시대까지 영국을 비롯한 서유럽의 가정에 자리하고 있었던 장롱형 침대인 ‘상자침대(Box-bed)의 모습이다. 이 침대는 말 그대로 목재 장롱과 같은 형태였고, 4개의 공간으로 나누어 최대 4쌍의 성인 부부를 수용할 수 있었다.
이런 상자 침대는 출현 당시에는 영국의 시골 가정에서 필수적인 가구로 인기를 끌며 서서히 상류층으로 유행하기 시작했다.
▲ 첫 번째 사진과는 달리 장식이 없는 밋밋한 서민용 상자침대
흔히 현대를 가리켜 ‘사람이 쉽게 잠을 이룰 수 없는 시대‘라고 칭하지만 사실 중세는 더 했다.
추위는 당연했고 야생동물의 습격도 종종 있었으며, 사생활 보호는 어려운 것을 넘어 불가능했다. 특히 그 무엇보다도 ‘수면의 적’이었던 것은 다양한 소음이었다.
당시의 가옥들은 원하지 않는 소리를 막아줄 구조가 전혀 아니었기 때문에 가축의 울음소리를 비롯해 지나가는 행인들의 발걸음, 시간을 가리지 않는 고성방가 등에 완전히 노출되어 있었다.
▲ 상자침대는 과거 유럽인들의 숙면을 보장해주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바로 장롱 같은 곳에 들어가 수면을 취하는 것이었다. 이런 상자침대는 혹독한 겨울의 추위를 막아주고 연료비도 절약되었으며, 끊임없이 들려오는 소음으로부터도 해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유행은 금방 귀족들에게 퍼져 나갔다.
이런 잠자리에 익숙한 하녀나 시종들은 상주하는 귀족들의 저택에서도 침실에 상자침대를 사용했는데, 천정고가 매우 높았던 중세의 성이나 저택에서 높은 형태의 침대는 모양은 물론 기능면에서도 매우 뛰어난 가구였기에 화려하고 값비싼 장식을 더해 귀족들도 애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 하녀들의 침실에 배치된 상자침대
하지만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점차 건물구조가 개선되고 난방의 효율성이 올라가고 외부로부터의 방음도 해결되면서 상자침대는 점차 사라졌다.
사실 매일 청소하기 힘든 상자침대는 위생상으로도 불결했고 제작비용도 비싸졌다. 또한 구멍이 나있긴 했지만 폐쇄적인 구조로 인해 수면 중 호흡기에도 좋지 않았기에 건물과 생활환경의 단점이 개선되자 굳이 궤짝과도 같은 공간에 들어가서 잘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