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을 속인 사진 (4)
자본주의의 산물은 지워라
1971년 9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서독의 총리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는 소련 공산당 서기장인 레오니트 브레즈네프(Leonid Brezhnev, 1906~1982)와 만나 회담을 가졌다.
두 정상의 회담장은 서로 격의 없이 술이 오가고 담배도 피는 편한 분위기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 회담 사진이 서독의 신문에는 원본(위)이 그대로 실린 반면, 소련의 신문에서는 위스키 병이 삭제되었다.
▲ 사라진 위스키 병들
소련의 인민들은 배급을 받아 먹고사는 와중에, 국가가 적대시하는 서방 정치인과 서기장이 고급술판을 벌이는 것이 보기 안 좋을 거라고 판단한 것이었다.
얼굴 따로 몸 따로
미국의 주간지 TV 가이드(TV Guide)는 1989년 8월 호 표지인물로 토크쇼 진행자 오프라 윈프리(Oprah Winfrey)의 사진을 사용하였다.
그런데 얼굴만 오프라 윈프리였을 뿐, 몸은 가수 겸 영화배우로 유명한 앤 마그렛(Ann-Margret)이 1979년에 촬영한 사진의 몸을 사용한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 앤 마그렛의 화보
앤 마그렛의 드레스를 제작한 패션디자이너 밥 맥키(Bob Mackie)는 자신이 만든 작품을 한눈에 알아보았고, TV 가이드 측에 확인 결과 실제로 두 사람의 얼굴과 몸을 붙인 것으로 드러났다.
이것은 앤 마그렛이나 오프라 윈프리의 사전 허락이 없었던 TV 가이드의 일방적인 제작이었다.
▲ 앤 마그렛의 사진을 좌우반전한 다음, 채도를 낮추고 오프라 윈프리의 얼굴을 합성하였다.
사실 이런 식으로 얼굴과 몸을 합성하는 경우는 흔하게 이루어지는 방식이다.
가정생활 관련서적 출판에서 시작해 억만장자의 대열에 오른 기업인이자 ‘가정 살림의 최고 권위자’로 통하는 마사 스튜어트(Martha Stewart)는 과거 주가조작으로 교도소에서 복역했던 일이 있다.
그런데 교도소에서 출소한 후 감량을 했다는 뉴스위크지의 표지에 등장한 날씬한 모습은 마사의 몸이 아닌 다른 모델의 몸이었다. 9개월 전 행사에 참가한 마사 스튜어트의 사진에서 얼굴만 떼어내서 모델의 몸과 합성한 것이었다.
▲ 마사 스튜어트의 합성사진(좌), 얼굴만 사용한 원본 사진(우)
아군은 무조건 선이다
1899년 12월 21일에 첫 발행된 러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잡지 ‘오고니오크(Огонёк / Ogoniok)’는 제2차 세계 대전의 종전을 알리며 독일 의회 건물 꼭대기에 소련 국기를 게양하는 군인의 모습을 실었다.
하지만 편집장의 명령으로 사진 속 군인의 오른쪽 손목에서 시계가 제거되었다. 이것은 시계가 아니라 군용나침반일 가능성도 있었지만, 대중들은 시계로 판단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 손목에서 제거된 시계
편집장은 ‘정의로운‘ 붉은 군대가 점령지인 독일에서 ‘약탈을 일삼고 있다‘는 의심을 살 여지를 아예 없애버리는 방법을 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