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을 속인 사진 (20)
1929년의 성교육 수업
아래의 사진은 대학교의 강의실처럼 보이는 곳에서 야릇한 미소를 짓거나 놀란 토끼눈이 된 여성들이 앉아있는 모습을 담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1929년의 성교육 수업‘이라는 그럴듯한 제목이 달려 돌아다니는 사진이다.
하지만 찬찬히 보면 여학생들이 일반인들이라기엔 상당한 미모를 갖추고 있다. 옷차림, 화장, 헤어스타일도 지나치게 치장했고, 경제 대공황이 덮쳤던 1929년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사실 이 사진은 영화 ‘와일드 파티(The Wild Party, 1929)’의 스틸 사진에 엉터리 제목을 단 것으로 드러났다.
▲ 해당 장면은 34초 경에 나온다.
앞줄 가운데에 있는 여성은 무성영화 시대의 스타 클라라 보우(Clara Bow, 1905~1965)이며, 이 영화는 그녀의 첫 번째 유성영화로 흥행에 성공했다. 덕분에 많은 무성영화 스타들이 시대가 전환되면서 인기가 사그라진 것과는 달리 클라라 보우는 경력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 주연배우 프레드릭 마치(Fredric March)와 클라라 보우(Clara Bow)
오일쇼크와 미국의 고속도로 피크닉
1973년, 중동전쟁(욤키푸르 전쟁)이 발발하자 아랍 산유국들은 석유 무기화 정책을 펼치기 시작했다. 아래 사진은 당시 석유의 공급이 부족해지자 차량 사용이 급감하면서 미국인들이 비어버린 고속도로에서 피크닉을 하는 장면으로 설명되었다.
물론 오일쇼크는 자동차 운전자들을 심하게 당황시켰고, 미국인들은 휘발유를 사기 위해 주유소에 긴 줄을 서야 했다.
하지만 사진과 같이 고속도로가 단 한대의 차량도 없이 비어버릴 정도는 아니었다. 오일쇼크가 모든 산업을 완전히 마비시켰을 거라는 섣부른 오해가 이 사진에 대한 잘못된 설명이 쉽게 믿어진 이유이다.
▲ 가까이에서 본 고속도로 피크닉
심지어 사진이 찍힌 곳도 미국이 아닌 네덜란드의 고속도로이다.
당시 고속도로가 비워진 이유는, 네덜란드 정부가 석유 절약을 위한 국가 행사로 1973년 11월 4일 일요일을 ‘차 없는 일요일(Car-Free Sundays)’로 정했기 때문이었다.
▲ ‘차 없는 일요일(Car-Free Sundays)’을 소개한 신문기사
중동전쟁에서 네덜란드는 이스라엘을 지지했다. 그러자 아랍연합이 주축이 된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서방국가에 수출을 금지하면서 원유 가격은 4배나 뛰어올랐고, 급기야 1974년 1월 7일부터 네덜란드는 각 가정을 대상으로 석유 배급제를 실시해야 했다.
그에 앞서 1973년 11월 4일부터 1974년 1월 6일까지 일요일에는 전국의 자가용 운행(800만 대)을 완전히 금지시키는 정책을 펼친 것이었다. (토요일부터 일요일 새벽 3시까지는 허용)
– 관련 글: 1973년, 네덜란드 고속도로에 등장한 마차
네덜란드의 ‘차 없는 일요일’ 행사는 1973년이 처음은 아니었다. 과거 경제적으로 힘들었던 1939년, 1949년, 1956년에도 ‘차 없는 일요일’을 잠시 시행했지만 과거와 달리 1973년의 위기는 네덜란드인들의 사고방식을 완전히 전환시켰다.
▲ 자전거를 탄 남자가 비어있는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다.
사람들의 머릿속에 차가 없어도 자전거나 다른 운송수단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 자리 잡으면서, 오일쇼크와 그에 대항한 ‘차 없는 일요일’ 정책은 오늘날 네덜란드를 자전거 천국으로 이끈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