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61] 향심(香心, 기생)
본래 대구 태생으로 경성에 올라와 홍창근(洪昌根)의 기생으로 향심의 이름이 널리 떨치기를 수년이라.
동글갸름한 얼굴에 가무스름한 눈초리는 애교가 가득하고 나이는 18세로되 가슴속에는 노파가 들어앉아있는 듯.
깊은 밤과 이른 아침에 홀로 이불 안에 몸을 싸고 가만히 누워있을 때는 자연히 장래의 신세에 대한 생각을 떨치지 못하여 더러 단잠도 자지 못하며, 아픈 몸을 편안히 보살피지도 못하고 풍우한서를 물론 하고 주야로 고생하는 것은 모두 남의 심바람을 하면서 지내는 것을 견디지 못함이라.
한번 가고 다시 못 오는 것은 청춘의 시절이니, 이렇듯 평생을 지내면 나중에는 어찌 되나 하는 생각이 향심의 가슴에는 떠날 때가 없었더라.
▲ 향심 / 안경남(安鏡南)
그러므로 홍창근의 그물을 벗어나서 본년 1월 1일부터는 다동 기생 조합 기생으로 다시 나오니 전일에 잘하던 가야금, 양금과 제반 가곡도 한층 더 힘들여 연구함으로 모두가 향심의 견확한 마음과 출중한 재주를 가상히 여기지 아니하는 사람이 없다.
지금은 발리 점동(鉢里店洞) 고요한 골목 안에 안경남(安鏡南)이라 하는 대구 기생 시대에 쓰던 이름을 흰 조희(종이)에 써서 붙였으나 문전도 한가하고 오는 손님도 따기는 제일이라더군.
【매일신보 1914.04.18】
– 가무스름: 빛깔이 조금 감은색(석탄의 빛깔과 같이 다소 밝고 짙은 색)
– 풍우한서(風雨寒暑): 바람과 비와 추위와 더위를 아울러 이르는 말
– 심바람: ‘심부름’의 방언
– 다동 기생 조합(茶洞妓生組合): 기둥서방(妓夫)이 없는 무부 기조 합의 다른 명칭
– 제반(諸般): 어떤 것과 관련된 모든 것
– 견확(堅確): 견고하고 확실함
– 발리 점동(鉢里店洞): 종로에서 놋그릇을 팔던 가게(발리점)에서 유래된 이름으로 ‘바리전’을 한자를 빌려서 쓴 말
– 조희: ‘종이’의 방언
– 따기는: 찾아온 사람을 핑계를 대고 만나지 않는 것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