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84] 금주(錦珠)
금주는 평양 기생이라.
7~8년 전에 경성으로 올라왔는데, 어려서부터 서화(書畵)를 좋아하여 무상한 취미를 가지고 붓만 보면 그림과 글씨를 장난하더니, 점점 자라나매 한숙한 필법은 과연 기생계에 영화명필이라 일컬으리로다.
금년은 20여 세라.
소리도 잘할 줄 알건마는 아는체하는 법이 없고, 그림을 잘 그려도 그리는체하지 아니하여 가위 불구문달어제후(不求聞達於諸侯)하는 기생이라.
아는 사람은 알고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금주는 이름을 나타내이고자 하지도 아니하고 안심낙도 하는 기생이로다.
▲ 김금주(金錦珠, 1894~?)
얼굴은 풍후하고, 심지도 아름답고, 행동도 얌전하여 장자의 풍도가 있는 듯하다.
재작년 무부기조합 창시할시에 발기인의 한 사람이 되어 사업을 일으키고 요사이는 그 조합을 확장하기에 열심이라 하던가.
기생화가(妓生畵家)로 경성 내에서 이름이 있던 산월, 금주 두 사람이었으나 산월이는 근일에 천우교목(遷于喬木)하고 금주는 한쌍 짝을 잃어 작별하는 눈물을 아끼지 아니하리로다.
【매일신보, 1914년 5월 15일】
– 무상(無想): 일체 상념(想念)이 없는 마음의 상태로 집중하는 것을 의미한다.
– 한숙 嫺熟): 단련되어 익숙함
– 영화명필(英華名筆): 아름답고 뛰어난 글씨를 쓰기로 이름난 사람
– 불구문달어제후(不求聞達於諸侯): 제갈공명의 출사표에 나오는 문장.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기를 바라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쓰인다.
– 안심낙도(安心樂道): 편안한 마음으로 도리를 지키며 살아감
– 풍후(豊厚): 얼굴이 살쪄서 두툼함
– 심지(心地): 마음의 본바탕. 천성
– 장자(長者): 덕망이 뛰어나고 경험이 많은 어른
– 풍도(風度): 풍채와 태도
– 무부기조합(無夫妓組合): 정해진 기둥서방이 없는 기생들의 단체
– 근일(近日): 최근, 요즈음
– 천우교목(遷于喬木): ‘높은 나무로 옮겨간다’는 뜻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르는 것으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결혼을 해서 기생계를 떠난다는 의미. 산월이라는 이름은 흔하지만 경성에서 기생화가로 유명했던 것은 주산월(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2])이다. 주산월은 1914년 손병희의 첩이 되면서 주옥경(1894~1982)으로 개명했다.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기생화가 김능해(金凌海)로 활동한 금주
이후 금주는 서화 기량을 갈고닦아 「김능해(金凌海)」라는 이름의 기생화가로 활동했다. 매일신보 1922년 5월 24일자에는 제 1회 조선미술 전람회에 작품을 출품한 금주의 기사가 실렸다.
▲ 국화 난초를 그리는 김능해(금주)
– 김능해(金凌海)의 국란(菊蘭): 지금 대정권번 기생으로 있는 금주의 독특한 그림
총독부에서 조선 미술의 발전을 장려하기 위하여 이번에 제1회 미술전람회를 개최하매, 각처의 미술대가들은 각각 자기의 능활한 수완을 발휘하고자 열심히 출품하는데 부내 수송동 서화연구회에서는 해강(海岡) 김규진(金圭鎭)씨를 위시하여 수십 명의 서화 대가들이 출품 준비에 분망한 중이라 함은 이미 본지에 보도한 바어니와 그중에 김능해(金凌海)란 여자가 이번에 출품하기 위하여 국란 두 가지를 그리고 있는 것은 서화계에 아름다운 이채를 더한다 하겠는 바이다.
▲ 금주 김능해<묵란>, 연도미상
이 여자는 본시 평양 출생으로 지금 부내 대정권번의 기생으로 금주(錦珠)란 기명을 가지고 화류계에 한 사람이 되어 있으면서 거금(距今, 지금으로부터) 6년 전부터 김규진 씨에게 서화를 배우는 바 사군자와 송학, 노안 등을 잘 그리며 그밖에 글씨가 유명하여 이전 조선공진회와 기타 각 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번번이 포상을 받았으며, 또 가무의 능란함은 물론이고 거문고와 양금에 선수임으로 월전에 특별히 선택되어 평화박람회에 출연하였던 일도 있더라.
【매일신보, 1922년 5월 24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