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단일백인(藝壇一百人) [99] 진홍(眞紅, 기생)
경성 남부 새방골 31통 4호 정기준의 기생 진홍(眞紅)이는 방년이 열일곱 살이라.
본래에 진주 출생으로 네 살 되었을 때 부친을 잃고 다만 자모의 따뜻한 애정 가운데에서 세월을 보내다가,
여덟 살에 진주보통학교에 입학하여 장근 여덟 달을 공부한 후 국한문의 모를 글자가 없게 되었으나, 그 발신이 뜻과 같지 못하여 열한 살에 진주 기생서재에 들어가서 총민한 지혜와 이미 품었던 기능으로 전후 가무음곡을 무불통지로 배웠더라.
▲ 진홍(眞紅)
열다섯 살에 서울에 올라와서 광교기생조합에 입적하니,
어글어글하고 숭글숭글한 자태형용은 여러 사람의 환심을 모으고, 매양 말할 때마다 진주방언으로서 보기 좋게 웃어가며 정녕 친절히 인사를 예로써 차리어감은 오늘날 진홍의 천품이라.
진주 육자배기와 양금, 가야금, 가사, 노래 등의 능란함은 제일 장기라 할만하고 천성이 온순단정하여 별로 사심이 없음은 기생 중에 첫째로 치는 평판이 현저하다.
그러나 일찍이 부친을 여읜 까닭으로 주야 한 되는 설움은 어느 날 사라질 날이 없으며, 화용월태의 근심빛이 은은히 비치어 있는 날은 더욱이 비단 위에 꽃을 더함과 같아 그 색채가 일층(한층) 아리땁도다.
“기생이 아흔 여덟째 예단에 출두하여 인사를 여쭈오니 더욱 사랑하여주셔요. 장래 소원은 물론이올시다.”
【매일신보 1914.06.10】
– 새방골: 기생과 첩들의 집(새방)이 많아 유래한 이름으로 현재 종로구 신문로 1가동.
– 자모(慈母): 어머니를 여읜 뒤 자신을 길러 준 계모.
– 진주보통학교: 현재의 진주초등학교로 1895년 9월 경상우도소학교로 개교하여 1906년 9월 1일 공립진주보통학교로 개칭하였으며 이는 한국 최초의 남녀공학이다. 1911년 11월 1일에는 진주공립보통학교로 개칭하였다.
– 장근(將近): 거의.
– 발신(發身): 가난한 처지를 벗어남.
– 기생서재(妓生書齋): 기생학교를 칭하는 말
– 총민(聰敏): 총명하고 민첩함.
– 전후(前後): 앞과 뒤 ‘모든’
– 무불통지(無不通知): 모든 일에 환히 통하여 모르는 것이 없음.
– 어글어글: 널찍널찍하여 시원스러운 생김새.
– 숭글숭글: 까다롭지 않고 수더분하며 원만한 성격.
– 자태형용(姿態形容): 여성의 고운 맵시와 태도.
– 천품(天稟): 타고난 기품.
– 육자배기(六字배기): 남도 지방에서 부르는 잡가(雜歌)의 하나.
– 현저하다(顯著하다): 소문이나 평가가 두드러지게 드러남.
– 화용월태(花容月態): 꽃다운 얼굴과 달 같은 자태. 미인의 얼굴과 맵시를 이르는 말.
– 아흔 여덟째 예단: 98번째 예단일백인에 출연했다는 의미. ’99편’을 잘못 말한 것인데, 사실 전체 시리즈 중 76, 77, 78편을 건너뛰었기에 정확히는 아흔 여섯째이다.
– 물론(勿論): 대수롭지 않아서 말할 필요도 없다는 뜻.
■ 매일신보에서는 100명의 예술인을 대상으로 기사를 연재했는데, 이 기사의 제목을 「예단일백인(藝檀一百人)」이라 하였다.
– 참고문헌:
• 每日申報. 藝壇一百人(九九).진홍 (1914.06.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