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 서독에서 동독으로 풍선전단을 날려보내는 모습
한국에서도 대북전단을 풍선을 통해 보내는 문제는 이 행위를 주도하는 탈북민과 현지거주민, 좌-우파단체 간의 갈등으로 늘 이슈가 되고 있다. 이는 과거 동서 진영으로 갈라진 유럽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아래 사진은 1950년대에 자유유럽방송(Radio Free Europe/Radio Liberty, 약칭 RFE/RL)이 주도하여 서독에서 공산권이었던 동독(DDR)을 비롯해 폴란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으로 ‘대동(東)전단‘을 풍선으로 날리는 모습이다.
▲ 최초의 풍선은 1951년 8월 13일에 발사되었으며, 이 작전은 ‘자유의 바람(Winds of Freedom)’으로 명명되었다.
이 풍선작전을 주도한 자유유럽방송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지원으로 유럽에서 운영된 곳이다. 냉전시대에 ‘철의 장막‘으로 가로 막힌 공산권을 향해 자유민주주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방송으로, 본사는 서독(FRG)의 뮌헨(Munich)에 있었다.
▲ 베를린 북부 프로나우(Fronau)의 풍선 발사장
동구권으로 향하는 풍선에는 자유유럽방송의 편성표뿐만 아니라, 공산권 국가에서 차단된 정보와 보도하지 않는 사건을 알리는 메시지도 포함되어 있었다.
▲ 풍선에 실렸던 크리스마스카드와 부활절카드
당연히 풍선작전은 한국의 대북전단을 북한이 반대하는 것처럼 동구권의 거센 항의를 받았다. 풍선을 격추하기 위해 전투기가 출격하기도 했지만 여의치 않았고, 결국 ‘지역의 민간항공기에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라는 이유로 UN에 외교적인 해결을 촉구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1958년에는 풍선작전이 모두 중단되었다. 이 기간 동안 자유유럽언론은 3억 장이 넘는 전단을 50만 개의 풍선에 실어 날려보냈다.
▲ 1951년, 자유유럽방송(RFE/RL) 직원들이 체코슬로바키아로 전단을 운반할 풍선을 준비하고 있다.
▲ 풍선과 함께 실을 물건들을 정리하는 자유유럽방송(RFE/RL) 직원들.
▲ 수소로 풍선을 채우는 모습.
▲ 준비가 완료된 수소 풍선전단.
▲ 풍선에 담는 물건들과 발사하는 모습(우). 많은 물건을 담기 위해 어떤 풍선의 크기는 18m에 달했다.
▲ 드라이아이스가 녹으면 박스가 열리는 풍선. 드라이아이스의 무게를 이용해 원하는 위치에서 전단을 살포할 수 있었다.
▲ 드라이아이스 무게를 측정하는 작업자.
▲ 풍향을 잘못 계산해 시골 지역에 떨어진 풍선 잔해.
▲ 1954년 7월, 풍선을 날리기 직전의 모습. 다양한 종류의 풍선이 사용되었다.
▲ 풍선에 실린 전단. ‘딸이 진실을 모른 채 자라도록 두지 말라’고 설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