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4년, 프랑스 샤모니(Chamonix)에서 열린 ‘제1회 동계올림픽’
제1회 프랑스 샤모니 동계올림픽(Jeux olympiques d’hiver Chamonix 1924)은 1924년 1월 25일부터 2월 4일까지 개최되었다. 이 대회는 하계 올림픽과 별도로 개최된 최초의 동계올림픽이었으며, 16개국에서 258명의 선수들이 6개 종목에 참가했다.
프랑스 샤모니(Chamonix)는 몽블랑 산맥의 기슭에 위치한 인구 3천여 명 남짓의 조용한 마을이지만 관광의 계절에는 엄청나게 붐비는 곳이었다. 동계올림픽 기간 중에도 샤모니의 거리와 경기장은 환영과 응원의 분위기로 가득했다. 대회 결과는 노르웨이가 가장 많은 메달(금 4, 은 7, 동 6)을 획득하였으며, 이듬해 IOC는 4년마다 동계올림픽을 개최하기로 결정하였다.
▲ 제1회 동계올림픽 공식 포스터. 5000부가 제작되었으며, 프랑스의 화가 오귀스트 마티스(Auguste Matisse, 1866~1931)의 작품이었다.
▲ 제1회 동계올림픽 금메달. 프랑스의 조각가 라울 베나르(Raoul Benard, 1881~1961)의 작품이다.
▲ 샤모니에 도착한 미국 대표팀이 경기장 입장을 대기하고 있다.
▲ 프랑스 대표팀의 기수
▲ 개막식이 열리는 연단의 모습
▲ 올림픽 스타디움 전경
▲ 유고슬라비아 대표팀의 두샨 치나쟈(Dušan Zinaja, 1893~1948)가 개막식 기수로 참가하고 있다.
▲ 각국 대표팀의 기수들이 개막에 앞서 한자리에 모여서 선서를 하고 있다.
▲ 프랑스 대표 선수들이 손을 들어 올림픽 선서에 참여하고 있다.
▲ 경기장의 눈을 치우고 있는 진행요원들
▲ 미국 스피드스케이딩 대표팀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연습을 하고 있는 스피드스케이팅 미국 대표 찰스 주트로(Charles Jewtraw, 1900~1996). 1924년 1월 26일에 열린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500m 결승에서 우승을 해서 역사상 첫 동계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했다. 기록은 44.0초. 현재 500m 세계기록은 러시아의 파벨 쿨리즈니코프(Pavel Kulizhnikov)가 2018-2019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에서 세운 33.61초이다.
▲ 캐다나 아이스하키팀은 예선에서 스위스, 체코, 영국, 스웨덴을 상대로 110득점 / 3실점이라는 가공할 실력을 뽐냈다.
▲ 아이스하키에서 은메달을 따낸 미국 대표팀. 유일하게 캐나다를 한 자릿수 득점으로 묶은 팀이었다.(1-6 패배)
▲ 캐나다 아이스하키 대표팀은 초기 7번의 올림픽에서 1936년 동계올림픽(은메달)을 제외하고 6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현재 한국 양궁 이상의 압도적인 실력을 뽐내던 시기였다.
▲ 미국의 스키점프 선수 앤더스 하우겐(Anders Haugen, 1888~1984)의 점프 모습. 그는 4위로 아쉽게 동메달을 놓쳤지만, 50년후 점수계산에서 오류가 발견되어 순위가 3위로 조정되었다. 이에 따라 원래 동메달 수상자였던 노르웨이 대표 톨레이프 헤우(Thorleif Haug, 1894~1934)의 딸은 하우겐에게 아버지의 유품인 메달을 전달했다.
▲ 스키점프 금메달을 획득한 노르웨이 대표 야코브 툴린 탐스(Jacob Tullin Thams, 1898~1954)의 경기 모습
▲ 여자 피겨스케이팅 종목 선수들. 좌측부터 금메달을 획득한 오스트리아 대표 헤르마 사보(Herma Szabo, 1902~1986), 동메달을 획득한 영국 대표 에설 머켈트(Ethel Muckelt), 은메달을 획득한 미국 대표 베아트릭스 로우란(Beatrix Loughran, 1900~1975)이다. 원래 피겨스케이팅은 하계올림픽 종목이었으나 이 대회부터 동계올림픽에서 열리게 되었다.
▲ 노르웨이의 소냐 헤니(Sonja Henie, 1912~1969)가 11세라는 어린 나이로 피겨스케이팅 경기에 출전하고 있다. 이 대회에서 그녀는 꼴찌를 기록했지만 큰 화제가 되었으며, 이후 3회의 올림픽을 3연패하는 슈퍼스타가 되었다.
▲ 프랑스 피겨스케이팅 페어 종목의 앙드레 졸리(Andrée Joly, 1903~1993)와 피에르 브뤼네(Pierre Brunet, 1902~1991)가 연기를 펼치고 있다. 두 선수는 동메달을 획득하였고 1929년에 결혼했다. 이후 1928년과 1932년 동계올림픽에서 연이어 금메달을 획득하며 당대 최강의 페어로 군림했다.
▲ 컬링 경기를 펼치는 영국 대표팀의 윌리엄 잭슨(William Jackson, 1871~1955)의 모습. 첫 대회였던 만큼 기록이 정확히 되지 않아 오랫동안 시범종목으로 열린 것으로 여겨졌으나, 유족들의 소송에 따라 2006년에 IOC는 당시 정식종목으로 컬링경기가 열렸음을 인정했고 참가팀에게 메달을 수여했다.
▲ 금메달을 획득한 영국 컬링 대표팀의 경기 모습. 스위스가 대회 직전에 기권함에 따라 영국, 스웨덴, 프랑스가 라운드로빈(Round robin) 방식으로 경기를 벌였고 메달을 나눠가졌다.
▲ 은메달을 차지한 스웨덴 컬링 대표팀
▲ 이탈리아 봅슬레이 대표팀이 결승점에 들어오고 있다. 1924년 동계올림픽의 봅슬레이 종목은 남자 4인승 종목 뿐이었고, 금메달은 스위스 1번 팀이 차지했다.
▲ 은메달을 획득한 봅슬레이 영국 2번 팀이 코너를 돌고 있다.
▲ 프랑스 대표팀이 사용한 봅슬레이 장비. 2개 팀이 참가한 프랑스는 메달 획득에 실패했다.
▲ 핀란드의 스피드스케이팅 선수 클라스 툰베리(Clas Thunberg, 1893~1973)의 모습. 이 대회 스피드스케이팅에는 총 5개의 부문(500m-1500m-5000m-10000m-종합)에 메달이 걸렸는데, 그는 1500m와 5000m에서 금메달을 획득했고 500m(동메달)와 10000m(은메달)에서도 메달을 획득하며 종합(전 종목 합산) 금메달을 수여받았다. 1928년 동계올림픽에서도 클라스 툰베리는 2개의 금메달을 추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