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국기와 깃발들 ②
신성로마제국 쌍두수리(1400~1806)
중세 서유럽에서 교황이 지배하는 ‘신성한 로마교회‘에 대한 수호의 임무는 황제에게 주어졌다. 이런 황제가 지배하는 초민족적 영역을 ‘신성로마제국(Sacrum Romanum Imperium)’이라고 칭했다.
962년 오토 1세가 신성 로마 황제의 자리에 오른 후 12세기 급성장하며 현대의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 프랑스 동부, 벨기에, 네덜란드, 폴란드 서부, 체코. 이탈리아에 이르는 광대한 영토를 소유했다. 하지만 중세시대 말기에 이르러 제후들의 힘이 강력해지면서 황제는 명목상의 지위에 머무르게 된다.
위의 깃발은 15세기 후반 합스부르크 대공 프레드리히 3세가 선출되고 합스부르크 왕가가 신성 로마 제국 황제를 겸임한 이후로 합스부르크 가문을 상징하는 쌍두수리로 국가 문양이 되었다. 이후 1806년 8월 6일 프란츠 2세가 제국의 해체를 선언할 때까지 사용되었다.
베네치아 공화국(7세기 후반~1797)
정식 명칭은 ‘가장 고귀한 베네치아 공화국(Serenìsima Repùblica de Vèneta)’으로, 7세기 후반부터 나폴레옹의 정복으로 마감할 때까지 천년 이상 지속된 당시의 해양강국 중 하나이다.
▲ 베니스 영화제 트로피
현재 이 깃발의 상징인 날개 달린 사자는 여전히 베네치아의 상징으로 남아 베니스 국제영화제의 휘장과 트로피에도 사용되고 있다.
비잔티움 제국(395~1453)
동로마 제국(Eastern Roman Empire), 비잔틴 제국(Byzantine Empire)으로도 불리는 비잔티움 제국은 중세 로마로부터 연속된 왕국이었다.
당시의 수도는 현재 이스탄불로 알려져 있는 콘스탄티노플. 천년 간 제국은 무수한 전쟁과 영토 손실에도 강력한 힘을 잃지 않았지만 12세기 이후 쇠퇴기에 들어가 1453년 오스만 제국에 멸망하고 말았다. 이후 이스탄불은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 번영하였으며 현재 터키 최대의 도시로 발전을 하였다.
제3의 로마(1453~1917)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이 이슬람 세력에게 함락되자 동방정교회는 그간 세계교회의 대통합이라는 과제에서 이제는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 급선무가 되었다.
러시아 정교회를 구심점으로 만들고 대주교구로 격상시킨데이어 비잔티움 제국의 멸망 이후 분리된 러시아는 ‘제3의 로마(Third Rome)’로 표현되었고, 모스크바의 귀족들은 모스크바가 콘스탄티노플을 잇는 곳이기 때문에 러시아의 차르가 황제의 후계자라고 주장하였다.
이후 러시아의 차르 표토르(1584~1598)는 모스크바 관구 대주교를 총대주교로 격상시켰고, 이에 많은 그리스인들이 격렬한 반대를 하였지만 1593년에는 동방의 4인의 총대주교(콘스탄티노플,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들은 콘스탄티노플에서 총대주교를 승인하였다. 위의 깃발과 국장은 당시 제3의 로마로 지칭한 러시아 제국이 1917년의 러시아 혁명까지 사용하였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1867~1918)
유럽 최고의 명문가인 합스부르크 왕가는 15세기 이후의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왕조였다.
프랑스를 제외하면 유럽에서 합스부르크 가문과 연결되지 않은 가문은 없었으며, 특히 오스트리아의 왕실은 600년을 지배당했다. 당시 오스트리아 제국의 영토는 오늘날의 오스트리아, 헝가리, 슬로바키아, 체코, 폴란드의 일부, 루마니아, 이탈리아,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 세르비아, 몬테네그로를 포함하였다.
하지만 오스트리아 제국은 프로이센과의 대항에서 패해 독일 통일의 지도권을 빼앗기고 독일제국의 세력권 밖으로 밀려나게 된다. 이후 1867년 헝가리와 손을 잡고 새로운 제국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Österreich-Ungarn Monarchie)’을 만들지만 1차 세계대전에서의 패배와 함께 사라지게 되었다. 더불어 1918년 카를 1세가 퇴위하며 합스부르크 가문 역시 왕가로써는 끝을 고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