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국기와 깃발들 ④
이란, 팔라비 왕조 최후의 국기(1964~1980)
이란의 옛 이름은 페르시아였으나 팔라비 왕조(Pahlavi dynasty)가 들어서고 10년 후인 1935년, 이란 제국(Imperial State of Iran)으로 명칭을 변경하였다. 하지만 팔라비 왕조(1925~1979)는 이란 최후의 왕조가 되고 말았다.
▲ 현재 이란 국기
국왕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Mohammad Reza Pahlavi, 1919~1980)가 추진했던 ‘백색 혁명(White Revolution)’으로 불리는 급진적인 개방화 정책은 아직 종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란 종교인들과 국민들의 반발을 샀으며, 결국 1979년 이슬람혁명(Islamic Revolution)에 의해 무너졌다. 이후 이란 이슬람 공화국(Islamic Republic of Iran)이 수립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브라질 제국(1822~1889)
브라질 제국(Império do Brasil)의 탄생은 포르투갈로부터 기인하였다.
유럽의 정복자 나폴레옹은 포르투갈을 점령했고, 당시 포르투갈의 왕족이었던 브라간사 왕가(Casa de Bragança)와 주앙 6세(João VI de Portugal, 1767~1826)는 식민지로 거느리고 있던 브라질로 망명한다.
브라질로 망명한 주앙 6세는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브 연합왕국(United Kingdom of Portugal, Brazil and the Algraves)을 수립하고 지내던 중 나폴레옹이 축출되자 귀국하였다.
▲ 포르투갈 제국(좌), 포르투갈-브라질-알가르브 왕국연합 국기(우)
주앙 6세는 아들 페드루 1세(Pedro I, 1798~1834)를 브라질의 총독으로 남겨두지만 브라질 지배층이 권력에 탐을 낸 그를 부추겨 브라질 제국을 탄생시키게 된다.
이후 브라질 제국 2대 황제 페드루 2세(Pedro II, 1825~1891)는 1888년 포르투갈의 식민지 시절로부터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던 노예들을 전면 해방시켰다. 문제는 과도기 없이 갑작스러운 폐지에 불만을 품은 지배층들의 반발이 너무나 컸던 것. 결국 왕실은 유럽으로 망명했고, 1889년 제국은 문을 닫았다.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1919년 4월 6일~5월 3일)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Bayerische Räterepublik), 또는 뮌헨 평의회 공화국(Münchner Räterepublik)으로도 알려져 있는 공산주의 국가의 심플한 국기이다.
바이에른 평의회 공화국은 제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이 혼란스러운 시절에 바이에른 자유주(Freistaat Bayern)에 수립되었다. 그들은 이곳을 해방구로 삼아 독립을 꾀하였으나 1919년 5월 3일 바이마르 공화국(Weimarer Republik)의 진압으로 대부분 처형되면서 한 달 남짓 짧게 존재한 국기가 되었다.
헬베티아 공화국(1798~1803)
1798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éon Bonaparte, 1769~1821)는 스위스에 침공해 연맹을 해체하고 헬베티아 공화국(Helvetische Republiek)을 수립하였다.
헬베티아 공화국은 모든 봉건적 특권의 폐지, 신앙, 언어, 영업, 통상의 자유 등이 선포된 반면에 화폐가 하나로 통일되고 교육의 의무를 지게 하면서 각 주의 독립성은 상실되고 중앙집권제 국가가 되었다.
▲ 헬베티아 공화국 지도
그러자 각지에서 저항이 속출하였고 겨우 4년여의 기간 동안 6번이나 헌법이 개정되는 등 정정은 혼미를 거듭하게 된다.
결국 나폴레옹은 1803년 파리에 각 주 대표를 모아 놓고 신헌법을 작성하였다. 구 13주에 6개 주를 더한 19개 주를 가지고 연방제를 실시하며 각 주의 주권을 인정하였고, 이로써 1798년의 체제로 원상 복귀하며 헬베티아 공화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