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국기와 깃발들 ⑥
에티오피아, 하일레셀라시에 1세 시대(1930~1974)
▲ 국기의 앞면(좌), 뒷면(우)
에티오피아 제국 솔로몬 왕조 제64대 황제 하일레 셀라시에 1세(Haile Selassie I)는 1930년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하고 국제연맹에 가입하여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등, 조국의 근대화를 추진한 강력한 지도자였다. 하지만 1974년 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로 권좌에서 물러났으며 가택연금 상태에서 몇 달 후 살해당한다.
공식적으로는 ‘수술 후 합병증으로 사망했다’고 발표되었지만, 훗날 황제의 심복에 따르면 전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까지 전혀 이상이 없었으며 황제의 주치의도 수술 후 경과는 좋았다고 보고하였다. 의심스럽게도 당시 방에서는 이상한 화학약품의 냄새가 났다는 증언도 있다.
▲ 하일레 셀라시에 1세(Haile Selassie, 1892~1975)
황제의 유골은 훗날 소련의 붕괴에 이어 에티오피아의 공산주의가 무너진 1992년에 궁전 경내의 콘크리트 바닥 밑에서 발견된다. (또 다른 증언은 그의 유해가 화장실 아래에서 발견되었다고 쓰여있기도 하다)
이후 10여 년간 황실의 무덤에 안장되었다가 2000년 11월에 에티오피아 정교회에 의해 성대한 장례식과 함께 수도 아디스아바바의 삼위일체 대성당(Holy Trinity Cathedral)에 안치되었다.
▲ 삼위일체 대성당에 안치된 황제의 관
한편 하일레셀라시에 1세는 대한민국과도 인연이 깊다. 6.25전쟁 당시 에티오피아는 황실 근위대 ‘칵뉴 대대(Kagnew Battalions)’ 1,300명을 선두로 1956년 3월까지 연인원 6,037명을 파병해 121명이 전사하는 등의 도움을 주었다.
1951년에는 황제가 친히 전쟁 중인 한반도에 방문해 자국의 병사들을 격려하기도 하였으며, 1968년에는 다시 한번 방한하여 한국 정부로부터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 6.25전쟁 당시(좌) 1968년 방한 당시(우)
이처럼 1950년대에 일인당 국민소득 3천 달러의 부유한 국력으로 한국을 돕기도 했던 에티오피아는 그의 사후 십수 년 만에 국민소득 300달러에 불과한 후진국으로 전락하였고, 한국전 참전용사와 가족들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국가의 반역자가 되어 코리안 빌리지(Korean Village)라는 이름의 빈민가로 쫓겨나는 등 고초를 겪었다.
로디지아 공화국(1965~1979)
짐바브웨(Zimbabwe)가 생기기 이전, 영국령 식민지였던 남로디지아(Southern Rhodesia)가 1965년 독립을 선언하며 ‘로디지아 공화국(Republic of Rhodesia)’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한 국기이다. 이후 흑백갈등으로 인해 1979년 잠깐 영국령 식민지 상태로 복귀하였다가 1980년 4월 ‘짐바브웨’라는 이름으로 독립하였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아프리카 국가 중의 하나는 짐바브웨라고 할 수 있다. 한때 뉴스를 장악했던 엄청난 초인플레이션(hyper-inflation)과 그에 따른 생활고로 시사프로그램과 뉴스의 단골이었기 때문.
위의 100조 달러는 역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고액지폐로 지금은 화폐개혁으로 볼 수 없게 되었지만, 과거 짐바브웨 초인플레이션을 상징하는 유물이 되었다.
청나라 황룡기(1862~1912)
위의 국기는 일반적으로 대청국(大淸國)의 ‘황룡기(黄龙旗)’라고 불리는데, 노란색은 예로부터 중국 황실을 상징하는 색깔이며 황족들만이 입을 수 있는 색깔이었다. 용은 제국의 힘을 상징하는 존재이며, 다섯 개의 발톱을 가진용은 황제를 의미한다.
삼각형 버전은 1862년부터 1889년까지 사용되었으며, 사각형 버전은 1889년부터 사용되다가 1912년 2월 12일에 최후의 황제 선통제(宣統帝) 푸이가 퇴위하며 청나라와 함께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