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대주택에서 고급주택으로의 변신, 코펜하겐의 ‘캐토흘라이커니(Kartoffelrækkerne)’
‘캐토흘라이커니(Kartoffelrækkerne)’는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쾨벤하운)에 지어진 임대주택 지역으로, 인근에 있었던 브루마이스터&바인 조선소(Burmeister & Wain Shipyard)의 노동자들을 위해 1872~1889년 사이에 지어졌다.
공식적인 이름은 ‘파리막스가데(Farimagsgade)’지만 덴마크인들이 이곳을 ‘캐토흘라이커니(Kartoffelrækkerne, 감자 거리)’라고 부르는 것은 빈틈없이 빽빽하게 직선으로 들어찬 집들이 마치 감자들이 밭에서 줄지어 심어져 있는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 지역이 사유지가 되기 전에는 실제로 감자밭이었던 것도 명칭의 어원이 되었다고 한다.
▲ 캐토흘라이커니
1800년대 초반, 코펜하겐의 하류층이 살던 곳은 하수도나 식수원이 없었고, 거리에는 쓰레기와 쥐가 들끓어 사망률은 매우 높았다. 이런 환경에서 전염병의 위험은 늘 도사리고 있었고, 결국 1853년에 콜레라가 창궐하였다.
콜레라로 인해 코펜하겐 인구의 3%가 사망하자 드디어 부유층들도 위협을 느끼게 되었고, 결국 당국은 대책을 세워야 했다. 이에 따라 1870년대에 노동자주택협회는 문제해결을 위해 저렴하고 위생적인 임대주택을 건설했다.
▲ 빈틈없이 붙어있는 집들의 모습
건설 당시에는 도심에서 워낙 동떨어진 곳에 있어서 가난한 노조원 외의 시민들에게는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가치로 한화 15,000원 정도의 아주 저렴한 보증금 때문에 노조원들에게는 인기가 폭발하면서 추첨을 통해 입주자가 선정될 정도였다고 한다.
▲ 캐토흘라이커니 거리 모습
이처럼 산적한 문제를 타개할 임대주택으로 출발했지만 19세기에 산업화가 빨라지고 도시로 인구집중이 시작되면서 500여 개의 건물로 확장된 캐토흘라이커니가 탄생했다. 게다가 도시가 점점 커지면서 캐토흘라이커니는 얼떨결에 도심에 위치하게 되었다.(코펜하겐 중앙역에서 2.6km 정도 떨어져 있다)
▲ 코펜하겐 중앙역과 캐토흘라이커니 간의 거리
오늘날 캐토흘라이커니는 중심가에 위치해있으면서도 강변을 끼고 있는 다채로운 환경과 치안도 좋은 것은 물론, 원래 2~3개 가구가 함께 사용하기 위해 3층 구조로 만들어져서 내부는 널찍하고 주택 간의 거리는 매우 가까워 이웃과의 유대감과 상호작용도 원활하다. 이 때문에 연예인과 정치인을 비롯한 유명인들이 많이 거주하게 되면서 덴마크의 부동산 침체에도 불구하고 코펜하겐에서 가장 비싸지만 인기 있는 지역 중 하나가 되었다.
마치 미운 오리 새끼가 백조로 변신한 것처럼 2세기에 걸친 ‘존버’를 통해 저렴한 임대주택에서 고급주택으로 신분상승을 이룬 셈이다.
▲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동네’중 하나로 손꼽히는 현재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