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98) 19세기, 독일 정신병원의 집중치료 모습
정신질환은 서구사회에서 빅토리아 시대(1837~1901)까지 종교적인 의미로 해석되어 ‘더러운 악령에게 사로잡힌 것‘으로 여겨졌다. (이는 아시아나 아프리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 이유로 독일 정신병원의 집중치료실을 촬영한 위의 사진과 같이, 최소 19세기 후반에서 최대 20세기 초까지도 정신질환자들은 고문에 가까운 치료를 받아야 했다.
정신질환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은 중세시대부터 수백 년간 거의 진전이 없었고, 결국 병을 앓는 환자는 남녀노소 사슬에 묶여 치료라는 이름의 고문을 당했다.
▲ 1882년, 뉴욕 정신병원에서 사용된 구속 침대
이것은 ‘열악하고 힘든 환경을 만들면 악령이 버티다 못해 숙주를 떠나갈 것‘이라는 억지스러운 논리에서 비롯되었다. 하지만 쉽게 예상할 수 있듯이, 악령이 떠나기는커녕 많은 환자들이 학대로 인한 쇼크나 방치에 가깝게 격리되면서 굶주림이나 전염병으로 사망했다.
▲ 성 베네딕토가 수도사를 때려 악령을 쫓아내는 모습 【by Spinello Aretino】
과거의 정신병원은 마치 공포영화 속에 등장하는 상상의 끔찍한 장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모습이었으며, 이곳에서의 치료법은 엑소시스트(The Exorcist, 1973)와 같은 영화를 만드는 기반이 되었다.
▲ 1869년, 영국 요크셔의 정신병원 【사진: Henry Clarke】
19세기에 들어서고 종교적 영향력이 점차 줄어들면서 이러한 치료법은 사라지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도대체 정신질환자들을 감옥에 가두고 학대하는 치료법을 반대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는 시대가 되었으며, 인권이 개선되고 의학의 발전으로 오늘날 정신병원의 모습은 다른 환자를 다루는 병원과 다를 바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