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1년, 신미양요 광성보 전투에서 포로가 된 조선인 군인들
1871년 6월 2일, 미군이 강화 초지진(草芝鎭)을 공격하면서 발발한 신미양요(辛未洋擾)의 광성보 전투에서 수백 명의 조선군이 전사하고 수십 명이 포로로 붙잡혔다.
사진은 6월 11일, 포로들을 돌려받기 위한 협상을 위해 기함 콜로라도 함(USS Colorado)을 찾아온 관리들이 포로로 잡힌 군인들과 함께 한 모습으로, 당시 미군의 사진기자로 채용되었던 펠리체 베아토(Felice Beato, 1832~1909)가 촬영하였다.
미군은 통상을 요구하며 주둔했으나, 조선의 쇄국 정책으로 협상을 하지 못하고 철수했다. 신미양요 이후 조선은 척화비를 세우고 쇄국정책을 강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