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112) 1921년, 경주 대덕산에서 잡힌 한반도의 마지막 호랑이

당시 나무를 하던 마을청년 김유근(金有根)이 호랑이의 습격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탈출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호랑이 사냥팀이 조직되어 총 6명의 포수와 70여 명의 몰이꾼이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그중 26세의 이위우(李渭雨)라는 포수가 2발의 총알로 호랑이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하면서 일대에 퍼졌던 호환(虎患) 공포는 잦아들었다.  1

1921년 9월, 경상북도 경주시 근교의 대덕산(大德山)에서 잡힌 호랑이의 시체 옆에서 한 남자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의 뒷면에는『대정십년 구월 포호기념(大正十年九月捕虎記念)』이라는 글씨가 기재되어 있어서 촬영시기를 명확히 알려주고 있다.

 

당시 나무를 하던 마을청년 김유근(金有根)이 호랑이의 습격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탈출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호랑이 사냥팀이 조직되어 총 6명의 포수와 70여 명의 몰이꾼이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그중 26세의 이위우(李渭雨)라는 포수가 2발의 총알로 호랑이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하면서 일대에 퍼졌던 호환(虎患) 공포는 잦아들었다. 

 

호랑이 시체와 기념사진을 찍은 남성은 당시 출동했던 또 다른 포수 이복우(李福雨)로, 이 사진은 그의 아들 이상걸(李相杰)이 소장하고 있다가 공개한 것이다.

 

당시 나무를 하던 마을청년 김유근(金有根)이 호랑이의 습격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탈출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호랑이 사냥팀이 조직되어 총 6명의 포수와 70여 명의 몰이꾼이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그중 26세의 이위우(李渭雨)라는 포수가 2발의 총알로 호랑이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하면서 일대에 퍼졌던 호환(虎患) 공포는 잦아들었다.  3
▲ 과거 대덕산은 호랑이가 많이 서식하기로 유명했다. 위 한성주보는 ‘1886년 5월 20일에 14세의 소녀가 나물을 캐다가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사고’를 전하고 있다.


‘대덕산 호랑이’의 시체는 
일본인 동물학자 구로다 나가미치(黒田長礼, 1889~1978)가  가져가서 면밀히 실측했는데, 몸길이 186cm, 꼬리길이 87cm, 귀 길이 9cm의 수컷이었다. 이후 모피는 일본 황족에게 진상되었다는 소문이 떠돌았다.


이처럼 사진 증거까지 남아있기 때문에,
대덕산 호랑이는
한반도 최후의 야생 호랑이로 인정받고 있다. 이후에 잡힌 호랑이들은 공인된 목격이나 사진자료 없이 말만으로 잡았다는 허풍이거나 표범을 오해한 사례가 대부분이다.

당시 나무를 하던 마을청년 김유근(金有根)이 호랑이의 습격을 받고 구사일생으로 탈출하는 사건이 있었다. 이 소식을 듣고 호랑이 사냥팀이 조직되어 총 6명의 포수와 70여 명의 몰이꾼이 작전에 투입되었으며, 그중 26세의 이위우(李渭雨)라는 포수가 2발의 총알로 호랑이를 쓰러뜨리는데 성공하면서 일대에 퍼졌던 호환(虎患) 공포는 잦아들었다.  5
▲ 국립백두대간수목원의 호랑이 ‘한(수컷)’. 이곳은 국내 최대의 호랑이 사육장으로 6마리의 백두산 호랑이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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