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외화, ‘천사들의 합창(Carrusel)’ 이야기
1989년, KBS 2TV를 통해 방송된 ‘천사들의 합창(Carrusel)’은 한국에서 방영된 어린이 외화 사상 가장 오랫동안 회자되고 있는 작품 중 하나이다.
돌이켜보면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이면서도 인종차별, 빈부격차, 종교 문제 등의 주제를 놓고 묵직한 돌직구를 던져대던 모습 때문에 은연 중에 강렬하게 기억 속에 자리잡은 것일 지도 모르겠다.
‘천사들의 합창’ 원작
‘천사들의 합창’에 대한 추억담을 보면 대부분 ‘역시 원작이 제일 재미있다‘, ‘속편은 재미가 없더라‘ 같은 내용을 접할 수 있다.
하지만 사실 한국 시청자들이 본 ‘천사들의 합창’은 소설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바로 아르헨티나의 작가이자 프로듀서인 아벨 산타 크루즈(Abel Santa Cruz, 1915~1995)의 ‘하신타 피치마우이다(Jacinta Pichimahuida)’라는 작품이다.
▲ 한국에서도 ‘천사들의 합창’으로 발간된 원작소설
그런데 이 소설을 써낸 계기가 된 작품이 있는데, 아벨 산타 크루즈가 대본을 맡아 아르헨티나에서 방영된 드라마 ‘잊을 수 없는 선생님, 하신타 피치마우이다(Jacinta Pichimahuida, la maestra que no se olvida, 1966)’였다.
1966년 작
▲ 당시 20세의 ‘에반젤리나 살라사르(Evangelina Salazar)’가 선생님 역을 맡았다.
드라마가 큰 인기를 끌자 주인공 ‘하신타 피치마우이다’는 비록 가상의 캐릭터이지만 아르헨티나인들 사이에서는 아름답고 헌신적인 선생님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아벨 산타 크루즈는 하신타 피치마우이다 선생님을 주인공으로 한 새로운 소설을 집필하게 된다.
이 소설이 바로 위에 말한 작품 ‘하신타 피치마우이다(Jacinta Pichimahuida)’로, 이렇게 우리에게 익숙한 ‘천사들의 합창’이 탄생하게 되었다.
1974년 작
▲ 선생님 역을 맡은 ‘마리아 데 로스 앙헬레스 메드라노(María de los Ángeles Medrano)’
1974년, ‘잊을 수 없는 선생님, 하신타 피치마우이다(Jacinta Pichimahuida, la maestra que no se olvida)’가 새롭게 리메이크 되었다. 제목은 1966년과 같았지만, 바로 이 작품부터가 새롭게 쓰여진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된 것이었다.
1982년 작
8년의 세월이 흘러 새롭게 제작된 작품. 전작들이 1년간 방송된 것과는 달리 1982년부터 1985년까지 방영되며 큰 인기를 끈 시리즈였다.
제목도 ‘처녀 선생님(Señorita maestra)’으로 각색되었으며, 전작의 선생님들이 20세 정도였던 것에 비해 당시 31세의 크리스티나 르메르시에(Cristina Lemercier)가 선생님 역을 맡아서인지 더욱 교사로서의 카리스마와 포용력이 뛰어났던 시리즈로 평가받고 있으며 적어도 아르헨티나에서는 역대 작품 중 가장 낫다고 평가받고 있다.
어쨌든 이 작품이 큰 인기를 얻은 덕분에 멕시코 버전의 ‘천사들의 합창’이 제작될 수 있었다.
1989년 작
1989년, 멕시코의 텔레비사(TELEVISA) 방송국이 원작의 판권을 구입, 각색하여 제작에 들어갔다.
그 뒤는 알다시피 ‘천사들의 합창’은 공전의 대히트를 쳤고, 지구 반대편 한국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등장인물
남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천사들의 합창’은 여러 국가에 수출되었지만 방영권을 구입한 국가 중 한국은 유일한 아시아 국가였다. 워낙 인기가 있었던 탓에 ‘천사들의 합창 – 배우들의 근황’과 같은 글과 영상은 쉽게 검색해서 볼 수 있기 때문에 주요 배역 몇 명과 많이 다루어지지 않은 내용에 대해서만 정리해 보았다.
1. 히메나 선생님(Ximena Fernández) | 배우 : 가브리엘라 리베로(Gabriela Rivero)
원작의 ‘하신타 피치마우이다’ 선생님은 멕시코 드라마 버전에서는 ‘히메나 페르난데스(Ximena Fernández)’라는 현지에 맞는 이름으로 각색되었고, 모델이자 댄서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해 배우의 길에 들어선 ‘가브리엘라 리베로(Gabriela Rivero, 1964년생)’가 적임자로 캐스팅되었다.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온라인에는 그녀가 ‘미스 멕시코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퍼져있기도 하다. 하지만 1970년도부터 2000년도까지의 역대 미스 멕시코 명단에서 ‘가브리엘라 리베로’라는 이름은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이는 누군가 지어낸 이야기로 추정된다. 어쩌면 군소 미인대회나 미스 멕시코 지역예선 참가경력이 와전된 것일 수도 있지만 인터뷰나 약력에서 그런 언급은 없다.
가브리엘라 리베로는 ‘천사들의 합창’에 출연하기 전에 이미 ‘비밀의 길(El camino secreto, 1986)’이라는 작품으로 멕시코 TV의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전도유망한 배우였는데, ‘천사들의 합창’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중남미권을 아우르는 글로벌스타로 떠올랐다.
현재는 세 딸의 어머니로 연기 활동은 계속하고 있지만,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미국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 역대 선생님 역을 맡은 배우들
2. 시릴로(Cirilo) | 배우: 페드로 하비에르 비베로스(Pedro Javier Viveros)
인종차별과 빈부격차 등의 사회의 편견을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로, 작품 속의 모든 문제들이 농축된 흑인소년이다.
시릴로는 가난해서 친구들에게서 조롱을 받기 일쑤였지만 그에 대한 대응은 답답하리만큼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었는데, 사실 인종차별을 당하는 가난한 흑인소년의 그런 태도는 지금 보면 지극히 자연스럽고 현실적인 모습이었다. 한국의 성장기 아동 드라마는 ‘가난하지만 진취적인’, ‘어려운 환경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주인공의 모습을 그려내는데 반해, 시릴로는 처음부터 끝까지 우울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캐릭터였다.
하지만 늘 당하기만 하는 현실적인 흑인소년 캐릭터는 오히려 인종차별을 심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였다. 실제로 이 드라마를 보고 나면 흑인 학생은 ‘불쌍하고 가난하며 능력도 없는데 주제도 모르고 백인 여자아이를 좋아한다’라는 이미지가 더 강하게 뇌리에 남는 부분도 분명히 있는 것이 사실이었다.
▲ 역대 시릴로 배우들
어쨌든 시릴로의 운명은 드라마의 말미에서 극적으로 바뀌고 해피엔딩을 맞게 되는데, 아버지가 거액의 복권에 당첨되어 꿈도 못 꾸던 포르쉐 911 미니 자동차를 구입하기까지 하는 것이다.
당시에는 불쌍한 시릴로가 행복해져서 많은 시청자들이 기뻐했지만, 돌이켜보면 얼마나 멕시코 흑인 빈민들의 현실이 답이 없으면 일확천금으로 가난탈출을 시키는 시나리오를 쓸 수밖에 없었을까라는 씁쓸한 생각도 드는 결말이다.
만약 이 드라마가 한국 드라마였다면 아버지가 좋은 직장을 구하거나 혹은 시릴로가 음악이나 운동에 재능을 발견해서 학교의 영웅이 된다거나 하는 희망을 주는 스토리로 만들었을 수도 있겠지만 멕시코 작가는 ‘그런 확률보다는 복권 당첨될 확률이 훨씬 높다‘라는 결론에 이른 셈.
그래도 멕시코 드라마는 복권이라도 당첨되는 해피엔딩이었지만, 아르헨티나 원작 소설에서는 그런 해피엔딩조차도 없을 정도로 당시 흑인 빈민의 현실은 참담했다.
▲ 시릴로역을 맡은 배우 ‘페드로 하비에르 비베로스(Pedro Javier Viveros)’는 부모가 에콰도르 이민자 출신으로 1980년대에 멕시코로 이민을 왔다.
3. 마리아 호아키나(María Joaquina Villaseñor) | 배우: 루드비카 팔레타(Ludwika Paleta)
마리아 호아키나는 지독한 인종차별주의자로 설정된 백인 금발소녀 캐릭터이다.
‘다른 애들하고 닿으면 병균이 옮는다‘라는 이유로 하얀 장갑을 끼고 다니는데, 흑인소년 시릴로가 장갑을 주워주니 그대로 버린 에피소드도 있을 정도.
▲ 장갑을 낀 마리아 호아키나
그런데 그녀의 아버지는 유명한 의학박사이며, 의외로 딸과는 반대로 편견도 없는 아주 선한 인물로 설정되어 있다.
그러고 보면 ‘천사들의 합창’은 비현실적이기까지 할 정도로 나쁜 어른이 거의 없다.
이것은 ‘철없는’ 아이들이 가진 문제들을 부각시키고 ‘모범적인’ 어른들을 보여주며 사회의 나쁜 편견을 해소하고자 하는 방식을 사용한 것으로, 당시 남미권의 빈부갈등과 인종차별의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반증이었다.
▲ 역대 마리아 호아키나 배우들
이 시리즈에 출연한 여주인공 금발소녀는 1974년작에 출연한 그라시엘라 시메르(Graciela Cimer, 1963~1989)가 26세로 요절하긴 했지만, 대부분은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다. 특히 ‘천사들의 합창’의 마리아 호아키나역을 맡은 루드비카 팔레타는 데뷔작인 이 드라마로 멕시코의 아이돌로 떠올랐고 지금까지도 슈퍼스타로 유명세를 누리고 있다.
여러 작품 중 유달리 ‘천사들의 합창’이 성공한 이유에는 루드비카 팔레타의 타고난 연기력과 미모도 한몫을 했다. 그녀는 가끔 웃는 연기를 해도 냉기가 흘렀고, 인종차별을 하며 짜증을 내면 시청자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아역답지 않은 명품 연기를 펼쳤다.
▲ 벌레라도 본듯한 짜증 연기와 청순한 눈물 연기
그런데 루드비카 팔레타의 이런 모습은 연기나 가식이 아니라 어쩌면 실제 모습이었을지도 모르겠다.
2010년, 중남미에서 발생한 허리케인 알렉스(Alex)가 멕시코를 덮쳐 큰 피해가 발생했을 때의 일이다.
그녀는 홍수 피해가 발생한 상황에서 트위터(현재 X)를 통해 “몬테레이에 폭우가 오면? 마카로니 수프를 끓이면 되지~“라는 충격적인 농담을 날려 큰 비난을 받았다. 한국으로 치면 유명배우가 강원도 폭설 피해 사진을 보고 “야 솜사탕 같네 맛있겠다!” 라고 한 것과 유사한 상황.
▲ 루드비카 팔레타가 마카로니 수프를 연상한 몬테레이의 홍수
결국 루드비카 팔레타는 “제 발언으로 상심하신 분들께 사과드립니다. 불행한 상황을 생각하지 못하고 바보 같은 농담을 했습니다.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기 위한 농담이었지만 다시 한번 깊이 사과드립니다.”라며 논란이 된 트위터의 글을 삭제했다.
그녀는 20세에 멕시코 배우 플루타르코 아사(Plutarco Haza)와 결혼을 했지만 10년간의 결혼생활을 본인의 불륜 의혹으로 2008년 종지부를 찍었다. 하지만 바람의 끝은 길지 않았고, 2010년 7월에는 불륜의 대상이었던 쿠바 출신의 연하남 알베르토 게레라(Alberto Guerra)와 관계를 끝냈다고 트위터를 통해 알렸다.
▲ 전 남편과 불륜남
이후 2013년 1월 9일에는 멕시코의 정치가 에밀리아노 살리나스(Emiliano Salinas)와 재혼을 발표했다. 다만 에밀리아노 살리나스의 인터뷰에 따르면 2010년 7월부터 같이 파리 여행을 하다가 반지를 주며 결혼을 전제로 사귀기 시작했다고 한다. 즉 연거푸 환승연애를 한 셈인데 아무래도 뒤늦게 남성편력을 시작하며 얼굴값을 하는 모양이다.
▲ 현재까지는 잘 살고 있는 에밀리아노 살리나스와 루드비카 팔레타
그 밖의 이야기들
‘천사들의 합창’은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드라마지만 사회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만들어진 작품인 만큼 당시 남미사회를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성공 요인
‘천사들의 합창’이 원작의 성공을 훌쩍 뛰어넘어 국제적으로 성공한 것은 이미 성공한 작품을 가져온 것이기에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었지만, 과거와는 달리 1980년대 후반에는 각국의 케이블 시청 수요가 남미 각국에 충분히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게다가 히메나 선생님과 페르민 수위 아저씨 역을 맡았던 성인 배우들이 유명한 배우들이었고, 시릴로의 아버지 역을 맡은 조니 라보리엘(Johnny Laboriel)도 유명한 가수였던 점은 어린이 드라마에 윤여정, 김태희, 원빈 등의 초호화 캐스팅을 한 셈이었다.
▲ 시릴로 아버지 역의 조니 라보리엘(Johnny Laboriel, 1942~2013)
또한 히메나 선생님 역을 맡은 가브리엘 리베로의 인터뷰에 따르면, 당시 아역배우들과 TV로 보는 것 이상으로 서로 유대감이 깊었다고 한다.
유명한 일화는 일본인 코기모토역 배우가 이빨이 흔들리자 그녀가 직접 아프지 않게 빼주었는데, 다음날부터 모든 아이들이 흔들리는 젖니를 빼달라고 줄을 서서 엄마처럼 하나하나 일일이 빼준 일이 있었다고 한다.
▲ 코기모토 역의 요시키 타키구치
이후 가브리엘 리베로는 리메이크 작품이 제작될 때면 방송사의 주선으로 ‘히메나 선생님 역’ 배우들과의 만남을 가지곤 했는데 그때마다 “이 역할을 맡은 것이 훗날 자녀를 기르는데 큰 도움이 될 거예요“라고 하는 발언을 통해 얼마나 아역들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촬영에 임했는지 알 수 있다.
동일한 조건의 후속작들이 ‘천사들의 합창’만큼 성공하지 못했던 것을 보면, 배우들의 카메라 밖에서도 연결된 끈끈한 유대감이 가장 큰 성공의 요인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학교에 흑인은 왜 한 명뿐인가
원작이 탄생한 아르헨티나는 인종 구성상 흑인이 거의 없는 국가이기에 ‘유일한 흑인 학생‘이라는 설정이 납득이 가지만, 흑인 및 혼혈이 넘치는 멕시코가 배경인 작품에서 ‘1명뿐인 흑인 학생‘ 이라는 설정은 사실 의아한 부분이다.
▲ 아르헨티나의 인종 구성
그 이유는 ‘천사들의 합창’에 등장하는 학교는 ‘국제학교’로 설정이 되었고, 덕분에 원작의 설정을 무너뜨리지 않으면서 세계 각국의 아이들을 섞어놓을 수 있었던 것이다.
한편, 원작 소설가 아벨 산타 크루즈가 학창 시절을 보냈던 20세기 초반의 아르헨티나에서는 일반학교에서도 이민 온 일본인 학생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고 한다.
2인 1역
‘천사들의 합창’에서는 하나의 배역을 2인이 소화한 역할이 있다. 마리아 호아키나의 어머니 역할을 2명의 배우가 소화했고, 페르민 수위아저씨의 역할을 2명이 맡았다.
마리아의 어머니(Karen Sentíes에서 Kenia Gascón으로 교체)는 거의 비중이 없다시피한 역할이라 원래 배우가 그만두었지만, 페르민 수위아저씨의 경우는 원래 배역을 맡은 아우구스토 베네디코(Augusto Benedico)가 촬영 중 건강이 나빠졌기 때문이었다.
▲ 마리아 호아키나의 어머니 배우 2명과 페르민 수위아저씨 배우 2명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변호사 출신이었던 아우구스토 베네디코는 멕시코로 이민을 와서 40여 년간 연기자로 활동한 원로배우로 ‘천사들의 합창’이 마지막 작품이 되었으며, 대타로 출연한 아만도 칼보(Armando Calvo) 역시 2번의 영화제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대배우였다.
이후 아우구스토 베네디코(Augusto Benedico)는 1992년에 별세하였으며, 아만도 칼보(Armando Calvo)는 1996년에 별세하였다.
하신타의 저주
아르헨티나 원작 작품의 배우들에게는 ‘하신타의 저주‘ 라는 것이 존재한다.
① 1989년 에뗄비나(멕시코 버전의 마리아 호아키나)역을 맡았던 그라시엘라 시메르(Graciela Cimer)가 부모님의 집에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되었다. 당시 그녀는 26세였고 임신 2개월이었으며 성공적인 연기경력을 쌓고 있었기에 죽음은 의문 그 자체였다.
유족들은 그녀가 남편과 불화를 겪고 있었고 추락한 발코니가 사망할 만한 높이가 되지 않는다며 의혹을 주장했지만 결국 자살로 종결되었다.
▲ 그라시엘라 시메르(Graciela Cimer)와 그녀의 묘
② 1996년에는 하신타 선생님 역할을 했던 크리스티나 르메르시에(Cristina Lemercier)가 머리에 총상을 입은 채로 발견되었다.
정치가였던 전 남편과의 이혼으로 우울증이 원인이라는 보도가 있었지만, ‘총상으로 볼 때 2발을 맞은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부검 결과가 나와 타살이라는 논란도 있었다.
▲ 크리스티나 르메르시에(Cristina Lemercier)의 사망 보도
③ 2011년에는 1982년 작의 시릴로 역할을 했던 파비안 로드리게스가 함께 출연한 훌리오 실바와 강도질을 하다가 출동한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훌리오 실바는 총알 여러 발을 맞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으며, 시릴로(파비안 로드리게스)는 체포되어 4년형을 선고받았다.
▲ 1982년작 시릴로 배우
후속작에 출연할 뻔한 가브리엘라 리베로
멕시코 버전에서 히메나 선생님 역을 맡았던 가브리엘라 리베로는 2012년 브라질 SBT가 제작한 ‘천사들의 합창(Carrossel)’에 정확한 역할은 정해지지 않은 상태로 캐스팅 제의를 받았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계약상의 문제로 무산되었으며 따로 초청을 하는 특집을 마련했다.
▲ ‘천사들의 합창’의 ‘히메나 선생님’은 브라질에서는 ‘헬레나 선생님’으로 각색하여 방영했기 때문에 헬레나 선생님으로 알려져 있다.
히메나 선생님은 마야문화 신봉자
여배우 가브리엘라 리베로는 마야문명의 신봉자라 셋째 딸의 이름을 ‘마야(MAYA)’ 라고 지었다. 하지만 마야 달력이 2012년에 끝난다는 종말론이 퍼졌을 때 다른 사람들처럼 대피까지는 하지 않았다고 한다.
세 딸의 이름은 각각 갈라(Gala), 라라(Lara), 마야(Maya)이다.
▲ 가브리엘라 리베로와 딸들
하이메가 남우주연상?
‘천사들의 합창’은 1990년 멕시코 방송대상에서 대상과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에 각각 후보에 올랐지만 수상에는 실패하였다.
하지만, 최고의 아역-여우주연상을 마리아 호아키나 역을 맡은 루드비카 팔레타가 수상했으며, 최고의 아역-남우주연상은 의외로 시릴로나 다른 배우들이 아닌 하이메 역을 맡은 호르헤 그라닐로(Jorge Granillo)가 수상했다.
▲ 알고보니 주인공
독일인에서 미국인으로 바뀐 비비
‘천사들의 합창’에는 미국에서 전학 온 ‘비비(Bibi)’라는 비중이 낮은 역할이 있었다.
그런데 아르헨티나 원작의 비비는 성이 ‘슈미트(Schmit)’ 즉 독일 이민자 자녀였다. 당시 아르헨티나에는 독일계 이민자들이 많았고,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에는 많은 나치 잔당들이 독일에서 도피해오는 곳이기도 했다. 멕시코는 그런 아르헨티나의 사회상을 자국에 맞게 각색하여 미국인 ‘비비 스미스(Bibi Smith)’로 바꾸었다.
▲ 맨 왼쪽이 비비 스미스
또한 미국 출신이라는 설정상 영어와 서툰 스페인어를 섞어서 말하곤 했는데, 한국에서는 더빙으로 방송되었기 때문에 이런 세세한 설정을 알아볼 수 없었다.
‘천사들의 합창’은 이와 같이 전작의 배역 이름을 모두 멕시코에 맞게 각색하였는데, 바뀌지 않은 이름은 시릴로와 카르멘 그리고 일본인 코기모토였다.
소수 종교를 믿은 시릴로
가톨릭 국가인 멕시코를 배경으로 곱슬머리 유대인이었던 다비드(David)는 ‘종교에 대한 편견’ 이라는 무거운 주제 속에 등장한다. 그의 어머니가 동급생이자 가톨릭 신자인 발레리아(Valeria)와의 교제를 반대하는 것도 그들이 유대인 가정이었기 때문이다.
▲ 성인이 된 다비드와 발레리아
그런데 극 중에서 소수자인 흑인으로 차별받는 시릴로는 가톨릭의 성자인 ‘빗자루 수사’ 마르틴 데 포레스(Martin de Porres)의 조각상을 바라보며 무언가를 해달라고 열심히 기도하는 장면이 자주 나왔다. 시릴로는 흑인으로 차별받는 와중에 종교마저 독특한 배역이었던 셈이다.
▲ 시릴로가 기도하던 마르틴 데 포레스(Martin de Porres)
호르헤의 부모는 멕시코 슈퍼스타
마리아 호아키나와 쌍벽을 이루는 ‘밉상’ 호르헤(Jorge)의 부모님이었던 알레한드로 토마시(Alejandro Tommasi)와 세실리아 가브리엘라(Cecilia Gabriela)는 천사들의 합창 종영 이후 슈퍼스타가 되었다.
▲ 호르헤(Jorge)
아버지 역이었던 알레한드로 토마시는 각종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휩쓸었으며, 세실리아 가브리엘라 역시 주조연으로 각종 시상식의 후보에 선정되며 멕시코 최고의 여배우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 호르헤와 시릴로의 경주를 보는 부모
고심한 작명
뚱뚱한 외모로 극에 코믹함을 부여하는 캐릭터 중의 한 명이었던 하이메의 성은 ‘빠리요(Palillo)’였다.
빠리요(Palillo)의 의미는 ‘작대기’ 혹은 ‘이쑤시개’로, 한국어 이름으로 치면 뚱보에게 ‘김빼빼’ 라는 엉뚱한 이름을 부여한 셈이었다. 또 장난꾸러기에 동생과 자주 싸우던 파블로의 성은 ‘구에라(Guerra)’로 한국어 의미는 ‘싸움’이다. 작명에 깃든 작가의 유머러스함을 엿볼 수 있다.
▲ ‘빼빼’와 ‘싸움’
원작보다 부드러워진 ‘천사들의 합창’
‘천사들의 합창’은 아르헨티나 원작에 비해 부드럽게 각색되었는데, 아르헨티나 버전에서는 성격이 있던 흑인소년 시릴로가 멕시코 버전에서는 툭 치면 울 것처럼 유약한 느낌으로 바뀌었다.
▲ 싸울 땐 싸우던 아르헨티나 시릴로와 울보 멕시코 시릴로
또한 시릴로의 복권당첨 이야기는 원작에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이유로 자동차 경주에도 이길 수가 없었고, 금발소녀(마리아 호아키나)에게 키스를 받는 해피엔딩은 없었다. 심지어 교장선생님에게 장난을 치다 근신당하는 파블로는 원작에서는 퇴학을 당하였다.
▲ 원작에는 없던 시릴로의 해피엔딩
반면 멕시코 실정에 맞게 만연한 마약 문제와 아동유괴가 다루어지기도 하였다.
국민 여동생 루드비카 팔레타
‘천사들의 합창’의 OST에는 아이들이 함께 노래를 부르는 엔딩곡이 삽입되어 있는데, 여기서 마리아 호아키나역을 맡은 루드비카 팔레타(Ludwika Paleta)가 독창을 하는 부분이 있다.
그녀는 폴란드 출신 음악가 가문의 딸답게 노래에도 재능이 있어서 이후 출연한 작품 ‘할아버지와 나(El Abuelo y Yo)’에서는 OST 음반작업에 참여하여 가수 데뷔를 하기도 하였다.
데뷔작인 ‘천사들의 합창’으로 단번에 멕시코 청소년들의 아이돌로 급부상한 루드비카 팔레타는 학업을 이유로 3년 주기로 연기 활동을 하는데, 성인이 되기까지 출연한 3편의 드라마에서 모두 아역-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지금의 슈퍼스타 자리를 미리 예약했다.
▲ 천사들의 합창(Carrusel, 1989), 할아버지와 나(El abuelo y yo, 1992), 빈민가의 마리아(María la del Barrio, 1995)
임시교사에서 주인공이 된 오렐리아 선생님
2002년 리메이크 버전에서 히메나 역할인 ‘루피타 선생님’ 역을 맡은 안드레아 레가레타(Andrea Legarreta)는 1989년작 ‘천사들의 합창’에서 임시선생님 오렐리아(Aurelia)로 출연한 배우였다.
▲ 안드레아 레가레타(Andrea Legarreta)
‘천사들의 합창’ 출연 당시에는 신인이었던 그녀는 이후 인기배우가 되었으며, 2002년 리메이크작 ‘어린이 만세!(¡Vivan los niños!)’에서 주인공 역할인 루피타 선생님으로 돌아오게 된 것.
처량한 카르멘의 연기 변신
‘천사들의 합창’에서 가난하고 불쌍한 소녀 역할을 했던 카르멘은 루드비카 팔레타와 함께 ‘할아버지와 나(El abuelo y yo)’에 출연했다.
그런데 ‘천사들의 합창’과는 정반대의 거만하고 비호감이 넘치는 역할이었기 때문에, 만약 한국에 방영되었다면 그녀에게 동정심을 가졌던 많은 한국 팬들은 실망했을지도 모르겠다.
▲ 카르멘 역을 맡았던 에드워다 구롤라(Edwarda Gurrola)의 연기 변신
리메이크 작품들의 침몰
‘천사들의 합창’이 세계적으로 엄청난 인기를 끌면서 히메나 선생님역의 가브리엘라 리베로가 그대로 출연한 ‘천사들의 합창 2(Carrusel de las Américas)’가 제작되지만, 끔찍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실패로 끝났다.
그리고 10년 후인 2002년에는 배역의 이름들을 완전히 각색한 ‘어린이 만세!(¡Vivan los niños!)’가 야심차게 리메이크 되지만 팬들의 말에 따르면 ‘침몰하는 배에 어뢰공격을 가한‘ 작품으로 평가 받으며 ‘천사들의 합창’을 더욱 빛나게 만들었다.
▲ 어린이 만세!(¡Vivan los niños!)
또다시 10년 후인 2012년, 브라질의 SBT 방송사는 멕시코 버전의 내용과 배역들의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는 판권을 사들여 새로운 리메이크 작 ‘Carrossel’을 호기롭게 선보였다.
하지만 2012년 브라질 버전에서도 ‘백인 소녀를 짝사랑하는 흑인소년’에 대한 이야기가 다루어지는 것에 많은 인권단체들이 우려를 표명했다. 아르헨티나의 인종차별을 해소하고자 했던 원작자 아벨 산타 크루즈의 의도는 타국의 실정이나 현대의 상황과 맞지 않으며, 흑인소년의 굴욕은 ‘불쌍한 흑인’의 이미지를 더욱 구체화한다는 이유였다.
▲ 브라질 버전 ‘Carrossel’
이에 브라질 SBT 제작진은 “인종차별은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공공연히 일어나는 것이 현실이며 지속적인 싸움을 해나가야 할 문제“라며 캐릭터의 성격과 시나리오를 수정하지 않을 것을 천명했다.
히메나 선생님은 인디오와 혼혈?
멕시코 방송은 1989년, ‘천사들의 합창’을 준비하면서 원작가인 아벨 산타 크루즈에게 감수를 받았다. 이때 배우 캐스팅에 대한 문제도 세심하게 준비했는데, 작가는 ‘마리아 호아키나’는 극의 성격상 반드시 금발에 푸른 눈을 가져야 하고, ‘히메나 선생님’은 백인이지만 갈색의 머리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하였다.
그 이유는 원작의 선생님 이름인 ‘하신타 피치마우이다(Jacinta Pichimahuida)’와 관련이 있었다.
사실 ‘피치 마우이다(Pichi Mahuida)’는 아르헨티나의 리오네그로주(Río Negro)에 속해있는 지역의 이름으로, 주인공 선생님의 머리가 갈색이어야 했던 이유는 칠레와 아르헨티나 남부에 거주하던 남미 원주민 마푸체족(Mapuche)과 백인의 혼혈이라고 원작자가 설명했기 때문이었다.
▲ 피치 마우이다(Pichi Mahuida) 위치
그런 지리와 인종적 배경이 있었기 때문에 다문화 학교의 교사로 모든 아이들을 감싸는 포용력 있는 스승의 모습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었지만, 이름만은 ‘너무 아르헨티나스러운’ 탓에 히메나 선생님으로 각색되었다.
2012년 리메이크작의 거대한 스케일
‘천사들의 합창’은 대부분 세트장에서 이루어졌지만 때로는 큰 스케일을 선보이기도 하였다.
호르헤와 시릴로간의 스릴 넘치는 자동차 경주 장면이 바로 그중 하나였는데, 2012년 브라질 리메이크작 ‘Carrossel’에서는 최신작답게 더 거대한 스케일을 보여주었다.
▲ 운명의 자동차 경주
브라질 프로축구팀 ‘산투스 FC(Santos FC)’의 홈구장 ‘빌라 베우미루(Vila Belmiro)’를 통째로 빌리는가 하면, 1만 명의 관중들을 입장시켜 드라마를 촬영하는 물량공세를 퍼부었다. 거기에 더해 산투스 FC에서 빠질 수 없는 슈퍼스타 ‘네이마르(Neymar da Silva)’가 카메오로 특별출연하는 쾌거도 이루었다.
▲ 브라질 ‘천사들의 합창’에 출연한 네이마르
이처럼 멕시코 버전 ‘천사들의 합창’을 보고 자란 세대들이 진심으로 후속작을 성공시키려는 노력을 보면 당시 남미권에서 이 작품이 얼마나 큰 인기를 끌었는지 알 수 있다.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종교와 빈부격차, 인종 간의 편견과 같은 사회문제가 해소되지 않고 다루어지는 모습은 씁쓸하지만 지구 반대편의 한국 어린이들까지 울고 웃게 해준 천사들의 합창에 큰 감사와 앞으로의 여정에도 응원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