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진의 뒷이야기 (131) 1932년, 독일 베를린 거리의 나치당 선거차량

당시 대선을 앞두고 나치당의 당수였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의 인기가 치솟고 있었는데, 이를 저지하기 위해 '프로이센의 영웅'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 1847~1934)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1

1932년 4월 10일, 제2차 독일 대통령 선거(Reichspräsidentenwahl)를 앞두고 베를린 팡코(Pankow) 자치구의 프렌츠라우어 산책로(Prenzlauer Promenade)를 독일 국가사회주의 노동자당(NSDAP, 나치스) 선거차량이 지나가고 있다. 차량에는 홍보를 위한 대형 확성기와 독일의 복합기업 지멘스(SIEMENS)의 상표가 보이고, 반대파의 소행인지 포스터 한 장은 찢어져 있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나치당의 당수였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의 인기가 치솟고 있었는데, 이를 저지하기 위해 ‘프로이센의 영웅’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 1847~1934)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나치당의 당수였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의 인기가 치솟고 있었는데, 이를 저지하기 위해 '프로이센의 영웅'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 1847~1934)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3
▲ 차량에 부착되어 있는 포스터. “여성 여러분! 수백만 명의 남성이 일자리를 잃고, 수백만 명의 어린이가 미래가 없이 방치된 독일 가정을 구하겠습니다. 아돌프 히틀러에게 투표하세요!” 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화가 펠릭스 알브레히트(Felix Albrecht, 1900~1980)가 디자인 하였다.


앞서 3월 13일에 치러진 제1차 투표에서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49.6%, 아돌프 히틀러는 30.1%였으나 과반수를 얻지 못하면서 제2차 투표에 돌입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최종 결과는 아돌프 히틀러(36.8%)를 누르고 파울 폰 힌덴부르크(53%)가 승리했다.

 

하지만 파울 폰 힌덴부르크는 여러 세력이 연합(바이마르 연합)하여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었고, 아돌프 히틀러는 오로지 그만을 지지하는 독립된 결과를 얻은 것이어서 이 선거는 급격히 부상하는 히틀러와 나치당의 인기를 확인하고 독일 국민들의 민심을 얻어낸 선거로 평가되고 있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나치당의 당수였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의 인기가 치솟고 있었는데, 이를 저지하기 위해 '프로이센의 영웅'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 1847~1934)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5
▲ 1933년 3월 21일, 독일 수상으로 임명된 히틀러가 힌덴부르크 대통령과 포츠담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이 사진은 히틀러가 기득권자인 구세력과 화합을 이룰 수 있는 인물이라는 이미지를 만드는 데 일조하였다.


결국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이 불과 2년 후인 1934년 8월 2일에 사망하고, 임기 중 그가 수상으로 임명하며 힘을 실어준 아돌프 히틀러가 대통령 권한을 이어받아 퓌러(Führer) 지위에 오르면서 나치 독일이 성립되는 것은 역사적 수순이 되었다.

당시 대선을 앞두고 나치당의 당수였던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의 인기가 치솟고 있었는데, 이를 저지하기 위해 '프로이센의 영웅' 파울 폰 힌덴부르크(Paul von Hindenburg, 1847~1934)가 무소속으로 출마하였다. 7
▲ 현재도 사진이 촬영된 거리(Prenzlauer Promenade 128, 13189 Berlin)에 있는 건물은 그대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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