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5년, 전북 부안에서 발견된 ‘물호랑이’의 정체
1915년 5월 27일, 전북 부안의 조포 앞바다에서 괴이한 물짐승이 발견되었다. 아래는 이를 보도하는 매일신보의 기사이다.
– 물호랑이인가
지나간 27일 전라북도 부안군 읍내에서 상거(相距) 십리쯤 되는 조포충(扶安郡 鳥浦冲) 바닷속에서 조선사람 어부 한 명이 괴이한 물짐승 하나를 잡았다.
그 짐승은 신장이 석자가 넘고 형상은 생선과 같이 생겼는데 몸의 중량은 12관이라 하며 온몸이 개와 같은 농갈색을 띄었고, 또 호랑이 털과 같은 아롱진 무늬가 있는 가는 털이 생기었고 얼굴은 흡사 호랑이와 같으며 수족은 모두 무슨 물오리의 발모양인 넙적하게 생긴 짐승으로 실로 처음 보는 괴수라는데 지금 읍내 동해상점에 보관하고 그 상점에서는 경성동물원에 대하여 사고 안 사는 일을 지금 교섭 중이라더라.
【매일신보 1915.06.01】
물짐승 포획 소식은 며칠 후인 6월 1일에야 보도가 되었는데, ‘얼굴은 호랑이와 같이 생겼고 처음 보는 괴수’라고 표현해놓은 문장 때문에 혹시 범고래인가 했는데 생각보다 크기가 작고 오리발이 달렸다고 하는 걸 보니 기각류(鰭腳類)로 보인다.
또한 신장 3자가 넘는다고 했으니 대략 90~100cm정도이고 무게는 12관이면 45kg정도. 이 정도면 암컷 물개나 물범, 그것도 다 자라지 않은 개체의 크기이다. 또 서해에서 볼 수 있는 점박이물범의 경우 백령도에 집단 서식하고 있는데 이들도 성체의 신장은 1.5m가 넘고 체중도 100kg을 전후한다.
그래도 서식환경을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점박이물범의 새끼일 것 같은데, 다만 점박이물범은 성체도 상당히 귀여운 모습을 자랑하는 생명체라 새끼에게 괴수라는 표현은 좀 과하다. 아마도 기삿거리를 위해 무시무시하게 과장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
▲ 백령도 점박이 물범 ©해양수산부
지금이라면 당연히 바로 방사해야 할 보호종이지만, 잡자마자 ‘동물원과 흥정에 나선다’는 것도 지금과 다른 100년 전의 모습이다. 기사에 나온 경성동물원은 창경원(창경궁)을 뜻하는 것으로, 1909년 11월 동물원으로 개장하였고 한일합병조약 후인 1911년에 창경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또한 조포 앞바다(鳥浦冲) 역시 지금은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인해 지형이 많이 바뀌었다.
▲ 간척사업 이전(1989년)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
물범으로 추정되는 ‘물호랑이’는 서해안을 떠돌다가 조포 앞바다에서 잡힌 것으로 추정되지만, 당시의 바다는 지금은 내륙지역이 되었다. 짧은 기사지만 여러 가지로 강산이 변한 세월이 느껴지는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