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전쟁(한국전쟁) 최초의 미군 전사자
1931년 8월 4일, 케네스 R. 셰드릭(Kenneth R. Shadrick)은 웨스트버지니아 주 와이오밍주의 광산 노동자였던 시어도어 셰드릭과 어머니 루실 셰드릭 사이에서 10남매 중 셋째로 태어났다.
파인빌 고등학교 시절 케네스는 책을 좋아하던 평범한 학생이었다. 2학년이 될 무렵 미식축구에 관심이 생긴 그는 아버지가 유니폼 살 돈 5달러를 주자 학교의 미식축구팀에도 가입하는 열의를 보였다.
그러나 어느 날 소중한 유니폼이 도난당하는 사건이 발생했고, 학교생활에 환멸감이 든 케네스는 자퇴하고 한 달 후 군에 입대하기로 결심했다.
▲ 케네스 R. 셰드릭
당시 그의 나이 만 17세에 불과했기 때문에 입대에는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했고, 어머니의 승낙이 떨어지자마자 즉시 기갑병과 교육기관이 소재한 육군 기지 포트녹스(Fort Knox)로 향했다.
이후 일 년간 제24보병사단 제34보병연대 소속으로 점령지인 일본에서 편히 근무하던 중 전쟁(6.25)이 발발하자 한국행을 명령받는다. 당시에는 북한의 기습에 케네스와 같이 준비되지 않은 행정병, 취사병, 의무병들이 보병으로 보직전환되어 한반도로 향했다.
▲ 일본에서의 케네스
1950년 7월 5일, 북한군과 미군 최초의 교전인 오산 전투(죽미령 전투)가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미군의 스미스 특수임무부대(Task Force Smith)는 540명의 부대원 중 60명이 전사하고 82명이 포로로 잡히며 무참히 패퇴했다. 스미스 부대의 철수가 시작되던 오후 4시경, 제34보병연대의 정찰대가 투입되었고 여기에 케네스가 포함되어 있었다.
정찰대는 기동 중이던 북한의 T-34/85 탱크를 발견하고 바주카포로 저격에 나섰다. 마침 이 부대에는 미 육군 사진작가였던 찰스 R. 턴불 병장(Charles R. Turnbull)이 있어서 당시의 사진이 전해지고 있다.
▲ 1950년 7월 5일, 제34보병연대의 바주카팀. 케네스 R. 셰드릭(오른쪽)은 촬영 직후 전사했다.
위 사진 촬영 직후, 부사수였던 케네스는 포탄이 적의 탱크에 명중했는지 일어나서 살피다가 날아온 적의 기관총 탄환을 맞고 몇 분 만에 전사하였다. 사진 속에서 바주카포를 쏘는 군인이 케네스로 알려져 있기도 한데 오른쪽 인물이다.
▲ 컬러 복원된 사진
이후 정찰대는 케네스의 시신을 수습해 철수했는데, 마침 제34보병사령부에는 뉴욕 헤럴드 트리뷴의 종군기자였던 마거리트 히긴스(Marguerite Higgins, 1920~1966)가 와 있었다. 당시 이 앳된 군인의 죽음은 그녀에게는 큰 충격이었고, 즉시 본사로 ‘한국전쟁 최초의 미군 전사자 발생’이라는 속보를 타전했다.
▲ 종군기자 마거리트 히긴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마거리트 히긴스는 물론 헤럴드 트리뷴의 편집자 역시 확인 없이 너무 성급하게 뉴스를 내보낸 것이 되었다. 이후 ‘케네스가 과연 미군의 첫 번째 전사자인가’라는 물음표가 던져졌다. 당연하게도 케네스의 죽음 이전 스미스 특수임무부대 소속 장병들이 다수 전사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들의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고, 여러 명 중 누가 가장 먼저 전사했는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케네스는 ‘이름이 알려진 최초의 미군 전사자’라는 표현이 정확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케네스 R. 셰드릭의 장례행렬과 묘비
생일을 한 달 남짓 앞둔 만 18세의 나이로 타국에서 숨을 거둔 케네스 R. 셰드릭(1931~1950)의 유해는 미국으로 송환되었고, 1951년 6월 17일 수백 명의 고향 주민들이 추모하는 가운데 웨스트버지니아 주 프로스페리티의 블루리지 메모리얼 가든스(Blue Ridge Memorial Gardens)에 묻혔다.